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시플이 게이라서 포드 대통령이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보도하자 백악관은 그에게 정식으로 감사 인사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암살 시도 사건이 벌어진 지 3일 만에 ‘올리버 시플이 게이’라는 사실이 전국 뉴스가 되었고,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는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시플에게는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은 디트로이트의 GM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였다. 올리버 시플이 대통령의 암살 시도를 막았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의 가족에게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고, 하루 일을 끝내고 맥주를 마시러 가면 사람들이 술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7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성소수자를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기자들이 찾아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가족들은 수치심을 느꼈고, 다니던 교회에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시플의 어머니는 "앞으로 다시는 너와 얘기하지 않겠다"며 아들과의 관계를 단절했고, 훗날 그의 형에 따르면 누가 아버지에게 올리버라는 이름만 얘기해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면서 "아버지는 '네 동생은 없는 셈 치는 게 좋겠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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