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넌 패로우는 2017년, 헐리우드의 오랜 비밀이었던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낱낱이 밝히는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미디어 업계의 엘리트층이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단결해서 업계 동료의 범죄를 숨겨주는지 목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사리는 대신 더 거침없이 공격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가 2019년에 내놓은 책, 'Catch and Kill(포획, 사살)'은 "포식자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 스파이, 음모"라는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하비 와인스틴과 같은 헐리우드의 거물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를 누가, 어떻게 쉬쉬하고 숨겨주는지를 폭로한다.

그 책에서 패로우는 자기가 와인스틴의 범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NBC 뉴스의 총책임자 노아 오펜하임(Noah Oppenheim)이 "영화 제작자가 여자 좀 만졌다는(a movie producer grabbing a lady)" 얘기가 무슨 뉴스거리냐고 했던 말을 언급했다. 같은 업계에서, 그것도 대형 방송국 뉴스의 책임자를 그렇게 고발하는 건 아무 기자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로넌 패로우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미디어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두 사람을 부모로 두고 있고, 앞의 글에서 언급한 일들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패로우는 이름 없는 기자들처럼 기사가 조용히 묻힐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그렇게 가리지 않고 고발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이 책의 출간 시점에 했던 인터뷰에서 패로우는 하비 와인스틴이 NBC에 압력을 가했고, 그 압력의 결과로 NBC가 패로우가 취재한 내용이 방송되지 못하게 막았으며, 결국 뉴요커에 이 기사를 가져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패로우는 하비 와인스틴이 자기의 성범죄와 관련된 모든 기사를 막기 위해 전직 정보요원들이 세운 이스라엘의 정보업체 블랙큐브(Black Cube)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패로우는 자기가 찾아낸 자료들을 은행 대여금고에 넣어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만약 자기가 목숨을 잃으면 내용물을 꺼내어 알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로넌 패로우와 그의 책 (이미지 출처: Wikipedia)

HBO를 통해 공개한 다큐멘터리 'Surveilled'에서 패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탐사 기사 시리즈를 쓰는 과정에서 힘 있는 사람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스파이를 보내서 제 뒤를 따라다니게 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쓴 사람들도 있었지만, 디지털 수단을 사용해서 저를 감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폰의 GPS 데이터를 통해 저를 추적하는 식이었죠." 그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현재 가장 앞선 감시 기법이 디지털 감시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디지털 감시 기술은 놀랍게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다. 현재 나와 있는 가장 앞선 기술을 사용하면 감시 대상의 스마트폰에 들어가 사진, 텍스트 메시지, 이메일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암호화(encrypted)된 메시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폰의 카메라와 마이크까지 동원해 대화를 녹음하거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그런 모든 감시를 마친 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그는 2019년 메타의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이 해킹당한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사용된 스파이웨어가 이스라엘의 테크 스타트업에서 만든 상업용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NSO 그룹이라는 이 기업에서 만든 페가수스(Pegasus)는 다른 사람의 폰에 들어가 사용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정보를 빼내고, 필요하면 촬영과 녹음까지 할 수는 막강한 스파이웨어였다.

NSO 그룹의 홈페이지는 자사의 서비스가 테러리스트와 마약사범, 아동성범죄자를 잡는 데 사용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문제의 페가수스라는 스파이웨어가 어느 나라에 팔려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추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로넌 패로우는 이를 만든 NSO의 경영진 및 직원들과 인터뷰한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 회사가 자사의 비즈니스가 얼마나 합법적인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장면이다. 페가수스는 국가의 정보기관이 주도해서 비밀리에 제작된 스파이웨어와 달리 상업용이기 때문에, NSO는 일반 테크기업과 마찬가지로 이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라이선스를 통해 판매해야 한다.

NSO가 페가수스를 팔면서 당당한 건, 스파이웨어이기는 하지만 이 제품이 1) 법치국가에서 2) 합법적인 방법으로 3)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수사하는 데 사용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테러 단체나 국민을 탄압하는 정권에 팔지 않으면 된다는 태도다. 하지만 여기에 큰 구멍이 있다. 우선 법치국가라고 해도 그 수준이 다양하다. 러시아나 중국도 엄연한 법치국가이지만, 이런 나라에서 인권이 얼마나 보장될까? 아니, 미국은 믿을 수 있는 나라일까? 합법적인 방법이라는 것도 어설픈 기준이다. 스파이웨어를 구매한 나라에서 이를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사용하는지 누가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감시하는 데만 사용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한국에서 1980년대만 해도 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범죄자였고, 일본 제국주의의 기준에 윤봉길, 안중근은 엄연한 테러리스트다. 이건 지금도 전혀 다르지 않다. 범죄자, 테러리스트를 정권이 정의한다면 이 기준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준이다.

이런 허점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판적인 칼럼을 미국 신문에 쓰던 카슈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혼인과 관련해 튀르키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의 지시를 받아 일어난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가 튀르키예에 있는 총영사관을 방문할 것을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까?

NSO가 페가수스를 판매한 국가 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되어 있었다. NSO의 CEO는 페가수스가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정부는 사건 직후 NSO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의 기업이나 기관이 거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말 카슈끄지가 튀르키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들어가는 장면. 그가 생전에 촬영된 마지막 모습이다. (이미지 출처: ABC News)

합법적인 사업체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NSO는 로넌 패로우와 만나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변호했다. 디지털 감시는 좋든 싫든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아마도 사우디의 경우처럼) 이 기술을 불법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비밀리에 제작, 유통되는 스파이웨어와 달리 투명한 기업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구매한 나라 정부의 관리와 규제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투명한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걸 구매한 국가가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장 이스라엘 정부부터 이 스파이웨어를 사용해 팔레스타인의 인권 운동가들의 폰을 해킹해서 추적했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앞선 기술이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암시한다. 패로우와 만난 한 이스라엘 의원은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시, 추척해 온 역사가 길고,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개발된 스파이웨어 기술이 각국의 안보와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에 판매되는 것이다. (페가수스는 서구 유럽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 팔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해서 만들어진 기술이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사용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NSO 그룹 본사 건물 (이미지 출처: The Jerusalem Post)

페가수스가 각국에서 어떻게 인권을 침해하고 불법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밝혀낸 곳이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교에 있는 시티즌랩(Citizen Lab)이다. 개인정보의 침해와 인권을 위협하는 인터넷 보안 문제를 연구하는 시티즌랩에서는 특정 폰에 페가수스를 포함한 다양한 스파이웨어가 설치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술을 만들어 냈다. 이 단체를 이끄는 론 디버트(Ron Deibert)는 현재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파이웨어를 파는 곳에서는) 이 기술이 각국 정부가 범죄, 테러와 싸우는 데 사용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죠. 그건 이런 기술의 가진 한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기술이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데 성공해서 투명성이 확보되는 게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가고 있는 방향은 아주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democratic backsliding)하고 있는 현상이 명백하게 관찰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가 퍼지고 있죠. 저는 규제를 받지 않는 감시 산업이야말로 현재 권위주의 확산을 돕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확신합니다."

시티즌랩의 디렉터 론 디버트 (이미지 출처: Toronto Star)

미국도 감시 스파이웨어의 위협에서 예외가 아니다. NSO는 페가수스가 미국의 전화번호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놨다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 외교관들이 사용하는 폰이 페가수스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더 놀라운 건 미국 정부가 NSO로부터 페가수스를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로넌 패로우의 경고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