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zombie)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 인류 문명이 파괴된 미래 세상(아포칼립스)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들이 상당히 철저하게 따르는 규칙이 있다. 이런 콘텐츠는 예외없이 폭력물—게다가 신체가 훼손되는 상당한 고어(gore) 장르—이라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관객은 같은 폭력이라도 악당에게 가해질 때 편안하게, 혹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을 어디에 긋느냐다. 좀비 콘텐츠가 따르는 규칙이 여기에서 나온다.

시작할 때는 아주 단순하다. 전염병에 걸린 좀비는 악이고, 건강한 사람은 선이다.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달아나고, 만나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죽인다. 끔찍하지만 관객은 도덕적 불편함은 느끼지 않는다.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분명할 때만 얻을 수 있는 효과다. 두 시간 안에 끝나는 극장용 영화라면 이런 구분만으로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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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리즈가 되면 선악의 구분선이 이동한다. 생각이 없고, 대화가 불가능한 악당을 상대로 여러 에피소드를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비물이 시리즈가 되면 좀비들은 극중에서 중요성이 떨어지고, 거의 배경으로 전락한다. 이제부터 진정한 악당은 문명의 종말에서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이다. 이게 거의 모든 좀비물이 따르는 규칙이다.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좀비가 아닌 악당'에는 세 가지 그룹이 있다. 제일 먼저 약탈자들이 등장한다. 홀로 다니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무리를 지어다니며 살인과 강도, 납치를 서슴지 않는 전형적인 폭력배다. 극중에서는 리퍼스(reapers), 레이더스(raiders), 스모커스(smokers)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그들이 지평선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 그룹의 이름을 혼잣말로 낮게 부르고("Reapers...") 달아나거나 싸울 준비를 한다.

두 번째 그룹은 민간 군사조직이다. 시리즈가 길어지면 위계서열이 분명한 조직을 갖고 있고, 차량과 무기도 상당수 보유하고, 대개는 특정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일종의 민병대들이 예외없이 등장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주인공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공은 그들의 어둡고 잔인한 면을 보게 되고 (대개는 리더가 독재자다) 실망해서 떠나거나, 그들과 싸우게 된다.

'더 라이스 오브 어스(The Last of Us)'와 '워킹 데드(Walking Dead)'에 등장하는 민병대
이미지 출처: UPROXX, Dawning Creates

시리즈가 더 길어지면서 주인공이 다양한 '외부의 적'을 거치고 나면 진정한 적은 자기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적과 끊임없이 싸우다가 내부의 폭력성을 발견하고,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거다. 이게 세 번째 악당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이 가지는 공통된 가정(hypothesis)이 있다. 사람들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무너지면 무법천지가 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 하지만 이 가정은 좀비 영화가 만들어 낸 게 아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의 사상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법과 제도—혹은 '사회계약'—로 억눌러야 문명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홉스는 인간이 그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연상태에서 누렸던 자유를 일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를 보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홉스가 말하는 자유일 거다.

이 생각은 유교의 성악설(性惡說)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기보다는 본성이 악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법과 규범으로 이를 다스려야 한다는, 인류가 가진 꽤 오래된 생각이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문명이 인간의 악한 본성이 발현되지 않게 막아준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껍데기 이론(veneer theory) 혹은 얇은 껍데기 이론(thin veneer theory)이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의 프란스 드 발
이미지 출처: National Geographic

하지만 드 발은 '인간의 도덕성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본성을 감싸고 있는 얇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저서 '내 안의 유인원(Our Inner Ape)'에서 "인간은 인공적인 계약에 의해서만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토머스 홉스의 주장이 인류 사회가 가진 전통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인간이 가진 도덕성, 공감능력, 커뮤니티를 유지하려는 마음은 순전히 인간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의 먼 친척인 영장류 동물에게서도 발견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무너지고, 경찰과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해도 될까? 어쩌면 이건 아주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아래와 같은 환경에 남겨졌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한가, 아니면 안심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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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남자냐, 곰이냐(Man or bear)"라는 논쟁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여성들에게 "당신이 숲에서 혼자 걷고 있다가 낯선 남자를 만나는 상황과 곰을 만나는 상황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곰을 만나는 게 낫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본 남성들은 어이없어 했다. "남자들을 무조건 가해자 취급하느냐"는 익숙한 분노부터 "도대체 곰이 어떤 동물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라는 맨스플레인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여성들이 얼마나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는 논쟁이지만, 법과 제도, 커뮤니티의 감시와 통제가 없으면 인간은 선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이 무조건 가해자 취급한다고 불평하는 남성들 중에도 "문명 붕괴에 대비해" 총기를 보유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인식이 여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곰의 습격을 대비해서 AR-15 자동소총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럼 홉스와 드 발 중에서 어느 쪽이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했을까? 답을 알기 위해서는 과학적 실험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를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심리학에서 가장 악명 높은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다.

이미지 출처: Stanford Prison Experiment

이 실험은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가 진행한 것이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짐바르도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는 평생 "평범하거나 착한 사람들이 나쁜 일, 악한 일을 하게 되는 이유를 밝히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그 답을 알기 위해 짐바르도가 고안한 방법은 간단하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24명의 대학생을 반으로 나눠, 12명에게는 죄수의 역할을 맡긴 후,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마련해 둔 모의 교도소에 수감했고, 다른 12명에게는 교도관의 역할을 맡겨 죄수 역을 맡은 참가자들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교도관 역을 맡은 참가자들에게 교도소 내 질서를 유지하고, 탈옥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수감자들이 진짜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은 심리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그들은 일종의 역할극을 수행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이다.

애초 총 2주 동안 진행하기로 한 실험이었지만, 이틀째부터 참가자들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도관들이 새벽에 느닷없이 수감자들에게 점호를 실시해서 괴롭혔고, 이에 반발한 수감자들은 항의를 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중에 실험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거짓 소문이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교도관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권력을 남용하며 성적 학대와 고문 같은 가혹행위를 저질렀고, 수감자들은 자기가 진짜 수감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들은 식사를 거부하며, 소화기를 들고 교도관들의 명령에 저항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실험은 5일만에 중단되었다.

1971년 당시의 필립 짐바르도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실험을 주관한 짐바르도는 평소 평화주의자 같았던 학생들이 교도관이라는 특정한 맥락에 처하자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완전히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보고했다. 워낙 충격적인 실험이었기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에 출판된 거의 모든 심리학 교과서가 이를 소개했다. 그 결과, '인간은 상황에 따라 숨어있던 악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 되었고, 짐바르도 교수는 훗날 미국 심리학회(APA)의 회장까지 역임했다.

2010년대 중반,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가 이 실험과 관련한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티보 르 텍시에(Thibault Le Texier)라는 연구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스탠퍼드 대학교에 보관된 문서와 비디오를 살펴 보다가 실험 참여자들이 보인 문제 행동들이 짐바르도가 지시한 것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얇은 껍데기 이론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