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원칙주의자 카터는 재임 중에 정치적 타협을 거부해서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지만,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독재자 박정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영빈관을 거부하고 용산의 미군 부대에 머무른 것으로 유명하다. ("사상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이 된 카터와 박정희 사이의 줄다리기에 관해서는 이 기사를 참고.)

그런 지미 카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레이건은 영화배우의 외모에 뛰어난 말재주와 농담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취임 직후에 암살범이 쏜 총에 맞고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옆에 있던 아내 낸시에게 "Honey, I forgot to duck(여보, 내가 피하는 걸 깜빡 잊었어)"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유명한 복서 잼 뎀시(Jack Dempsey)가 경기에 패한 후 아내에게 해서 유명해진 표현이었다. 사람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농담을 할 줄 알았던 레이건과 암살 시도 직후에 "Fight, fight, fight!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을 외친 트럼프를 비교하며, 레이건의 인격을 이야기한다.

더 유명한 농담도 있다. 수술실에서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레이건의 침대를 둘러싼 의사들에게 "여러분이 모두 공화당원이길 바랍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민주당에서는 자기가 죽기를 바랄 거라는 농담이었는데, 그중 민주당 지지자였던 한 의사는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감동적인 스토리가 나오니 미국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후 레이건과 피습 후 트럼프 (이미지 출처: Ronald Reagan Library, AP News)

그렇다면 레이건은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말솜씨와 대중 친화력을 갖게 되었을까? 단순히 그가 헐리우드 배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면 헐리우드는 정치인의 산실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게다가 레이건은 가장 인기 있었던 시절(1942년 무렵)에도 헐리우드 인기 랭킹 74위였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린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청중의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고 적절한 말을 기가 막히게 찾아 전달하는 법을 배운 것은 첫 글에서 얘기한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자본주의와 보수적 어젠다를 퍼뜨린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레이건을 TV에만 등장시킨 게 아니라, 전국에 있는 공장에 보내어 직원들의 단체 교육을 시켰고, 각종 업계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 레이건은 1954년부터 1962년까지 그 일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훈련을 받은 셈이다. 그는 그 기간이 "정치학 대학원 과정 같았다"고 한다.

대니얼 이머와는 뉴요커에 쓴 글에서 인류학자 제임스 C. 스캇(James C. Scott)을 인용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최고의 연설가는 청중의 기분을 파악해서 '정확한 음(perfect pitch)'을 내는 사람이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고, 반응을 들어 본 후, 다음에는 내용을 조금 바꿔서 다시 해 보고, 반응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배운다. 그게 레이건이 학습한 방식이다. 그는 남이 써 준 원고를 읽는 대신, 인덱스 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며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빠르게 바꿔서 전달했다.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에 레이건만큼 오랜 기간 동안 이 연습을 한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1964년 대선은 민주당의 린든 B. 존슨이 재선에 성공한 선거였지만, 레이건은 그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면서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렸고, 2년 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다. 이 연설에서 레이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미국 국민"과 "지적인 엘리트"의 대립 구도를 이야기하면서 현재 트럼프가 사용하는 분열 방법을 만들어내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레이건은 공화당 지지자들을 흥분시키는 언어를 찾아낸 것이다.

레이건은 전당 대회 이후 했던 연설로 전국을 순회했다.

우리나라에도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멋진 연설만으로 정부를 이끌 수는 없다. 레이건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을까?

레이건의 보좌관을 오래 역임한 마이클 디이버(Michael Deaver)에 따르면 레이건의 보좌관들은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 대행(deputy President)'였다. 레이건은 정책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결정은 보좌관 선에서 이뤄졌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돈 리건(Don Regan)은 "레이건 대통령은 내게 자기의 신념을 얘기한 적도,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게 뭔지를 얘기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보좌관들과 회의하던 중에 잠이 들기도 했던 레이건은 그들의 견해를 거의 다 수용했고, 외부의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레이건에게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였지,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레이건 이전의 어떤 미국 대통령도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조지 W. 부시는 레이건과 닮았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미국에서는 부통령 딕 체니가 막후의 진짜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많았고, 지금도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은 뜻하지 않은 장점을 갖고 있다. 유능하고 일 욕심이 많은 보좌관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피곤한 잡무("shitty little things")를 하게 하지 말고 그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행복하게 살게 해주면, 전문가인 자신들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경우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미국의 대소련 정책이다. 레이건은 흔히 "소련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통하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당시 소련의 서기장인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신뢰를 유지하며 소련을 개방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스 부트는 그건 나중에 만들어진 신화일 뿐, 레이건은 원래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으로 자본주의를 배운 레이건은 공산주의자들을 불신했고, 소련은 "현대 세상에서 악의 핵심"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국무장관(조지 슐츠)이 소련의 관료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 대화를 하도록 주선하고, 안보 보좌관이 러시아 역사에 정통한 학자(수잰 메이시)를 초청해 레이건에게 러시아 사회에 관한 일종의 과외 수업을 하면서 그의 굳은 생각을 바꿨다. 그 과정을 통해 레이건은 '소련=악당'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회담을 준비하던 중 한 보좌관은 레이건에게 고르바초프와 만났을 때 할 일을 알려주면서 "이 장면(scene)에서는" 어떻게 하시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보좌관들이 레이건을 어떻게 봤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985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첫 정상 회담 (이미지 출처: Times of India, Wikipedia)

하지만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 레이건식 대통령 모델의 가치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현실을 잘 몰랐고, 특별한 국정 철학도 없었던 레이건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필요할 경우 생각을 바꾸는 실용주의적인 인물이었지만,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는 그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변하지 않았다. 보좌관들은 그런 대통령의 관점이 소련의 개방과 같은 중요한 문제와 충돌할 경우 최선을 다해 그를 설득하고, 필요하면 과외 공부까지 시켰지만,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나 중미 지역의 문제처럼 보좌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슈에 대해서는 그의 편견이 미국의 정책을 형성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인기를 끈다는 것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굳게 믿었던 레이건은 캐나다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들에)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미국을 침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캐나다 총리가 "그 나라가 미국을 침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네"라고 달랬지만, 레이건은 그걸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문제는 그의 보좌관들이었다. 레이건이 미국이 핵전쟁으로 공멸할 위험이 있는 소련을 상대로 흥분할 때는 그를 달래고 교육시켰던 그들은 중남미 국가에 대해서 대통령이 분노할 때는 "명령만 내리시면" 폭격하겠다는 태도였다.

트럼프의 이념적 성향은 다르다.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분법 외에도 '자유 국가 대 독재 국가'라는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있던 레이건과 달리, 트럼프는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들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김정은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 "북한을 박살 내겠다"며 위협하는 모습은 레이건이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보여줬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맥스 부트는 레이건이 자기 임기 중 최대의 위기였던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끝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Britannica)

이런 트럼프의 태도는 위협일 뿐, 트럼프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에 따른)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가 외교 안보 문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본인의 자제력 때문인지, 아니면 보좌관들의 만류 때문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맥스 부트는 트럼프의 임기(2017~2020년)는 레이건 행정부에 가깝다고 본다. 보좌관들이 트럼프의 흥분을 달래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비서실장을 포함한 보좌관들은 트럼프가 특정 사안에 집착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는 그의 관심을 돌릴 만한 문제를 꺼냈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트럼프는 자기가 집착했던 문제에서 관심을 끊곤 했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그런 보호막은 기대하기 힘들다. 트럼프의 잘못된 결정을 막았던 사람들은 현재 트럼프가 다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유권자들에게 경고하고 있고, 트럼프는 이를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면 그렇게 배신할 사람을 정권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트럼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할 예스맨으로 구성된 정권이 된다는 얘기다. 미국이 레이건 시절을 무사히 보냈고, 트럼프 1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지만,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될 경우 더 이상 그런 운을 기대하기 힘들다.

뉴요커의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고, 어떤 대통령들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레이건은 '대안적 사실(alternate reality,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이제 미국은 대통령에게서 진실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대통령이 문제를 이해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레이건의 역할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정말로 믿으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