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트럼프 ①
• 댓글 남기기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과거의 선거와 눈에 띄게 다른 점 하나를 찾으라면 많은 공화당원이 당의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버리고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지 W. 부시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딸 리즈 체니(Liz Cheney)다. 보수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를 시작한 리즈 체니는 공화당 원내 대표를 지냈다. 2019년 민주당이 트럼프를 탄핵했을 때는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2021년 1월 6일에 트럼프가 지지자들의 의회 습격을 주도한 것에 분노, 트럼프를 반대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2021년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는 것과 무관하게 민주당 주도로 두 번째 탄핵에 들어갔을 때는 이를 지지했고, 의회 습격 사건을 조사하는 하원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랬던 리즈 체니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다른 의원들의 반발로 원내 대표에서 물러나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 친트럼프 후보에 밀려 패배한 것은 공화당이 트럼프 개인의 정당으로 전락할 것을 보여주는 예로 자주 인용된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에 반대해서 민주당 후보 해리스를 지지하고 나선 리즈 체니 같은 공화당 정치인들은—공화당이 트럼프의 정당이 된 지금은 비주류가 되었지만—몇 년 전만 해도 "주류 공화당원"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다. 같은 정당이라고 해도 세월이 흐르면 그 성격이 바뀌기 때문에 (공화당 출신 첫 번째 대통령은 에브러햄 링컨이었다) '주류'의 성격도 바뀌지만,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레이건-부시 공화당원이라고 불렀다.
1980년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1989년 백악관을 나올 때까지 "막강한 미국의 80년대"를 상징하는 대통령이다. 워낙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그의 부통령 조지 H.W. 부시도 대통령에 당선되어 승리하는 공화당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젊은 후보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등장으로 백악관을 뺏겼지만, 레이건 시대를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은 조지 H.W.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2000~2009년 재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빌 클린턴도 재임 중에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힘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레이건-부시의 공화당은 20년 동안 미국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분명하게 각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공화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 사업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나오면서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라는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운동 구호를 고스란히 재활용한 것은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트럼프는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전통/주류 공화당 정치인을 조롱하고 비난했는데—2016년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는 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를 조롱하면서 공화당의 주류 세력을 꺾었다—정작 그들이 북극성처럼 생각하는 로널드 레이건의 구호를 가져다 (Let's만 떼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세상을 떠난 레이건의 오래된 구호를 다시 가져다 사용한 것은 단순히 자기가 그 구호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지지하는 유권자 집단에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구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homesickness)과 구분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의미한다. 최근에 나온 책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에 따르면 19세기까지만 해도 향수병과 노스탤지어는 동일한 스펙트럼에 있었지만, 20세기 초반부터 둘의 성격은 달라진다.
이 책(워낙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 별도의 글로 소개한다)의 8장은 트럼프의 등장과 브렉시트를 다루는데, 이 두 가지 사건이 모두 과거라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보수층의 감정에 호소했다고 설명한다. 고향이라는 '공간'을 떠난 사람들이 가지는 향수와 달리,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채워지지 않는 감정이고, 그래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
트럼프와 (트럼프를 싫어하는) 공화당 옛 주류 정치인들이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20세기 미국 최고의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생각이다. 레이건이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공화당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오래 앓던 레이건이 2004년 세상을 떠났을 때, 미국인들은 지지 정당을 막론하고 레이건은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약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레이건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을 뿐, 미국에서는 레이건의 위대함을 의심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레이건에 대한 평가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트럼프가 레이건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팔아 대통령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MAGA 모자를 보면서 잊고 있었던 레이건의 구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노스탤지어'의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1980년의 레이건도 노스텔지어를 팔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레이건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한 사람이 맥스 부트(Max Boot)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기자이면서 역사학자인 부트는 최근 'Reagan: His Life and Legend (레이건: 삶과 전설)'이라는 책을 펴내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제목과 책 표지 디자인을 보면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레이건을 옹호하는 책처럼 보이지만, 뉴요커에 올라온 이 책의 리뷰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부트는 "레이건을 트럼프와 비교한다면 말도 안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가 보기에 둘 사이에는 "놀라울 만큼 유사점이 많다"고 한다.
레이건과 트럼프가 가진 공통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이 되기 전에 몇 년 동안 인기 TV쇼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안다면, 이건 사소한 공통점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 그렇게 안방극장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쌓은 후에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은 트럼프와 레이건, 두 사람밖에 없다. 트럼프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TV쇼를 10년 넘게 진행했고, 레이건은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General Electric Theater)'을 9년 동안 진행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트럼프의 '어프렌티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취업 인터뷰로 직원을 선발하는 내용이다. 그럼 레이건이 진행한 쇼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에 관해서는 오터레터에서 '지상 최대의 홍보'라는 글로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 레이건과 관련한 내용을 가져와 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 재임)의 중요성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모르고 있던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경제 근본주의를 주류(mainstream)의 내러티브로 바꿔놓은 데 있다. 레이건이 젊은 시절에 진행했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인이 되기 전에 배우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1950년대에 이르면 레이건의 배우로서의 수명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레이건은 그렇게 배우 경력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General Electric Theater)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을 맡게 된 이 프로그램은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청률 3위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은 유명한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당시로서는 좋은 퀄리티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항상 레이건이 들려주는 교훈적인 말로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정부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굳건한 개인주의 정신에 대한 강조였다.
하지만 레이건의 역할은 단순히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제너럴 일렉트릭(기업)을 대표해서 미국 전역에 있는 공장과 학교, 로터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등을 돌아다니며 TV에서 하던 것처럼 노조에 반대하고,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시장친화적인 이데올로기를 담은 강의를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이전의 레이건은 노조에 찬성하고, 루즈벨트의 경제 정책에 찬성하는 뉴딜 민주당 당원(New Deal Democrat)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아는 노조와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공화당원으로 바뀌었다.
레이건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주의의 전도사 역할을 하며 미국인을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맥스 부트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레이건 본인이었다. 자라면서 학업 성적이 변변치 않았고, 일찍부터 배우 생활을 한 그가 훗날 대중에게 뛰어난 지도자로 보일 수 있었던 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배운 덕분이다.
하지만 그가 배운 건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한 자본주의나 개인주의적 덕목이 아니라, 연기였다.
'레이건/트럼프 ②'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