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일
• 댓글 62개 보기작년에 <친애하는 슐츠 씨>를 출간하고 홍보를 위해 몇 번의 인터뷰와 방송 출연, 북토크를 하면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특히 북토크에서—자주 받았던 질문이면서 가장 답하기 힘들었던 질문이 바로 글쓰기 작업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앉아서 읽고 쓰는 거라, 내 작업의 루틴이 어떤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의 대답은 "제대로 읽어야 할 글을 인쇄해서 종이에 읽고,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메모를 한다"라거나, "참고할 글을 읽은 후에 바로 쓰기보다는 하루 정도 후에 쓰면 훨씬 쉽다," 그리고 "글은 거의 예외 없이 오전에 잘 써진다" 같은 것들이었다. 사실대로 대답을 하면서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 질문을 하는 분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데, 내 대답이 그 궁금증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쓰기'라는 창작 과정에 대해, 그 비결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내가 거의 매일 쓰는 글은 창작이라기보다는 특정 주제에 관한 읽기의 마지막 과정, 즉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남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의 의도에 적절한 답을 줄 위치에 있지 않다.
사실 나도 창작자들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창작자들 중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뛰어난 창작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작품을 통해 말하는 데 익숙하지, 자기 작품에 관해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창작 과정이라는 게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방법론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한 과학자의 실험 결과는 다른 과학자가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창작의 과정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양한, 그리고 뛰어난 창작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
일단 그런 인터뷰를 따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
@hpenthouse Iconic Interview of Basquiat This Interview was conducted In early 1983 In Jean-Michel Basquiat’s studio on Crosby Street In SOHO. Taped at about 3 PM, shortly after Jean- Michel woke for the day, It begins slowly and picks up as the artlst begins to wake. This program was edited minimally In order to capture the essence of the time and the personality of the artist. The interview was conducted by Dr. Marc H. Miller, Curator and Adjunct Professer of Art History at New York University. basquiat arthistory #nyc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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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New York) 매거진에서 오래 일했던 애덤 모스(Adam Moss)는 다르다. 이 사람은 뛰어난 작가, 예술가, 영화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까다로운 창작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가 43명의 창작자들과 만나서 대화를 통해 그들만의 창작 과정을 옮긴 책이 '예술이라는 일'(The Work of Art)이다.
이 번역된 제목을 처음 보고 'Work of art는 예술 작품이라는 뜻 아닌가? 제목을 왜 이렇게 번역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서 work는 '작품'과 '일'이라는 중의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 즉 일에 초점이 있다.

이 책은 4백 쪽이 넘는, 무겁고 두툼한 책이고, 독자에 따라서는 모르는 창작자들로 가득해서 선뜻 다가가기 힘들 수 있지만, 보기보다 접근하기 쉽다. 우선 목차에서 알고 있거나, 한 번쯤 들어본 작가, 예술가들을 골라서 먼저 읽기 시작한다. 책은 두껍지만, 사진이 많고—이들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각각의 인터뷰는 길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리고 그 작가들을 찾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다가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작품이나 창작 노트가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으면 멈춰서 읽는다. 엘리너 파전(Eleanor Farjeon)의 '작은 책의 방'(The Little Bookroom)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 책이 마침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카라 워커(Kara Walker)로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1장부터 펴고 읽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읽게 된 서문이 아주 좋기 때문에 꼭 서문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서문 얘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하고 먼저 카라 워커의 작품을 이야기하면, 우선 이 사람이 미국의 흑인 여성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술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워낙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품들—노예 해방 이전의 미국을 그림자 조형물로 묘사했는데, 백인 관객과 흑인 관객 모두를 화나게 했다—을 선보인 사람이다.
이 책에서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작품은 2014년 뉴욕 윌리엄스 다리 옆에 있는 유명한 도미노 설탕 공장에 설치되었던 '사탕 과자, 또는 경이로운 설탕 아기'라는 대형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는 순간 모든 게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스핑크스는 성적인 특징이 부각된—카라 워커 작품의 특징—흑인 여성이고, 그 주변에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듯한 흑인 아이들이 있다.
녹슨 설탕 공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너무나 완벽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쉽게 만들어 낸 작품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미술작품이든 잘 만든 작품을 보면 창작은 쉬워 보이고, 못 만든 작품을 볼 때 비로소 창작이 어려운 건지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 워커의 이 작품으로 책을 시작한 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워커가 이 작품의 구상부터 실현까지 어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고,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이었는지를 애덤 모스에게 모두 들려주기 때문이다.

카라 워커의 이야기처럼 내가 팬심으로 읽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27장에 나오는 아이라 글래스(Ira Glass)의 인터뷰다. 아이라 글래스는 오터레터에서 종종 소개하는 NPR의 인기 프로그램 'This American Life'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 온 사람이고, 지금은 익숙한 팟캐스트의 포맷과 (아나운서가 아닌) 자연스러운 목소리의 유행을 만들어 낸 사람이자,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명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사촌동생이다.
저자 애덤 모스는 인터뷰를 통해 아이라 글래스가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뿐 아니라,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다듬어지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글래스의 인터뷰만이 아니다. 애덤 모스의 목적은 창작자들이 어떻게 영감을 얻고, 그걸 어떻게 다듬고, 실현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기 때문에, 창작을 시도해 봤거나, 창작으로 고민하고 있는, 혹은 언젠가는 창작을 하리라 마음 먹은 사람들이라면 꼭 사서 테이블 위에 놔두고 싶을 그런 책이다.
책 전반에 등장하는 창작의 흔적들은 보는 사람에게 창작 욕구를 일으킨다.

서문에서 저자는 창작자들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남긴 흔적, 유물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마네나 피카소 같은 유명 작가의 전시회에서 화가들이 숨기고 싶어 했을 습작들은 우리에게 원작만큼이나 큰 감동을 준다. 완성작은—마치 거대한 유조선처럼—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하기도 힘든 위압감을 주지만, 습작을 보면 위대한 예술가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작품의 모든 요소가 큰 고민과 무수한 실패 끝에 나온 것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창작자들은 애덤 모스의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그의 부탁을 전부 들어주지는 않는다. 가령 15장에 등장하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경우는 대면 인터뷰나 줌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고, 음성 통화만으로 인터뷰하겠다고 했고, 특정 작품의 제작 과정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다른 모든 인터뷰는 특정 작품을 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터뷰어이자 저자로서의 애덤 모스의 능력이 발휘된다.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과도, 중구난방으로 닥치는 대로 쏟아 놓는 (어떤 인터뷰는 말이 빠른 사람이라는 게 글에서 느껴진다) 사람과도 무리 없이 대화하며 이야기를 끌어내고 정리한다.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해 보이는 바바라 크루거와의 대화에 그렇게 아슬아슬한 대목이 있다. 모스는 크루거가 작품에 사용하는 서체로 푸투라(Futura)를 사용했다가, 헬베티카 콘덴스트(Helvetica Condensed)로 바꾼 이유를 짐작해서 확인하듯 질문을 했는데, 그걸 들은 크루거의 대답이 짧고, 기분이 살짝 상한 듯한 느낌이 읽힌다. 이를 눈치챈 모스는 크루거의 대답을 바탕으로 재빨리 방향을 바꿔 그가 관찰한 크루거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그걸 들은 크루거가 그 관찰에 "고맙다"고 말한다. (174쪽)
저자가 그렇게 훌륭한 관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에 모아둔 43명이 모두 그가 좋아하는 창작자들이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때로는 작가보다 팬들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도 한다.) 3장에 나오는 뉴요커 만화가 라즈 채스트(Roz Chast)를 소개하면서 "나는 라즈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는가?"라고 고백한다. 나도 아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라즈 채스트의 작품을 좋아할 리는 없다. 여기에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이 책에 모은 창작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큐레이션 한 결과다.
애덤 모스가 뉴욕 잡지를 만들어 온 사람이고, 유대계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이 책에는 유대계 창작자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고, (아마도 동부의) 지식인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모르는 세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문화적 엘리트들"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책은 저자의 취향을 반영하게 되어있고, 저자가 자기의 생각과 느낌에 충실할 때 우리는 생각이 달라도 수긍하고 감동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모든 꼭지가 당장 끌리지 않아도 한 권 사서 간직하며 틈틈이 펴볼 만한 책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창작욕이 솟구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번역이라는 일
이 책을 추천하는 데는 사심도 있다. 번역자 이승연 님은 나와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를 함께 번역했고, 이 책이 나온 어크로스는 '친애하는 슐츠 씨'를 낸 출판사이기도 하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는 이승연 님의 번역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번역을 끝내는 데 집중하는 번역자가 있고, 번역 일을 핑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번역자가 있는데, 이승연 님은 후자에 속한다. 모르는 작품이나 예술가가 나오면 각주를 찾아서 거기에 나오는 책과 기사를 찾아 읽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번역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라는 일'을 읽을 때는 각주를 놓치지말고 챙겨 읽으시길 권한다. 🦦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다섯 권을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선물하시기로 했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예전처럼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목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