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의 어느 언론인과 대화하던 중에 미국의 유명한 방송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에게 월터스는 하나의 롤 모델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이 그랬지만 언론계는 특히 남자들의 세상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잃지 않는 여성 방송인은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29년생인 바바라 월터스는 언론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모든 젊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생각할 만한 경력을 가졌다. 미국에서 여성 인권운동이 본격적인 힘을 얻기 전인 1960년대 초부터 NBC 방송국에서 일했고, 1974년에는 미국 방송사상 여성 최초로 주요 뉴스 프로그램의 공동진행자가 된 인물이다. 바바라 월터스의 경력 자체가 여성 언론인의 역사인 셈이니 '살아있는 역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월터스의 인터뷰 스타일을 좋아했다. 당시 여성들에게 기대되었던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질문이 아닌, 인터뷰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날카로운 질문을 미소 없이 던지는 걸 보면 언론 커리어를 꿈꾸는 여성들이 그를 좋아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이 아직 가정주부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70년대에 '미국 여성'의 이미지와 그들의 힘(empowerment)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기회도 되었을 거다. (미국은 20세기 중후반에 비슷한 시도를 많이 했다. 일종의 체제 홍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