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과 저항 ③
• 댓글 남기기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더 데일리(The Daily)'의 진행자 마이클 바바로(Michael Barbaro)는 트럼프에 줄줄이 굴복하고 있는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을 인터뷰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한 변호사가 스캐든에 사표를 제출한 토머스 시프(Thomas Sipp)였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인터뷰 전체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프는 일본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건 그가 10살 때였다. 일본에 살고 있던 그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미국에 가서 영어를 배울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부모는 이혼했고, 그는 일본인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서 자라게 되었다.

일본인 아이로 자란 시프는 미국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때 혼혈인 자신이 인종적으로 소수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인종적으로 동질적인 일본과 달리—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싱글맘이 된 어머니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고, 그런 가정이 미국에서 생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터뷰 당시 시프는 로펌에서 나온 직후여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미국에 정착할 때야말로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생긴 것도 다르고, 영어도 어설픈 시프는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그는 어느 수학 시간에 일어난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다른 수업은 몰라도 수학은 만국 공통이니 어렵지 않았다. 그날 선생님이 낸 문제를 제일 먼저 푼 시프가 답을 말했는데, 일본어에 익숙한 그는 답(33, thirty-three)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일본어에 없는 th 발음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은 맞았지만, 교실은 시프의 발음을 들은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시프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고 앉아서 "thirty-three"를 제대로 발음하려고 연습했지만 잘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world 같은 일상적인 단어들도 그에게는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미국에 도착한 해는 2008년, 버락 오바마가 흑인으로서 처음으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해였다. 미국인들은 오바마가 제시하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시프에게도 오바마라는 존재는 특별했다. 자기처럼 오바마도 서로 다른 인종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인종과 정체성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시프가 가장 좋아하는 오바마의 연설은 그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한 연설이다. 오바마는 그 연설에서 자기가 자라면서 "이상한 이름을 가진 바짝 마른 아이"였다는 말을 했는데, 그 대목이 시프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시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 토론팀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선택은 훗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진학한 시프는 정치학을 공부했는데, 이때 연방 상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기회를 얻었다. 시프는 미국에 도착한 지 10년 만에 미국 정치의 심장부에서 인턴 배지를 달고 상하원 의원들과 같은 방에서 중요한 청문회에 참석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시프는 삶의 목표를 발견했다고 한다. 정의를 구현하고, 모든 사람의 삶을 낫게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프는 미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이곳에 올 수 있고, 여기에서 땀 흘려 일하고, 미국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게 그런 원칙이다. 미국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미국은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큰 나라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진행자는 "미국이 대표하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아주 순수한 동경과 진정한 이상주의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시프만 그런 게 아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인 랜드(Ayn Rand)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미국이 지향하는 이상에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강한 애정과 희망을 갖는다는 말이 있다.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프가 미국이 가진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다. "저는 미국의 역사나 지금의 모습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미국이 제대로만 하면 전 세계가 그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의 말을 옮기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프가 상원 인턴으로 일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법을 공부했거나, 법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게 그가 법학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법대에 지원했다. 여러 곳에 합격했는데, 그는 학교의 명성과 그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모두 고려한 끝에 컬럼비아 대학교의 법학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졸업 후 직장을 선택할 때는 또 다른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우선 엄청난 학자금 융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에 연봉이 높은 대형 로펌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로펌들은 신입 변호사에 제시하는 연봉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중에서 스캐든을 선택한 건 그 로펌이 높은 명성 외에도 훌륭한 프로 보노(pro bono)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고, 다양성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 보노(pro bono)는 라틴어 표현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저소득층이나 형사사건을 맡는 경우에 해당하지만, 트럼프에 굴복한 로펌들이 트럼프가 원하는 이슈에 변호를 제공하기로 약속할 때도 프로 보노라는 표현을 썼다. 이 경우는 공익이라기보다는 무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스캐든에서는 소속 변호사가 프로 보노로 일한 시간을 회사에서 금액을 청구할 수 있는 시간(billable hours), 즉 소속 변호사의 근무 시간에 포함시키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프로 보노 일을 많이 하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받는 돈도 많아지는 셈이다. 시프는 스캐든에서 일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자들을 위한 변호를 진행했다고 한다.
물론 회사의 일도 열심히 했다. 신참 변호사는 사실상 사무실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는 맨해튼의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아파트를 구했고,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스캐든에 있는 뛰어난 멘토와 좋은 동료들 때문에 변호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캐든에서 일하던 시프는 지난 3월 17일,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양성과 관련해 스캐든을 포함한 20개 로펌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한 것. 미국 내 기업과 정부에서 추진해온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을 비판해 온 트럼프는 취임 후 DEI 정책을 가진 조직들을 탄압하기로 작정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스캐든에 대한 공격은 극우 인플루언서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 패한 후 그 선거가 불법 선거였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 후 곳곳에서 소송을 진행했을 때, 트럼프 측 변호사들과 법정에서 대결한 로펌들 중에 스캐든이 있었기 때문에 스캐든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가 받아 공유하면서 스캐든을 공격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로펌 조사는 그 뒤에 나왔다.
트럼프의 주장은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고, 방법 또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프는 회사가 트럼프의 결정에 맞서 싸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인 폴 와이스가 트럼프의 조사 앞에 굴복하고 협상을 통해 4,000만 달러의 프로 보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직후, 스캐든도 트럼프와 비슷한 협상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왔다. 앞의 글에서 말한 퍼킨스 쿠이처럼 트럼프의 명령에 맞서 싸우는 로펌들도 분명히 있었다. 시프는 스캐든도 그렇게 저항할 것을 기대했다. 주니어 변호사들은 물론이고, 파트너 변호사들 중에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로펌의 경영진은 달랐다.
회사가 트럼프와 합의를 봤다는 소식은 경영진이 발표하기 전에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먼저 나왔다.
마지막 편 '굴복과 저항 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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