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 영화 이야기,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할 때면 "1982년에 나온 영화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는 사실 스필버그가 감독한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미국감독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의 규정에 따르면 한 감독은 한 번에 한 영화만 찍을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같은 해에 'E.T.'를 선보인 스필버그가 '폴터가이스트'를 동시에 찍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폴터가이스트'의 공식 영화 정보를 보면 이 영화의 감독은 '텍사스 전기톱 학살(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로 유명한 토비 후퍼(Tobe Hooper)다. 그럼 왜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감독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필버그는 1970년대 후반, 감독으로서 물이 한창 올라있었다. 1975년에 '죠스,' 1977년에 '미지와의 조우'를 성공시킨 후, 1981년에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인 '레이더스(Raiders)'를 선보였다. 나이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죠스'로 흥행 감독이 된 그는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었고,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을 그린 '나이트 스카이(Night Skies)'라는 영화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대략 '미지와의 조우'를 만들던 시점이었다.

'나이트 스카이' 속 외계인 모형. 그의 다른 작품 'E.T.' 속 외계인과 흡사하다. (이미지 출처:Yahoo)

'나이트 스카이'는 결국 영화로 제작되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남은 자료들(가령 위의 사진)을 보면 스필버그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이미지와 비슷한 부분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나이트 스카이'는 'E.T.'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무서운 영화였다. 'E.T.'는 지구를 찾은 외계인들이 실수로 한 명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시작되는데, '나이트 스카이'도 몇 명의 외계인이 그렇게 지구에 남겨진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지구에 남겨진 외계인

나샤와티에 따르면 스필버그는 애초에 그렇게 무서운 외계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계획하고 컬럼비아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아이들이 나오고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의 우정을 다룬 "따뜻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바꾼다. 컬럼비아 영화사가 스필버그와 계약했을 때는 '죠스'처럼 무서운 작품을 기대했던 것이었는데, 감독이 (디즈니에서나 만들 법한)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자 제작을 포기하기로 한다. "관심을 가질 만한 관객이 제한적"이라는 게 내부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영화사는 '턴어라운드(turnaround)'라는 걸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영화사가 나서서 그때까지 들어간 비용을 내는 조건으로 영화 제작권을 파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제작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스필버그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던 유니버설은 흔쾌히 컬럼비아에 1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제작권을 사온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E.T.'가 헐리우드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것을 생각하면 컬럼비아는 뼈아픈 실수를 한 것이다. (컬럼비아는 유니버설에 제작권을 팔면서 영화 수익의 5%를 받는 조건을 걸었는데, 그렇게 해서 받게 된 'E.T.' 수익의 5%가 그해 컬럼비아의 최대 흥행작이 벌어들인 수익보다 많았다고 하니 흥행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 'E.T.'의 예고편 영상

스필버그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를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만들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트 스카이'로 생각했던 무서운 영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MGM과 함께 '폴터가이스트'라는 공포물을 제작하기로 하고 제작자로 참여했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토비 후퍼를 감독으로 앉힌다. 하지만 나샤와티에 따르면 스필버그가 이름만 제작자였지, 사실상 매일 촬영장에 출근하면서 (12주 촬영기간 중 3일만 빼고 매일 나왔다고 한다) 영화 제작을 감독처럼 꼼꼼하게 챙겼다. 후퍼는 사실 이름만 감독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거다.

나샤와티는 스필버그의 말을 인용해 '폴터가이스트'는 그가 두려워한 것, 'E.T.'는 그가 사랑하는 것을 다룬 영화였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악한 모습을, 다른 하나는 선한 모습을 다룬 쌍둥이 같은 영화들이라는 것. 특히 스필버그는 "한 영화는 교외 지역(suburban)의 악한 모습, 다른 한 영화는 교외 지역의 선한 모습을 그렸다"고 했는데, 나샤와티의 책을 소개하는 뉴요커의 앤서니 레인(Anthony Lane)은 어느 영화가 좋은 면을, 어느 영화가 나쁜 면을 다뤘는지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한다. '폴터가이스트'는 무서운 영화이지만, 영화 초반을 보면 엄마는 행복하게 웃고, 아빠는 침대에서 책을 읽는, 평화롭고 행복한 한 가정을 보여준다. 반면 'E.T.'는 따뜻한 영화라고 하지만 주인공 아이들은 이혼한 가정에서 엄마와 살면서 침울한 얼굴이다.

화목해 보이는 일상으로 시작하는 '폴터가이스트'는 호러물로 변하고, 불행해 보이는 가정에서 시작한 'E.T.'는 아름다운 결말을 가진 동화 같은 얘기다. 둘 다 풍요로운 1980년대 미국의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폴터가이스트'에 등장하는 가족과 'E.T.'에 등장하는 가족 (이미지 출처: Chrism227, food & a film)

스타트렉과 트론

그렇다면 '스타트렉 2: 칸의 분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알다시피 '스타트렉'은 1966년에 시작되어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방영된 TV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제작진은 이를 극장판 영화로 만든다. 1979년에 나온 '스타트렉'이 그 작품으로, 평론가와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특수 효과는 볼 만했지만, 너무 길고 진부한 내용이었고, TV 시리즈가 끝난 후 한참 지나서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만든 파라마운트사가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했다면 '스타트렉' 시리즈는 우리에게는 잊혀진 작품이 될 뻔 했다.

하지만 제작사는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작품 자체는 실패했지만, 팬들이 관련 상품을 사준 덕에 적자는 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 보기로 작정했고, 그래서 2편이 나올 수 있었다. 1편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배우들의 결의로 영화가 더욱 좋아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거나  '스타트렉 2: 칸의 분노'는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은 작품이고, 무엇보다 '스타트렉'이라는 프랜차이즈를 살린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튜브에서 '스타트렉 2: 칸의 분노' 영화 전체를 볼 수 있다. (단, 지역에 따라 시청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트론'도 실패를 딛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디즈니는 1979년에 '블랙홀(The Black Hole)'이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에 실패했다. 디즈니가 이걸 만든 이유는 '스타워즈'의 성공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원래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아이디어를 갖고 디즈니에서 제작 지원을 받고 싶었지만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흥행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서 거절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필버그의 'E.T.'를 거절한 컬럼비아 영화사만 큰 실수를 한 게 아니다.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대본 단계에서 판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역량과 관객의 취향 변화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1970년대 말처럼 영화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던 시점에 새로운 시장을 예측해서 투자하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게다가 당시 디즈니의 상황은 몹시 나빴다. 지금은 헐리우드의 "원톱"인 거대 스튜디오로 알려져있지만, 1970년대의 디즈니는 한물간 제작사였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전성기였던 1940~50년대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디즈니가 세상을 떠난 1966년 이후로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그저 '백설공주,' '밤비' 같은 과거의 인기작을 재상영하면서 돈을 벌고 있던 스튜디오였다. 당연히 예산도 넉넉하지 않아서, 영화인들 사이에는 제작비를 짜게 주기로 소문난 제작사였다고 한다.

'블랙홀'의 몇 장면을 보면 디즈니가 '스타워즈'의 성공을 부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디즈니는 '블랙홀'의 흥행에 실패한 후에 좌절하지 않고, 거대 스튜디오들과 경쟁을 하려면 모험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심을 했다. 주인공이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설정에 특수효과도 아주 낯선 영화 '트론'에 디즈니가 베팅을 한 건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기법의 촬영, 신선한 스토리라인 등으로 SF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지금은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Pixar)에서 '토이 스토리' 등의 작품을 크게 히트시킨 존 라세터(John Lasseter)는 "1982년의 '트론'이 없었다면 '토이 스토리'도 없었다"고 했을 만큼 '트론'은 제작사와 관객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앤서니 레인은 크리스 나샤와티의 책('The Future Was Now')이 1982년 이전에 나온 비슷한 흥행 영화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레인은 1982년 여름에 나온 8편의 작품들도 사실은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했다기보다는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을 뿐이라면서, 그 작품들은 돈을 버는(cashing in) 데 성공했다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럼 나샤와티는 이 책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지금의 헐리우드가 1982년의 헐리우드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지금 헐리우드는 큰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극장가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흥행하는 영화가 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고, 제작사들은 패닉에 빠져 있죠. 1982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77년에 나온 '스타워즈'가 큰 성공을 거뒀고, 그걸 보면서 다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모르고 있었죠. 저는 지금의 헐리우드가 그 시절의 헐리우드처럼 창의적인 시도와 모험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섭다고 웅크리고 누워서 후속편만 만들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오펜하이머'와 '바비' 같은 작품이 더 나와줘야 합니다. 1982년 여름에 나온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영화들이 야심 찬 작품들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제작사는 영화계 밖에서 온 경영자들이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끌던 제작사에서 그런 작품들이 나온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