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퍼센트의 진실
• 댓글 77개 보기이 글은 이번에 출간된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이라는 책의 추천사입니다. 데이비드 섬프터(David Sumpter)라는 스웨덴의 수학자가 쓴 'Outnumbered: From Facebook and Google to Fake News and Filter-bubbles – The Algorithms That Control Our Lives'라는 긴 부제를 가진 책을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섬프터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한국어판을 준비하는 출판사(해나무)에서 제작 중에 초고를 보내주셔서 읽어보고 길지 않은 추천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책의 앞부분에 실렸는데 출판사의 승낙을 얻어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공유합니다.
게다가 해나무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 다섯 분께 추첨으로 책을 선물하시겠다고 하셔서 지난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 글 상단(바이라인, 날짜 옆)에 보시면 댓글 남기기 버튼이 보이시죠? 그걸 누르시고 책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주시면 제가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밤 12시까지 의사를 밝혀주신 독자분들 중에서 공정한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다섯 분을 고르겠습니다. (댓글 남기기는 유료 구독자들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출판사에 발송비 부담을 드리기 힘들어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국내 독자에게만 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해외 독자들을 위한 방법을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죄송해요!)
당첨 여부와 무관하게 이 책을 읽고 싶으신 분은 여기에서 구매하실 수 있으니 관심 가져 보시기 권합니다. 🦦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과학을 믿어. 나는 진화를 믿어. 나는 네이트 실버를 믿고,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 크리토퍼 히친스를 믿어." 통계 전문가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천문학자(타이슨), 언론인(히친스)과 함께 대중적인 드라마 속 대사에 등장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물론 이건 2013년의 일이다. 실버가 '신호와 소음'으로 통계학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던 때다. 하지만 이 책의 8장이 자세히 설명하듯, 실버의 대중적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 그의 이름에는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에서 '결과 예측에 완전히 실패한 통계학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해 미국 대선은 스타 통계학자의 명성을 바닥에 떨어뜨린 동시에 다른 한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트럼프의 온라인 선거운동 담당자 브래드 파스케일이다. 평범한 웹사이트 디자이너, 개발자였던 파스케일은 아주 작은 규모였던 트럼프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가 소셜미디어 전략을 담당하게 되었고, '소셜미디어가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는 대중적인 내러티브 속에서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언론이 만들어낸 이 내러티브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트럼프가 당선된 충격적인 사실을 해석하고자 동원된 많은 설명 중 하나였다.
트럼프의 당선 원인에 관해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러시아의 공작과 '천재적인 소셜미디어 담당자'와 같은 설명이 언론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기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독자들에게 글로 설명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반드시 진실에 가까운 건 아니며,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이 언론에 소개되었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실험 결과의 뉘앙스는 다 빠져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용수학자 데이비드 섬프터가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을 통해 전달하려는 게 바로 그 뉘앙스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우리를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하면 독자들의 주의를 끌 수 있고, 빅테크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데 용이하다. 섬터는 언론이 깔끔한 내러티브를 동원해 외치고 대중이 분노하는 사이에서 "잠깐만요, 그게 얼마나 사실인가요?"라고 묻는 사람이다. 그리고 네이트 실버가 정말로 실패한 통계학자인지, 필터버블이 진짜로 그렇게 무서운 건지 차근차근 따져본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파악했다'는 것이 무작위 추측을 간신히 벗어난 60%의 확률이라면 언론이 말하는 내러티브가 맞다고 할 수 있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이다.
물론 대중은 이런 이성적인 접근법에 열광하지 않는다. 미국의 팬데믹 대응을 주도한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초기에 바이러스의 역학조사를 바탕으로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 여부를 결정했지만, 많은 미국인과 정치인들은 '왜 말을 바꾸느냐'고 항의했다. 그는 역학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뉘앙스를 전달하려 했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귀에 파우치 박사의 설명은 들리지 않았다. 거대 플랫폼이 가진 알고리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서 빅테크에 분노한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60% 정확도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업에 뛰어든 데이비드 섬프터가 꿀벌과 개미, 물고기의 행동을 연구한 응용수학자라는 사실은 묘한 신뢰감을 줬다. 연구 대상과의 정서적 거리에 익숙한 학자라면 대중적 분노와 무관하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
나의 짐작은 맞았고,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가졌던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