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2023년은 "바벤하이머"의 해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극장가"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침체했던 영화계에 큰 희망을 불어넣어 준 영화가 '바비(Barbie)'와 '오펜하이머(Oppenheimer)'였다. 이 두 영화가 영화인들에게 희망이 된 이유는 이들이 단순히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극장 수입 1위였던 '바비'와 3위였던 '오펜하이머' 사이에는 2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있었고, 4위부터 9위까지는 모조리 프랜차이즈 영화들이었다.)

크게 히트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후속편이 극장 스크린을 장악하는 오래된 관행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두 작품이, 그것도 스크린 확보가 어렵다는 여름에 등장해서 좋은 성적을 낸 건 대단한 일이었다. 영화인과 영화 팬들 모두 "바벤하이머"의 성공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제 슈퍼 히어로물이 아닌, 진정한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2023년 여름 극장가는 "바벤하이머"가 견인했다. (이미지 출처: Salon)

하지만 2024년이 되어 여름이 다가올 무렵, 팬들의 기대를 꺾는 기사가 한 편 등장했다. "작년에는 '바벤하이머'를 볼 수 있었지만, 올해 여름은 후속편들의 해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기사의 예측대로 현재까지 전 세계 흥행수익 1위(인사이드 아웃 2)부터 12위(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까지가 모조리 과거 인기작의 후속편으로 채워졌다. '바비'나 '오펜하이머'처럼 전작의 유명세에 의지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를 찾으려면 10위권 이하를 뒤져야 한다. 왜 올해에는 신선한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걸까?

이제는 후속편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전통적인 후속편인 시퀄(sequel)이 있고, 히트작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프리퀄(prequel), 같은 시점의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이드퀄(sidequel)도 쉽게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아주 쉽고 분명한 이유를 든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관객이 이제 슈퍼히어로물의 후속편이 아닌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영화 제작사들이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려면 수년이 걸린다. 따라서 2023년의 성공 공식에 따른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곧바로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헐리우드 제작사의 경우) 작품의 구상에서 시작해서 극장에 걸릴 때까지 4~5년 정도가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바벤하이머"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신선한 작품들은 2028년에나 만나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4년 여름은 다시 블록버스터 후속편들로 채워질 거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이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1982년 여름에 쏟아진 전설적인 헐리우드 영화 8편이다.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제작된 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모든 히트작이 들어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8편을 모두 아는 독자라도 이 작품들이 모두 한 시즌에 나왔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헐리우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2개월이라는 기간 안에—8편이 일주일 간격으로—개봉되었다는 사실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미켈란젤로, 레오나드로 다빈치, 라파엘 같은 거장 예술가들이 일제히 등장했던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1982년의 공기에 특별한 뭔가가 있었던 걸까?

1982년 여름 두 달 동안 쏟아져 나온 8편의 헐리우드 영화들 (이미지 출처: eBay, Amazon, IT CAME FROM, Amazon, Film Art Gallery, Etsy, Film Posters, Amazon)

1982년의 헐리우드 영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 'The Future Was Now (그때는 미래였다)'의 저자 크리스 나샤와티(Chris Nashawaty)는 1982년 여름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년 전에 무슨 작품이 나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특정 영화가 큰 히트를 하는 걸 본 영화사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기로 해도 결과물이 나오려면—"마치 항공모함의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5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7년이다.

1977년 여름, 별생각 없이 극장을 찾았던 미국의 십 대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 신인 배우들이 가득 등장하는,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부극 같은 이 영화는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고,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바로 '스타워즈(Star Wars)'다.

그해 흥행수익 1위를 차지한 '스타워즈'는 2~4위의 영화 수익을 합친 것만큼의 돈을 벌었고, 10대, 20대 팬들의 반응에서 전에 본 적이 없는 현상—아이들은 본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면서 과거에는 없었던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냈고, 영화와 관련된 상품(merchandise)을 사면서 제작사의 수익을 키워줬고, 후속편을 간절히 기다리는 팬덤이 탄생했다—을 발견한 영화사들은 사이언스 픽션(SF)과 판타지(fantasy)의 세계에 헐리우드 영화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다. 많은 영화사가들이 이야기하는 '스타워즈'의 공로는 과거에는 아이들, 그것도 유별난 아이들(geeks)의 독특한 취미, 하위문화 정도로 취급했던 SF 장르를 주류 문화로 올려놓은 것이다.

일단 돈이 된다 싶으면 일제히 몰려가는 헐리우드 제작사들의 특성상, 이들은 대규모 흥행의 가능성, 팬덤이 만들어질 수 있는 SF, 판타지 영화에 올인했고, 그 결과가 1982년 여름에 쏟아져 나온 8편의 걸작이었던 거다.

'스타워즈(1977)'의 오리지널 포스터로 알려진 작품은 두 개다. 왼쪽은 중국계 미국인 아티스트인 톰 정(Tom Jung)의 작품이고, 오른쪽은 영국 아티스트 톰 챈트렐(Tom Chantrell)의 작품이다. 오른쪽 포스터가 실제 영화 내용에 가깝지만, 개봉 당시 스타워즈를 봤던 관객에게는 다소 신비주의적으로 그려진 톰 정의 포스터가 더 익숙하다. 톰 정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출처: Reddit)

크리스 나샤와티는 1982년에 나온 작품들이 이후 헐리우드의 방향,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지만, 그때 나온 영화들은 지금과 달리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IP)에 의존한 영화들과 달랐다고 주장한다. 우선 'E.T.'와 '매드 맥스 2: 로드 워리어'는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고, '더 씽(The Thing)'은 SF 소설 '거기 누구냐?'에 바탕했고,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유명한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바탕한 작품이지만, 어느 작품도 요즘 헐리우드를 주도하는 식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니었다. 나중에 그런 프랜차이즈로 발전할 영화들은 있었지만, 적어도 1982년 여름에 나온 작품들은 신선한 창작물이었다.

크리스 나샤와티의 책, 'The Future Was Now'

1982년 여름의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필버그는 당시 헐리우드 제작사들이 가장 탐내는 "골든보이"였다. 스필버그가 1975년 발표한 '죠스(Jaws)'는 그해 흥행수익 1위를 기록했고, 1977년에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스타워즈'로 흥행 기록을 세웠다. (스필버그는 1977년에 '미지와의 조우'라는 SF 영화로 흥행 3위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헐리우드 제작사들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SF 영화를 만들 감독으로 스필버그를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E.T.'는 1982년 여름 흥행작 8편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무려 11년 동안 헐리우드 역대 흥행수익 1위를 유지했다. (1993년에 이 작품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 영화는 스필버그의 다른 작품, '쥬라기 공원'이다.)  

그런데 여기에 영화사를 배운 사람들은 잘 아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1982년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주장이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스필버그가 두 작품을 동시에 만들었을 만큼 (지금의 헐리우드를 낳은) 1982년의 영화판은 그만큼 뜨거웠고, 스필버그는 그만큼 물이 올라 있었다.

'죠스' 촬영 당시의 스티븐 스필버그 (이미지 출처: The Cinemawala)

'1982년 여름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