어제(화요일)는 사태가 아주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싶지만, "어쩌면 꿈일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숄츠 총리와의 회담 이후에 한 말인데, 젤렌스키의 말은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같은 말을 두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의지를 재확인했다"라고 보도한 매체가 있는가 하면, 이 문제를 부각하지 않으려 했다고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외교적인 발언이 원래 그렇게 조심스럽고 때로는 모호하지만, 젤렌스키의 그 발언이 나온 후 러시아의 반응도 여러 가지 해석을 낳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화를 하자는 긴급 요청을 러시아가 거부한 후 몇 시간 만에 국경에 전진 배치된 러시아의 병력이 "공격 태세(attack position)에 들어갔다"는 말이 미국 정부에서 나왔다. 미국은 수도 키예프에 있던 대사관까지 철수한 상태에서 드디어 침공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몇 시간 만에 러시아가 병력의 일부를 국경지대에서 철수시켜 원대 복귀시킨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일이 24시간 안에 일어났다.

나토와 미국은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러시아가 정말로 병력의 일부를 철수하기 시작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는 탱크를 기차에 옮겨 싣는 등 철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지만, 러시아가 조작된 영상을 허위정보 확산에 사용하는 데 익숙한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이렇게 "복귀하는" 부대들이 사실은 벨라루스에 배치되었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서부 군구(Western Military District)와 남부 군구(Southern Military District)로 돌아가는 거라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즉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침략 전쟁의 한계

'불안한 세계 ③'에서 설명한 것처럼 푸틴의 러시아는 자신들이 서구에게 점점 포위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에게 이런 "포위"는 군사적 위협과 정치적 위협,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군사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국경을 맞대게 될 수 있다는 위협이고, 정치적으로는 조지아(Georgia,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처럼 민주주의 혁명으로 독재자를 몰아낸 '색깔혁명(color revolution)'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 정확하게는 푸틴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따라서 푸틴은 서구세력과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대(buffer)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우크라이나가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북쪽에 위치한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정권처럼 푸틴의 도움을 받아 생존을 유지하는 친러 세력이 우크라이나를 지배해야 한다. (이건 러시아에 국한되는 논리가 아니다. 미국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비민주적인 독재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산주의 세력에 맞선다는 이유로 용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식의 원칙론을 펼치는 것을 푸틴이 비웃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친러 지도자를 우크라이나가 몰아낸 것이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던져봐야 할 중요한 질문은 침략전쟁이 과연 푸틴에게 유리하냐는 거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와 직접 대결하기는 힘들고, 아무리 무기를 지원해봤자 러시아의 화력을 막지는 못한다. 러시아가 현재 국경에 쌓아둔 병력으로 대대적인 침공을 했을 때 수도 키예프가 함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임은 모든 나라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나라를 점령한 다음의 일이다.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다른 구성국(위성국)들과 함께 독립을 시도했던 (그러나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은) 체첸 지역 때문에 20년 가까운 고생을 했다. 체첸 반군과의 교전 뿐 아니라 러시아 내에서 일으키는 테러사건들은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체첸과는 비교도 안되게 큰 나라다. 강대국인 소국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반군의 게릴라전, 테러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쉽게 승리한 이라크 전쟁과 오래도록 고생한 IS, 혹은 탈레반을 상대로 한 싸움을 비교해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99년 체첸 반군이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모스크바 아파트 폭탄 테러사건. 푸틴이 꾸민 자자극이라는 주장이 많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비슷한 일을 꾸미다가 미국 정보기관에 발각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전임자인 옐친 대통령이 고전했던 체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테러가 이어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푸틴은 20년 전 역사를 우크라이나에서 반복하고 싶을까?

푸틴이 원하는 것

어제 나온 뉴스 중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병력의 일부를 철수한다는 러시아의 발표였고 주식시장도 이에 반응했지만, 러시아의 장기적인 목표를 암시하는 뉴스는 따로 있었다. 러시아의 연방의회(State Duma)가 현재 분쟁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 접경)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공화국들(도네츠크, 루간스크)의 독립을 승인해달라는 결의안을 푸틴에게 보내기로 채택한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연방의회가 독자적으로 결의안을 채택했을 리는 없고 푸틴의 각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결의안에서 푸틴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5일 뉴스레터(Watch This)를 통해 소개한 영상이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연방화(federalization)'다. 푸틴의 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군을 어렵지 않게 꺾을 수 있지만 시민들이 반군, 혹은 테러리스트화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십 만의 병력을 이 지역에 주둔시키기에는 러시아의 영토가 너무나 방대하고, 병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작은 공화국들로 잘게 쪼개어버리면 연방정부는 유명무실해지고, 그렇게 쪼개진 소규모 공화국들을 친 러시아로 돌리는 공작은 훨씬 쉬워진다. 푸틴은 침공을 강행할 경우 키예프에 괴뢰정권을 세우거나 연방제를 통해 나라를 잘개 쪼갠 후에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침공을 하지 않더라도 러시아 연방의회가 결의한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독립공화국을 설치하려 할 거다.

빠르게 성장하는 민족 정체성

푸틴이 팬데믹도 끝나지 않은 지금 군사적인 행동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런 그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푸틴의 편이 아니다. 러시아는 대외 수출액의 60%를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재생 에너지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경우 벌어오는 외화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든다.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가 있다. 지난 글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각성이 21세기에 들어와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런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 건 다름 아닌 푸틴이다.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를 강제로 합병하고 돈바스 지역의 반군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 때 문화적으로 러시아를 가깝게 생각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언어와 종교였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지만 신문, 잡지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지적인 언어'로 취급받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잡지들이 발행하는 언어를 러시아어에서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는 일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12월에 우크라이나어로 전환한 엘르(Elle) 매거진이다.

종교는 어떨까? 우크라이나 교회는 원래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소속이었다. 1억 5천만 명의 신자를 가진 러시아 정교회는 더 큰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3억 신자)에 속해있다. 하지만 푸틴이 러시아 정교회와 손을 잡은 후에 일어난 2014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신자와 사제들로 하여금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의 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러시아 정교회를 탈퇴해 '우크라이나 정교회'로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플의 동방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교회의 독립을 지지했고, 러시아 해커의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특히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심각한 안보 위기로 생각하고 회의를 소집했을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반응은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와 분리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어를 말하지 않게 되고, 러시아인들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교회를 갖게 된다면 이 나라를 예전처럼 러시아의 그늘 속에 묶어두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그런 시도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 성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사를 어제 발행했다. 수도 키예프를 포함해 다섯 개의 도시를 다니면서 시민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들어본 글이다.

시간이 푸틴의 편이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자각은 커질 텐데, 더 커지기 전에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억제하려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를 보면 함께 섞여 살던 사람들이 분리된 민족적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은 대개 압제와 전쟁을 통해서다. 전쟁과 갈등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게 만들고, 그런 구분이 나만의 정체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략은 시작한 순간 타이머를 켠 것과 같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단결해서 국방력을 키울 것이고, 미국이 소홀하게 생각했던 나토는 다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덩치를 키울 것이다. 따라서 푸틴은 우크라이나 공략을 시작한 이상 짧은 시간 안에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 아니 5년만 지나도 유럽의 정세는 바뀌고 러시아는 지금과 같은 일을 시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뒤지다가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를 발견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중 하나인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에서 2018년에 발행한 이 보고서의 제목은 'Russia Is a Rogue, Not a Peer; China Is a Peer, Not a Rogue.'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두 세력, 러시아와 중국을 평가하는 16페이지 정도의 짧지만 압축적인 설명이다.
내가 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내용은 여기저기에서 들어봤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온 보고서다. 특히 이 보고서가 2018년에 러시아에 관해 예상한 내용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서 평가해봐도 뛰어나다. 특히 8페이지에서 서방세계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내용을 보면 푸틴이 트럼프를 활용해 나토/유럽을 분열시킨 전략이 보인다.
아래 웹사이트 오른쪽에 PDF버전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으니 받아서 읽어보시길.
Russia Is a Rogue, Not a Peer; China Is a Peer, Not a Rogue
Russia and China represent distinct challenges for the United States. Russia is a more immediate and more proximate military threat to U.S. national security. But China presents a regional military challenge and a global economic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