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서미 스트리트 1969 ③
• 댓글 남기기스루라인의 진행자 람틴 아라블루이(Ramtin Arablouei)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국의 정부가 국민의 삶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기 시작하던 때 나왔다. 그때는 메디케이드(Medicaid, 정부가 운영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 의료 보험)와 메디케어(Medicare, 65세 이상 노인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연방 정부 건강보험) 같은 제도가 마련되고, 민권법(Civil Rights Acts)이 통과되던 시대였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한국의 EBS와 비슷한 NET(National Educational Television Network)에서 방송을 시작한 후 1970년에 공영방송인 PBS가 설립되면서 그쪽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서 오늘에 이른다.
케이블이 아닌 전파로 TV를 보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UHF(Ultra High Frequency) 채널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EBS가 처음에는 UHF 채널로 방송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다른 방송국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VHF에 채널로 옮긴 것처럼, 세서미 스트리트도 처음에는 UHF 채널에서만 볼 수 있었다. 높은 빌딩 등 장애물이 많은 지역에서 UHF 채널을 시청하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서미 스트리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송 2주 차에 200만에 가까운 가정이 세서미 스트리트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인기만큼이나 세서미 스트리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주였다. 미시시피 공영방송(MPT)은 세서미 스트리트의 방송을 거부했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에서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이 친구이고, 함께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미시시피 주민이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부모들은 세서미 스트리트를 원했다. 다른 주 아이들은 인기있는 교육용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못 보느냐는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미시시피주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굴복했다.
세서미 스트리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부 인종주의자였던 것도 아니다. 교육 전문가 중에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페이스가 너무 빨라서 아이들이 자라서 주의집중장애를 겪을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고, 교육이 꼭 그렇게 재미있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교사도 있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서미 스트리트의 효과는 교실에서 나타났다. 그 프로그램을 본 아이들은 이미 기초 학습이 된 채로 입학했기 때문에 교사들은 커리큘럼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세서미 스트리트는 단순히 알파벳과 숫자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팀은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나 주위 어른들에게서 배우게 될 인종주의적인 태도를 거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아래는 개구리 커밋(Kermit the Frog)이 "It's not that easy being green"(초록색으로 사는 건 쉽지 않아)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없지만, 개구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색의 피부를 갖고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기 피부색을 생각해 보게 되고, 피부색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세상을 가르쳐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개념을 어느 나이에 가르쳐 줘야 하느냐는 건 제작진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였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고심했던 문제가 '죽음'이었다.
물론 세서미 스트리트가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부터 출연해서 시청자들과 친숙해진 배우 윌 리(Will Lee)가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배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때는 떠나는 이유를 이야기에 넣을 수 있지만,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진은 이를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취학 전 연령의 아이들에게 죽음을 가르쳐야 하는지, 가르친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연구하기로 했고, 방법을 찾는 데 무려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는 아이들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어느 날 빅 버드(Big Bird, 덩치는 크지만 6살 짜리 캐릭터다)가 세서미 스트리트에 사는 이웃(등장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나눠준다. 모두 하나씩 받아서 즐거워하는데, 빅 버드의 손에는 그림이 한 장 더 남아있었다. 후퍼 아저씨의 초상화였다.
빅 버드가 "빨리 후퍼 아저씨에게 드려야지"라고 하자, 이웃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어른들은 어린 빅 버드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빅 버드가 "근데 후퍼 아저씨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한 사람이 일어나 "빅 버드, 우리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나지 않니? 후퍼 아저씨는 돌아가셨어." 그 말을 들은 빅 버드는 "아, 맞다. 기억나요. 그럼 후퍼 아저씨가 돌아오면 드릴게요"라고 대답한다. 이웃들은 빅 버드에게 죽음의 의미를 설명한다.
"빅 버드, 후퍼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아."
"왜 안 와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거야."
"다시는 안 와요?"
"응,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왜요?"
"죽어서 그래. 죽은 사람은 다시 오지 못해."
"후퍼 아저씨는 돌아와야 하잖아요. 아저씨의 가게는 누가 봐요? 아저씨가 없으면 누가 저한테 밀크셰이크를 만들어 주죠? 누가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빅 버드에게 어른들은 우리가 가게도 봐주고, 빅 버드에게 밀크셰이크를 만들어 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겠다고 위로한다. 빅 버드는 고개를 떨구고 그래도 예전 같지는 않을 거(It won't be the same)라고 한다. 제작진의 세심한 준비가 돋보이는 대목은 그다음이다.
한 이웃 아저씨가 빅 버드에게 다가가 "맞아. 후퍼 아저씨가 없으면 예전과 같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거 알아? 우리는 후퍼 아저씨를 알게 되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었을 때 우리가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이 대사를 말하는 배우의 목소리는 울음을 참는 듯 떨렸다. 다른 이웃은 빅 버드에게 "우리는 후퍼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잖아"라고 말하고, 빅 버드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 자기도 후퍼 아저씨에 대한 '기억'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인 이유는 후퍼 아저씨가 하늘나라에 갔고, 나중에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독교적인 이야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경우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신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솔직하고 성숙한 태도로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접근법은 '아이들은 죽음이나 인종주의처럼 어려운 주제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새로운 교육 철학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빅 버드는—6살짜리답게—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퍼 아저씨가 정말로 돌아오지 않는 거 맞느냐고 다시 묻는다. 이웃들이 그렇다고 하자, "이해가 안 돼요. 모든 게 좋았는데, 그냥 그렇게 계속 좋으면 안 되나요?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하고 항의한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한 이웃이 다가가 "그냥 이유 없이 그런 거야 (Just because)"라고 달랜다.
빅 버드는 자기가 그린 후퍼 아저씨의 초상화를 보면서 "루퍼 아저씨(Mr. Looper), 그리울 거예요"라고 말하고, 이웃들은 "빅 버드, 루퍼 아저씨가 아니라 후퍼 아저씨야"하고 웃는다. (빅 버드는 평소 후퍼를 루퍼라고 잘못 발음해서 사람들이 함께 웃곤 했다.) 그리고 이웃들이 모두 일어나서 빅 버드를 둘러싸면서 카메라가 점점 멀어진다. 이 장면은 한 번에 촬영되었다고 한다. 첫 촬영을 마치고 나서 조감독이 울며 나와서 "몇 군데 수정할 필요가 있는데, 다시 찍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모두들 안 된다고 말하고 분장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세서미 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에피소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앞의 글을 소개하는 페이스북 포스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 세서미 스트리트 조차도 동양계 캐릭터는 2021년이 최초." 다양성과 포함(흔히 '포용'으로 번역되는 inclusion)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분명한 진보적 어젠다를 갖고 탄생했지만, 포함의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초기의 머펫들(아래)을 보면 인종을 짐작할 수는 있어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인간의 피부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록색, 파란색, 분홍색, 노란색 피부를 가진 머펫들이—위에 등장한 커밋의 노래처럼—피부색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자기와 직접적으로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감정적 거리를 두고 그 주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랬던 세서미 스트리트가 흑인이 분명한 머펫을 내놓으면서 문제가 되었다.

루즈벨트 프랭클린(Roosevelt Franklin)이라는 이 캐릭터의 이름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다. 루즈벨트는 현대 미국의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세서미 스트리트가 선택했을 것이고, 보수 진영은 또 한번 세서미 스트리트를 싫어하게 되었을 수 있다. (찰스 슐츠도 피너츠 만화에서 흑인 아이를 등장시키면서 프랭클린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본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라는 해석이 흔하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루즈벨트는 짙은 피부를 갖고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흑인 아이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시청자들이 루즈벨트를 흑인으로 인식한 건 그가 미국 흑인들의 억양을 분명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는 재즈 뮤지션이 사용하는 스캣(scat)과 라임(rhyme)을 구사했고, 블루스까지 부르는 "쿨한" 아이였다. 도시의 흑인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있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앞의 글에서 잠깐 소개했던 매트 로빈슨이 연기했다.)
그런데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찬반이 갈렸다. 한쪽에서는 드디어 흑인의 화법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Ethnic ① 코드 스위치'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다른 쪽에서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때가 1970년대 초였다. 흑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백인의 "표준 억양"을 따르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그러니 루즈벨트와 같은 캐릭터를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 흑인 부모들이 많았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반대로, 루즈벨트가 "충분히 흑인스럽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반대에 부딪힌 세서미 스트리트는 1975년, 루즈벨트 프랭클린을 빼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이 보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보니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되고, "세서미 스트리트에 누가 들어와야 하는가?"라는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아시안 머펫은 왜 보이지 않느냐, 성소수자 가족은 왜 넣지 않느냐, 라며 더 큰 다양성과 포함을 요구했고, 그런 진보 진영의 요구를 받아들여 변화를 주면, 보수의 공격이 이어졌다.
미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세서미 스트리트를 미워하고, 공영방송을 폐지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목표로 설정했다. 텍사스의 테드 크루즈(Ted Cruz) 상원의원은 빅 버드가 아이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라고 권장하는 것을 두고 "빅브라더"라고 비난했고,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막기 위해 대선에 도전했던 공화당의 미트 롬니(Mitt Romney)는 "나는 빅 버드를 좋아하지만, PBS 예산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그런 롬니의 말을 두고 "드디어 누군가 나서서 빅 버드를 손보는군요"라고 비꼬아서 큰 박수를 받았다. 빅 버드는 미국 성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50년 넘게 방송되었기 때문에 지금 50대 이하의 미국인은 이 프로그램에 애착을 갖고 있고, 사람들은 자기의 어린 시절을 건드리는 것은 참지 못한다. 트럼프가 보수층을 대신해 공영방송과 세서미 스트리트의 돈줄을 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다.
람틴 아라블루이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학교와 정부의 진정한 변화를 막으려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만들어 내는 소음을 넘어 소외된 어린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뉴욕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흑인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끌어냈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은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동네와 그곳에서 나오는 메시지, 음악은 도대체 누가 결정하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세서미 스트리트는 항상 시끄러웠고, 앞으로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게 분명하다. 🦦
Sunny day 맑은 날
Sweeping the clouds away 구름을 몰아내고
On my way to where the air is sweet 공기가 달콤한 곳으로 가는 길
Can you tell me how to get 나에게 알려줄래?
How to get to Sesame Street? 어떻게 세서미 스트리트로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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