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에서 다른 나라처럼 출생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전문가들은 한 사회의 출생률이 2.1은 되어야 현재 수준의 인구가 유지된다고 하고, 이를 대체 출생률(replacement rate)이라고 부른다. 복스의 레이철 코언(Rachel Cohen)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2/3가 대체 출생률이 2.1 이하인 나라에 살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도 인구는 아직도 증가 중이지만, 이런 출생률로는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지 못한다.

과거에는 인구가 많은 게 문제라고 그렇게 경고했다면, 줄어드는 건 왜 문제가 될까? 이를 "빨간불"이라고 경고하는 기사들을 보면 결국 노동력 감소경제성장 둔화, 연금 부족, 이렇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그중에서도 연금 부족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지적된다.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의 연금을 부담하는 시스템으로 설계된 사회 보장 제도는 인구가 늘거나, 최소한 현재 상황이 유지되는 것을 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수적인 노인 인구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니 젊은 세대와 미래를 위한 정책도 만들어지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이런 변화의 결과로 인류의 혁신이 줄어들고, 발전 속도가 느려질 거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와 각국의 출생률 감소 추세 (이미지 출처: 닛케이 아시아)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미국도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의 출생률은 유럽 국가보다 특별히 높지 않다. 그럼에도 (적어도 2007년 이전까지) 미국은 저출생률 걱정에서 예외라고 생각하던 이유는 첫째, 이민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둘째, 그렇게 들어온 이민자들 중에 중남미 히스패닉 인구의 경우 문화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거나, 피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톨릭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았고, 셋째, 미국이 전반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별점에도 불구하고 2007년부터 미국의 출생률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미국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된 후에도 출생률이 회복되지 않자 이번에는 새로운 이유를 생각해 냈다. "평생 낳는 아이의 숫자가 변한 게 아니라, 출산이 늦어졌을 뿐"이라서, 시간만 지나면 회복될 거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복수의 기사에서는 현재의 출산율 감소 이유를 지목하는 6가지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여성들의 결정이다. 피임이 보편화되고 결혼과 육아를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2. 사람들 사이에 섹스가 줄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면서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하는 일에 관심이 줄었다.
3. 여성이 워라밸을 챙기고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려면 아이를 적게 갖는 게 유리하다.
4. 기후와 환경, 인류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면서 자기 아이가 그런 세상에서 자라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생겼다.
5. 그 밖에도 일부 미디어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퍼뜨리면서 사람들이 자녀를 갖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6. 출산과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가 한 때 아이를 많이 낳는 문화, 혹은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내 히스패닉 커뮤니티중남미 국가들에서도 출생률이 줄었고, 심지어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도 아이가 적게 태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줄어드는 출생률의 배경에는 "원하지 않는 출산"이 감소했다는 사실이 있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피임 방법이 보편화되고, 이와 관련한 교육도 철저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임신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인구 감소와 무관하게 개인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다.

원하지 않는 해결책

그런데 현재 미국에서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번복된 이후로 여성의 임신 중지권을 갈수록 제한하려는 보수단체의 노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특히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J.D. 밴스가 이들의 생각에 적극 동의하면서 만약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아예 연방법을 바꿔 여성의 결정권을 뺏으려는 로드맵이 이미 나와 있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여성의 임신 중지권을 제한하려는 사람들이 출생률을 높이려는 '출생주의' 운동(이를 영어로 pronatalism, 혹은 그냥 natalism이라고 부른다)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집합이 꽤 크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존재의 의미가 없고, 반사회적인, 심지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J.D. 밴스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임신 중지는 전국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선택권이 주지 않는 상황은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가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속 사회를 연상시키는 건 어쩔 수 없다.

J.D. 밴스의 공격이 '시녀 이야기'를 연상시킨다는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의 글 

해결책으로 이민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이고, 이런 나라로 이민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많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거 아닐까?

적어도 보수 우익이 원하는 해결책은 아니다. 세계에는 다양한 보수 우익이 존재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반 이민 정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 Theory, 실제로는 프랑스 극우 작가가 확산시킨 개념이다)에 따르면 비백인 이민자가 늘어나면 이들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고, 백인들은 소수자가 된다. 출생률이 줄어들고 있는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들에게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은 인구의 감소 자체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종류의 인구(미국에서는 백인이고, 한국에서는 한민족)가 감소하는 것이다.

폴리티코의 개비 델 바예(Gaby Del Valle) 기자는 출생주의자들의 컨퍼런스를 취재한 기사에서 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인종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지 이야기한다.

출생주의자들이 모인 집회의 키노트 발언

그는 이 컨퍼런스에서 뭔가 참신한 문제의식이 나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참석했지만,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과 서구 국가들에 사는 사람들의 미래였고, 심지어 "유전자의 질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페미니즘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드러냈고, "흡혈귀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성의 진정한 의미를 파괴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출생주의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엮이는 게 싫어서 컨퍼런스에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레이철 코언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인물들과 J.D. 밴스 같은 주류 보수 정치인들이 가깝게 지내면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옛날처럼 여자들이 8명 이상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피임과 임신 중지를 막아서 출생률을 높이려는 헝가리의 빅터 오르반 같은 독재주의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책은 문제를 해결할까?

레이철 코언 기자는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하지만 출생주의자들을 비롯한 보수 우익의 출생률 논의에는 문제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고, 현재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최근 가디언의 토리 셰퍼드(Tory Shepherd)가 쓴 기사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곤두박질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추세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다.

셰퍼드 기자의 답은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리 셰퍼드의 기사

출생률 감소에 직면한 많은 나라가 무료 돌봄 서비스, 출산휴가제도, 경제적 지원, 취업 지원 등의 다양한 정책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약간은 효과를 보이기는 해도 떨어진 출생률을 대체 출생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여전히 정책 지원이나 인식이 부족한 한국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부모가 합쳐서 16개월의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스웨덴이나, 아동의 97%가 사립, 혹은 공립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노르웨이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에 있을까? 204개 나라를 살펴보고 세계적인 출생률 감소를 연구한 나탈리아 바타차지(Natalia V. Bhattacharjee) 박사는 감소 추세가 "세계 경제와 국제적 힘의 균형을 완전히 바꿀 것이며, 사회를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할 것(will necessitate reorganizing societies)"이라고 했다. 이미 떨어진 출생률로 인해서 사회가 바뀔 것이 불가피한데 이 추세를 바꾸기 위해 증명되지 않은 정책에 힘을 쏟아야 할까, 아니면 재구성이 불가피한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힘써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고, 젊은 세대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구세대—대개는 남성—정치인들이 그 답을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젊은 유권자들의 열세로 인한 노인정치(gerontocracy)는 이미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