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부에서 태어나 자란 올리버 시플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게 된 건, 단순히 그 도시에 성소수자가 많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성소수자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지만, 19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는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가 발전한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였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주, 다른 도시로 이주해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일이 드물지 않다.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Witness Protection Program)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나 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줄과 같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그랬다.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나 동부 매사추세츠주의 프로빈스타운 같은 도시들은 그들에게는 피난처였다.
보수적인 고향에서와 달리, 샌프란시스코의 게이와 레즈비언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굳이 숨길 필요를 덜 느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기가 어떤 삶을 사는지 보수적인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도 적당히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커밍아웃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절 이렇게 두 세계를 분리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에게 아주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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