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팬덤(fandom)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와이먼씨께서도 몇 번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영화의 팬덤 현상을 보면 소셜미디어가 정치를 비롯해 다른 많은 분야에 미치는 영향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동일하고 견고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뉴욕타임즈의 A.O. 스캇이 영화 평론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죠. 영화 평론가라면 가장 탐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위치를 포기하다니, 하고요. 그런데 스캇이 자기가 그만두는 이유를 밝힌 글에 팬덤을 아주 중요한 이유로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와이먼씨의 반응을 듣고 싶어서요. "팬 문화는 순응(conformity)과 순종(obedience), 집단 정체성, 군중 행동(mob behavior)에 기초해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반민주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대표하며, 예술과 영화가 추구하는 목표를 해친다."

와이먼: 상당히 신랄하죠. 그 글을 읽으면서 저도 무척 안타까웠어요. 저는 그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종이에 인쇄되는 매체의 경우와 달리 온라인에 글이 올라오면 댓글난을 피하기 힘들죠. 댓글을 막으면 알고리듬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예전과 달리 A.O. 스캇도 온라인에 발행되니 자기 리뷰 밑에 달리는 댓글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스캇이 그 글에서 그랬죠. 자기가 '어벤저스(The Avengers)'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리뷰를 썼더니, 그 영화에 출연한 새뮤얼 L. 잭슨이 그 리뷰에 반대하면서 자기 트위터에 올려서 공개적으로 스캇의 의견에 반대했다고요.

그 글에서 스캇은 '어벤저스'를 싫어한다고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섞인 리뷰(mixed review)"를 썼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기 배우가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그걸 팬들에게 뿌리니까 이 영화의 팬들이 "A.O. 스캇은 영화 평론 말고 자기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고 한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A.O. 스캇 (이미지 출처: Literary Hub)

저는 그분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댓글을 읽으면 즉각적으로 그런 반응이 나오게 되죠. 저는 모든 팬덤이 반드시 스캇이 주장하는 것처럼 권위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옮긴이)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이렇게 자기네가 파는 상품–결국 이들이 파는 영화들은 상품이니까요–을 중심으로 그걸 사는 사람들 개개인의 정체성을 (팬덤 안에) 하나로 묶는 게 정말 무섭습니다.

이런 상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건 영화 '바비' 때에도 볼 수 있었죠. '바비'는 진보이고, 페미니즘이니 네가 그걸 싫어한다면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태도 말입니다. (와이먼이 '바비'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후에 받았던 공격이다–옮긴이) A.O. 스캇이 '어벤저스'를 두고 그런 걸 겪은 거죠. 그 영화의 팬들은 스캇이 그 영화–제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영화인데–를 좋아하지 않으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거고, 문화적 우월감에 빠진 사람(snob)이라고 몰아간 겁니다. 슬픈 일입니다만, 스캇이 팬덤을 약간 지나치게 일반화한 것도 있어요.

진행자: 그럼 영화를 둘러싼 이런 팬덤 문화는 기업들이 결정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걸까요, 아니면 관객들이 밑에서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조직한, 자연발생적인 걸까요?

와이먼: 저는 양쪽 모두에서 출발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고 봅니다. 왜냐면,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마블, DC 코믹스와 같은)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 시절에 향수(nostalgi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팬덤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건 자연발생적인 건데, 기업들이 그런 팬덤을 활용하기로 하면서 두 힘이 만나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 거죠.

코믹콘(Comic Con)의 마블 부스에 모인 팬들 (이미지 출처: Sideshow)

진행자: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영화에 관해서 나누는 대화가 알고리듬에 의해 작동하는 소셜미디어 안에서 일어나잖아요. 저희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대화를 나누던 중에 와이먼씨께서 하신 말씀 하나가 정말 기가 막힌다고 생각해서 제가 적어두었어요. (웃음) 뭐라고 하셨냐면, "밀레니얼과 Z세대는 정체성을 집단적(전체적)으로 정의하는 경향(totalizing approach)이 있는데, 이건 예술을 즐기는 데 정말 나쁜 방법이다." 이걸 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 영화들의 예도 좀 부탁드립니다.

와이먼: 가령 틱톡이나 레터박스드 같은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아주 견고한 카테고리들 안에 넣도록 유도합니다. (특정 기준에 따른) 각종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누군가 어떤 영화를 부르는 용어를 만들어 내면 그게 바이럴 되면서 굳어지죠.

저는 특히 Z세대가 그런 딱지(라벨)를 붙이는 성향이 있다고 보는데, 한편으로는 그게 나이가 어릴 때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아직 자기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을 때는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쉽게 분류할 수 있는 딱지를 붙이고 그걸 좋아하는 걸로 정체성을 삼아 자기를 이해하려 합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데 틱톡 같은 곳에서는 도를 좀 넘어서 "이런 영화들을 좋아하는 당신은 이런 사람"이라는 식으로 영화를 묶어버려요. 앞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를 언급했지만, 제가 '소프트한 여성 영화들(soft girl movies)'이라는 말을 했더니 틱톡에서 그게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어 돌아다니더라고요. 제가 그런 트렌드에 들어가는 건 기쁜 일이기는 하지만 (웃음)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레드플랙(red flag, 위험신호) 영화들"이라고 해서 특정 영화들—가령 '파이트 클럽(Fight Club)'이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보랏(Borat),' 그리고 마틴 스코세이지나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모든 영화들—을 보면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는 무조건 피하라"는 버즈피드의 기사.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것들을 모은 리스티클(listicle)이다.

제가 보기에는 그건 영화를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가령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물론 처음 나왔을 때와 문화가 달라져서 지금 보면 아니다 싶은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에 그 영화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더니, 정말 대단한 영화였고, 제가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재확인했어요. '파이트 클럽'도 그래요. 반자본주의(anti-capitalist) 영화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큰 의미를 갖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이 나왔던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런 훌륭한 영화들을 도매금으로 쓰레기 취급하는 건 정말 아쉽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영화들이 가진 장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작품으로서 다각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점도 있지만 그 영화들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이었는지, 그리고 작가로서의 감독이 주도하는 영화였다는 점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그렇다면 그렇게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관객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영화사들이 만들지 못하는 영화도 있을까요? 특히 요즘은 영화관 수입도 줄어들고, 수익률도 떨어졌잖아요. 이렇게 관객이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며 영화를 논하는 분위기 때문에 만들 수 없는 영화가 있을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영화들이 선정되는 건 아닐까 궁금합니다.

와이먼: 물론이죠. 예전에 나온 영화 중에는 윤리적으로 모호한 접근을 하는 작품이 많았어요. 그런 영화들은 지금은 절대 만들 수 없죠. 저는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섹슈얼리티(sexuality, 성, 성생활)을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게 지금 기준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한다고 봅니다. 가령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베벌리힐스의 슬럼(Slums of Beverly Hills, 1998)'인데, 혹시 보셨을지 모르겠어요.

진행자: 보지는 않았는데, 그 영화를 좋아하는 너드(nerd) 문화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Slums of Beverly Hills (베벌리힐스의 슬럼)'

와이먼: 맞아요. 나타샤 리온(Natash Leone)이 아주 어릴 때 찍은 영화고, 마리사 토메이(Marissa Tomei)도 나와요. 이 영화는 어린 여자아이의 섹슈얼리티와 사춘기를 아주 솔직하게 다루는데, 아주 복잡한 문제에 솔직하게 접근하고, 그렇게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는 미투(me-too) 운동을 겪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욕을 먹을 만한 장면이 등장하죠.

하지만 제가 친구들과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와, 이 영화는 정말 흥미로운데 공감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영화는 지금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특히 나이 어린 배우들을 착취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쟁이 뜨거운 지금 상황에서는 말이죠. 그런 논쟁 중에는 문제를 너무 거칠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애텀 에고이언(Atom Egoyan)의 '엑조티카(Exotica, 1994)'나 '키즈(Kids, 1995)' 같은 영화들은 지금 만들면 안 되는 영화들이죠.

진행자: 네, 저도 그건 지금은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웃음) 와이먼씨께서 '쇼걸(Showgirl, 1995)'도 이야기하셨죠. 그게 나왔을 때 엄청났죠. '쇼걸'의 경우 영화가 말하려는 게 아주 모호했고, 사실 그런 모호함은 의도된 거였죠.

제가 폴 버호벤(Paul Verhoeven)의 영화를 좋아해서 와이먼씨와 이야기하려고 예전에 봤던 작품들을 다시 봤는데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도 그렇고 '로보캅(Robocop, 1987)'도 아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고, 성 폭력성이 극에 달하죠. 그게 영화의 의도이고, 당시의 관객들은 그걸 알고 봤어요. 버호벤 감독이 근래에 만든 '베네데타(Benedtta, 2021)'나 '엘(Elle, 2016)'도 참 좋은데 유럽 시장에서만 개봉했고, 미국에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영화들이고요. 미국에서 개봉하지 않기로 한 건 감독의 결정일 수도 있지만, 저는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로보캅(Robocop)'

와이먼: 맞습니다. 요즘 같은 환경에서 폴 버호벤의 영화가 흥행하기는 쉽지 않죠.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버호벤 감독이 잘하는 건데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건 아주 어려울 겁니다. 요즘은 샘 레빈슨(Sam Levinson, 십 대들의 성생활을 다룬 '유포리아'로 유명하다–옮긴이)이 이 시대의 도발적인 감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니까요. 저는 레빈슨은 버호벤만큼 도발을 잘 하지도 않고, 정치적인 접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저도 '베네데타'를 좋아합니다. 한 번은 그 영화를 두고 사람들과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성행위 장면이 도마에 올랐어요. 사람들은 그 영화에서 별로 필요도 없는 성행위 장면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쇼걸'을 이야기하는 영상에서도 한 얘기지만, 폴 버호벤은 벌거벗은 몸을 영화에서 계속 보여줘서 관객들이 벗은 몸에 거의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일을 자주 합니다. 그게 그런 장면이 들어가는 이유죠. '베네데타'의 경우 외설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을 섞어놓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신체들이 그런 주제를 드러내 주죠. 저는 '베네데타'가 그래서 좋았어요.

아주 영리하고, 흥미롭고, 충격적이고, 역겹죠.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베네데타(Benedetta)'의 한 장면

진행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술과 영화 작품이 도발하는(provoking) 것에 대한 인내심을 잃은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이 그런 도발을—순전히 도발을 위한 도발이 아니라, 영리한 방법으로—하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왜 예술작품이 때때로 우리 문화를 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와이먼: 저는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우리를 거울처럼 반사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항상 완벽하지는 않고, 아름답지 않기도 합니다. 영화에 비친 우리의 문화가 몹시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영화가 우리가 가진 도덕성을 우리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추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존재하는 어떤 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모든 예술이 근본적으로 그런 작업을 합니다. 싫다고 보지 않겠다면 오히려 그게 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건 좀 걱정스럽고, 두렵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과거에도 이랬던 적이 있고, 주기적으로 이러곤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걸 지금 다시 겪고 있으니 솔직히 좀 무섭네요.


마지막 편 '소셜미디어가 바꾼 영화산업 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