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저는 유튜브와 틱톡에서 많은 팔로워를 가진 채널에서 영화 평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즈에서 인용한 틱토커들의 말이나, 그들의 영상에서 하는 말을 보면 영화 평론을 정말 심하게 폄하합니다. 평론가들은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고, 문화적 게이트키퍼(gatekeeper, 문지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비난하더라고요. 이게 참 슬픈 일인 것이, 제게는 폴린 케일이나 로저 이버트 같은 위대한 평론가들이 한 일은 (틱토커들이 주장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작업이었거든요. 이분들은 관객들의 수준을 높여주었습니다. 영화를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 역사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영화 평론가들이었죠.

영화 평론가들에 대한 이런 반감이 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 틱토커들이 왜 평론가들과 다르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 반대하기로 한 이유가 뭘까요?

2013년에 세상을 떠난 로저 이버트의 젊은 시절 모습 (이미지 출처: USA Today)

와이먼: 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자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이 (온라인의 담론을) 민주화한다고 환영했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죠. 당장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소셜미디어가 아니었으면 제가 필름 코멘트 같은 매체에 글을 쓰는 영화 평론가로 대우를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해서 지금처럼 활동하고 할 수 있는 게 제게는 행운입니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이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셜미디어에는 특정 영역으로의 진입을 막는 게이트키핑에 저항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는 데 아무런 장벽이 있으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은 자칫하면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anti-intellectualism)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 평론은 과거에도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영화 평론가들이 대부분 언론 매체에 소속되어 글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리뷰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 평론이 스스로를 객관적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어요. 저는 영화 평론은 항상 주관적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아무리 좋은 평론도 결국 많이 아는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에 읽고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 평론의 목표는 영화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뉴요커의 영화 평론가였던 폴린 케일은 2001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그런데 사람들은 평론을 읽고 "그러면 당신이 영화를 만들든가," "이만큼 만들지도 못하면서 앉아서 남의 작품을 평가하느냐"라는 반응을 하죠. 이건 영화 평론의 역사 내내 그랬습니다. 폴린 케일도 관객의 사랑을 받는 평론가가 아니었어요.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죠. 저는 폴린 케일을 영웅처럼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그를 보는 시각이 갈립니다. 따라서 (영화 평론가를 욕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셜미디어가 이런 종류의 반지성주의적 담론을 더 키운 것은 맞습니다.  

진행자: 저도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만, 와이먼씨처럼 거대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평론의 전통을 이어가고 더욱 키우는 분들을 보는 건 기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유튜브나 다른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종류의 영화 평론과 문화 평론 영상을 처음 보고 '어라, 흥미로운 움직임이 있네?'라고 생각하셨던 때가 언제였나요?

와이먼: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영화를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은 남자가 카메라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영상이 대부분이었죠. (웃음) '채널 어썸(Channel Awesome)' 같은 채널이 대표적인 예죠.

유튜브 영화평 채널인 '채널 어썸'의 9년 전 영상 스타일

그러던 것이 2010년대 중반이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카메라에 대고 소리지르는 게 아니라, 영화의 테크니컬한 부분을 설명하는 채널들이 등장한 거죠. 가령 '너드라이터원(Nerdwriter1)'이나,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Every Frame a Painting)' 같은 채널입니다. 이런 채널들에서는 엄청나게 공을 들여 만든, 완성도가 높은 짧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는 영상 편집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감독들의 뛰어난 테크닉을 설명하면서 왜 관객이 그런 내용을 알아야 하는지 말해주죠.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장면을 어떻게 촬영하는지 설명하는 '너드라이터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

하지만 저는 영상 기술을 공부한 게 아니라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테크닉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 관심사는–제가 항상 이야기하는–린지 엘리스(Lindsay Ellis)의 채널과 비슷합니다. 린지 엘리스는 사실 카메라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채널 어썸'에 출연하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천천히 자기만의 스타일과 영역을 찾아냈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제가 하는 것처럼 영화를 그 시점의 문화라는 맥락 안에 놓고 바라보는 거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린지 엘리스가 그런 영역을 개척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개척자죠.

그러다가 2020년에 영화를 이야기하는 채널이 폭발했습니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집안에만 앉아있다 보니 다들 스트리밍과 유튜브만 보게 되고, 따라서 이런 채널의 시청률이 치솟은 거죠.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린지 엘리스였습니다.

디즈니의 '알라딘'이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바꿨는지 설명하는 린지 엘리스 채널의 영상

진행자: 팬데믹 동안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게 말이 되네요. 많은 사람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영화와 유튜브 비디오, 틱톡 비디오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영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고요. 그러니 평론을 하는 사람이나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비슷한 여정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겠네요.

제 경우에는 방금 말씀하신 채널 중에서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이 그랬어요. 전직 영상 편집자–아니, 그분은 현직으로 알고 있어요–가 만드는 그 채널에서 니콜러스 빈딩 레픈(Nicolas Winding Refn)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Driv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설명하는 4분짜리 짧은 영상이었죠. 그 영상은 영화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 장면의 화면 구성을 이야기하면서, 그 화면에서 인물들이 배치된 방식만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무의식적 정보로 전달한다고 설명했죠. 저는 영화에서 화면구성(composition)과 조명, 색을 사용해서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보고 나서 영화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가 언급한 장면.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의 이 설명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영화 평론은 기존의 영화 평론에서 출발한 것은 맞는데, 과거의 평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요소가 있다는 거죠. 와이먼씨께서는 이들이 폴린 케일이나 로저 이버트가 하던 평론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새로운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와이먼: 새로운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통해서만 평론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루는 매체는 비주얼 매체인데 그걸 텍스트로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반면 영상을 동원한 이런 채널들의 경우 설명하는 걸 직접 보여주는 게 가능합니다.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의 경우 재생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특정 부분을 확대해 가면서 관객의 이해를 크게 높여줍니다. 정말 대단하죠!

특히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이나 '너드라이터원'은 영상 편집을 했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지식을 갖고 있어요. 그 결과, 이들의 설명을 들은 관객들은 흥분하게 되고 아주 긍정적인 분위기의 영화 커뮤니티가 만들어집니다. 이들은 좀 더 전통적인 평론을 하던, 가령 폴린 케일 같은 사람들의 경우와는 조금 달라서, 영화를 비평하는 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확장시켜주고, 왜 이 영화를 좋아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물론 매체에서 일하는 영화 평론가, 저널리스트도 그렇게 도와줄 수 있지만 항상 그러지는 않죠. 유튜브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출판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경우 훨씬 더 엄격한 틀을 따라야 하니까 힘들죠.

진행자: 소셜미디어가 허용하는 자유를 활용해서 그런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건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 경우는 서로 다른 촬영감독의 스타일을 분석하는 영상을 한 30시간은 본 것 같아요. (웃음)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와이먼씨가 하시는 것과 같은 문화적 영화 비평으로 영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요.

영상을 만드실 때 어떤 목표를 갖고 작업하시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와이먼: 제가 크게 두 종류의 영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기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과거에 나온 영화를 다시 살펴보는 영상이죠. 대개는 사람들이 그다지 좋게 평가하지 않지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영화를 찾아냅니다. 가령 영화 '쇼걸(Showgirl, 1995)'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는 영상이 그렇습니다. 그 영화가 나왔을 때 어떤 의미였고, 지금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거든요. 제가 그렇게 새롭게 찾아내어 설명하는 영화들은 그냥 친구들과 함께 볼 때보다는 좀 더 생각하면서 보게 될 겁니다. 좀 더 역사적인 맥락에서 말이죠.

와이먼이 설명하는 '쇼걸'의 가치

그런 설명보다 비평에 가까운 영상을 만들 때는 달라요. 요즘 사람들은 다들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이해, 비평 능력)를 갖고 있어서 누구나 영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고, 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저는 영화 '바비'에 대한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분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그 영상을 본 후에 그 영화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람들이 그 영화를 싫어하게 만들려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그 영화를 보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제가 하는 평론이 주관적인 거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영화를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고, 그 영화 뒤에 무엇이 있고, 그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 이해하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그게 미디어 리터러시이고, 제가 하려는 거죠.


'소셜미디어가 바꾼 영화산업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