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요원들이 사망한 1986년의 총격전 외에도 미국의 경찰들을 놀라게 한 사건은 더 있다. 1997년 LA에서는 강도 두 명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은행을 털고 달아나다가 출동한 경찰과 도로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범인들은 마치 긴 총격전에 대비한 듯 총에 드럼 탄창을 장착하고 있었고, 총격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침착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경찰은 범인들이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중무장을 한 은행강도들이 경찰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은 영화 '히트(Heat)'의 총격전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는 실제 총격전보다 2년 앞서 나왔다. 범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범행을 준비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졌을 만큼 현실이 점점 헐리우드 영화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미 해병대는 '히트'의 총격전 장면을 훈련에 사용하기도 했다.  

1997년 LA 경찰과 은행 강도들 사이의 총격전
이미지 출처: IMDb

이렇게 범인들이 군용 무기를 사용하자 경찰도 군부대 수준의 무장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미 국방부는 이 사건 후에 LA 경찰에 군용 M16 소총 600정을 제공했고, 이후 군이 사용하던 무기를 각 도시 경찰이 인수하는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LA나 마이애미 같은 대도시에서 몇 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사건을 조용한 중소도시에서 대비해야 하느냐였다.  

미군으로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정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절약하고, 기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경찰에 처분하는 게 이득이었지만, 지뢰나 급조폭발물(IED)에 대비한 대형 장갑차량은 엄청난 유지 비용이 들어가는 데 (군용 장비는 고장이 잦고, 교체 부품이 비싸기로 악명 높다) 예산이 빠듯한 도시의 경찰이 그런 장비를 보유하겠다는 건, 범죄 예방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경찰의 ‘장난감’에 불과한 이런 장비를 구입하고 유지하는 것은 결국 세금 낭비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러다가 더 강한 무기를 원하는 경찰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생겼다. 바로 2001년의 9/11 테러 사건이다.

지뢰 방호력을 갖춘 전술 차량(MRAP)은 도입되는 도시마다 논쟁거리가 된다.
이미지 출처: Dallas Morning News, CT Mirror

기습적인 테러를 당한 조지 W. 부시 정권은 테러 이듬해인 2002년, 국토안보부(DHS)라는 새로운 부처를 만들고, 교통안전청(TSA), 연방재난관리청(FEMA), 해안경비대(Coast Guard),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등의 부처를 통합 관리하게 했다. 참고로, 요즘 불법 이민자를 무리하게 체포하며 논란이 되는 이민·세관 집행국(ICE)도 국토안보부 소속이다. 이 국토안보부가 테러리즘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착수한 작업 중 하나가 각 도시 경찰을 군대에 버금가게 무장하는 것으로, 의회에서 승인받은 재원으로 원하는 경찰서의 장비 업그레이드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총기회사들에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국토안보부에서 나오는 돈은 결국 이 회사들이 가져갈 돈이었다. 하지만, 이 지원금은 무조건 경찰서에 할당하는 게 아니었고, 각 경찰서가 장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이유를 상세하게 적은 지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작은 도시의 경찰서들이 그런 서류 작업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잘 아는 글록과 같은 총기회사들은 지원서 작성을 전담하는 직원을 채용해 경찰서를 대신해 작성해 주었다. 자체 경찰특공대가 쓸 총기를 구매하고 싶은 경찰서는 총기회사의 웹사이트에 가서 지원서 작성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되었다. 홍보대행사에 소속된 대필 저자(ghostwriter)가 제품에 유리한 학술 논문을 대신 써주게 하는 제약회사들의 수법을 방불케 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다.

시민을 향하는 총기

그렇다면 그 도시의 주민들은 경찰이 연방 지원금으로 무기를 구매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주민 입장에서는 경찰 예산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경찰이 가진 무기는 그 도시의 주민을 보호하려는 명목이지만, 미국에서 시민을 상대로 한 경찰의 무력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를 고려하면, 경찰의 중무장이 그 도시의 주민을 위협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 경찰이 주민(이 선출한 대표)의 허락 없이 무장을 강화한다는 건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미국에서 경찰 특공대(SWAT)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2014년 사이에 사건에 경찰 특공대를 출동시키는 일이 150배로 증가했다. 크고 작은 도시의 경찰서가 특공대를 갖게 되고, 이들이 강력한 군사용 무기로 무장하게 되자 이들은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집을 수색하는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업무에도 특공대를 투입하게 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LA 경찰 특공대
이미지 출처: Los Angeles Times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무장하고 용의자의 집을 찾아간다면, 그 용의자는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위협으로 보일 수 있다. 미 해병 출신으로 이라크전 참전용사였던 호세 게레나(Jose Guerena)의 죽음이 전형적인 사례다.

2011년 5월 5일, 아리조나주 투썬에 있는 자기 집에서 자고 있던 게레나는 오전 9시 30분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그 지역(피마 카운티) 경찰 특공대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들이닥친 것이다. 이들은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마리화나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게레나의 집에 들어간 것이다. 보통은 경찰이 수색하기 전에 노크하게 되어있지만, 용의자가 무장했다는 의심이 들면 판사는 노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영장(no-knock warrant)을 내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게레나는 마약사범이 아니었고, 그의 집에는 마약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집에는 아내와 4살짜리 아들이 함께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게레나는 강도들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이라면 큰 소리로 '경찰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벽장으로 피신시킨 뒤 집에 있던 AR-15 소총을 움켜쥐고 바닥에 엎드려 침입자들을 기다렸고, 게레라를 발견한 특공대원들은 그가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즉시 총을 쏴서 사살했다. 경찰은 게레라가 먼저 총의 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고 했지만, 거짓 증언으로 판명되었다.

호세 게레나의 집에 진입하는 경찰 특공대
이미지 출처: Daily Mail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경찰에 총기를 파는 회사들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세상이 위험해진다"며 "나와 가족의 생명, 그리고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교묘한 마케팅에 사람들은 단순히 총기를 집에 소유하는 것을 넘어 밖에서 일상적으로 휴대하는 것을 마치 남성성을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처럼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노린 총기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누구나 총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경찰로서는 약간이라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경찰 특공대를 보내게 되고, 게레나의 경우에서 보듯 양쪽이 총을 들고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작은 오해 하나도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록 관련 액세서리를 파는 온라인 몰에 올라온 이미지들. 미국인 중에는 글록을 차고 다니는 것을 남성성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사진은 글록을 차고 바비큐를 하는 모습.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에서 사용하는 총기는 자동차처럼 수명이 있기 때문에 경찰서에서는 일정 기한이 지난 총기를 신형으로 교체한다. 하지만 하나에 500~800달러나 되는 총기를 새로 사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던, 그러나 아직도 쓸 만한 총기를 처분한 돈으로 구매 비용의 일부를 충당한다. 중고 총기를 구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반인이 사용하던 총기보다 총기가 정비, 관리가 잘 된 경찰용을 선호한다.

그 결과, 경찰이 세금으로 사서 사용하던 총기가 일반인과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총은 다시 경찰을 위협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순환이 일어난다. 2024년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22년 사이 미국 전역의 범죄 현장에서 압수한 총기 중 무려 52,000개가 경찰이 사용한 후에 일반에 매각한 총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일반인이 총기류를 구매하는 창구 중 하나가 총기 전시회(gun show)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미국 의회가 202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총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의 숫자는 과거 20년 만에 최고치인 4만 5천 명에 달했고, 이듬해 총기회사들은 매출 기록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