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의 진실 ②
• 댓글 남기기경제학자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은 AI가 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튜링의 덫(Turing Tra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미테이션 게임(Imitaiton Game),' '튜링 테스트(Turing Test)'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의 이름을 가져온 이 개념에서 '덫'은 AI가 인간을 돕고, 협력을 통해 일하는 대신,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을 말한다.
브리뇰프슨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보조해서 사람들이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하게 해주면 인간과 기계는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이때 '보완'이라 함은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필수적인 요소로 남아있고, 노동시장과 정치적 결정에서 교섭력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건 희망 사항이다. 브리뇰프슨이 '덫'이라고 하는 상황은 AI가 인간을 보조하는 대신 대체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고, 생산 잠재력이 줄어들고—그는 AI가 혁신을 가져오는 대신 인간을 흉내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창의성이나 판단, 공감, 맥락의 이해와 같은 인간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 결과 인간은 경제적, 정치적 교섭력을 잃게 되고 기술을 통제하는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게 브리뇰프슨이 우려하는 덫이다.

우리는 튜링의 덫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브리뇰프슨은 정부가 세금 제도를 사용해 기술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보다 보조하는 기술의 개발에 세금 인센티브를 주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도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미국의 세금 제도는 그 반대다. 인간 노동자를 고용하면 급여세를 내야 하지만, 자본에서 비롯된 소득은 세율이 훨씬 낮다. 이런 세제에서 기업가는 노동자를 줄이고 기계에 투자하게 된다. 정부는 브리뇰프슨의 바람처럼 세제를 개혁할 수 있을까?
존 캐시디는 또 다른 경제학자인 MIT의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의 견해를 가져온다. 오터는 값싼 중국 제품이 미국에 밀려들어 온 후에 미국의 노동시장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설명하는 논문 "The China Shock(중국 쇼크)"의 공동 저자다. 중국 제품이 수입되면서 미국의 제조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서비스 업종은 대부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AI는 중국 수입 제품과 다르게 거의 모든 일자리에 침투해서 영향을 줄 거라는 게 오터의 주장이다. 특히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업종에 AI가 사용되면서 인간이 가진 전문성(expertise)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고, 그 결과 인간은 AI가 가져가고 남은 일자리를 찾아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터는 그런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면서도, 그런 세상이 되기 전에 AI가 인간을 돕는 뛰어난 도구로 기능하는 상당히 긴 시기가 먼저 도래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 시기를 잘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에릭 브리뇰프슨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 시기의 노동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는 미국에 존재하는 임상간호사(nurse practitioner)를 예로 든다. 임상간호사, 혹은 전문간호사는 한국에는 없는 전문 인력으로 의사처럼 직접 진료, 진단, 처방을 할 수 있는 간호사다. 이들은 지식과 수련 기간이 의사에 미치지 못하지만, 심각한 질병이 아닌 경우 의사에 못지않은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고질적인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미국의 의료 체계 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터는 임상간호사들에게 전문적인 AI 도구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능력은 크게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오터가 보는 현재 노동시장의 문제는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전문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의 노동력을 찾는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문직 노동자들은 굳이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없지만, 그 서비스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공급 부족에 시달린다. 오터가 임상간호사를 예로 든 이유가 그거다. AI의 도움으로 준 전문직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양과 품질을 끌어 올리면 임상간호사의 수입도 늘어나고, 환자들도 덕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AI가 개발되는 방식을 보면 그런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오터의 걱정이다. 지금 각 기업에서 만들고 있는 AI는 실제 노동 현장에서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는 역할을 갖추도록 설계되는 게 아니라, 아주 좁게 정의된 데이터 셋(data set)을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브리뇰프슨처럼 오터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의 경우, 세금 제도가 아니라 정부의 구매력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미국의 연방 정부는 교육과 의료, 국방 등의 분야에서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금을 미끼로 기술 개발의 방향을 정해줄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의 개발이다. 연방 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군사용 프로젝트였던 인터넷 프로젝트는 정부와 민간의 합작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되어 미국을 시장의 선두 주자로 만들어줬다. 다만 AI 기술의 경우 거의 전적으로 민간 기업들이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개발하고 있고, 그 규모도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게 캐시디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 AI 기술 개발에 개입할 수 있을까?
영국의 시인이자 귀족 정치인이었던 바이런 경(Lord Byron)은 1812년, 24세의 나이에 영국 상원(귀족원, House of Lords)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노팅엄셔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직업을 잃은 섬유 노동자들이 방직공장에 몰려가 기계를 부수는 장면을 목격했고, 의회 연설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바이런은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었겠느냐며 대책을 촉구했고, 당시 의회가 준비하고 있었던 '기계파괴방지법'을 비웃었다. 그는 기계파괴방지법을 어떻게 이행하겠냐며, "계엄령이라도 선포할 거냐"고 따졌다.
하지만 영국 의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키며 러다이트 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고, 영국의 섬유 노동자들이 요구한 최저 임금 보장을 비롯해 공업 자본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한 법과 제도—노동조합법, 아동노동금지, 사회 안전망 등—가 등장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뒤늦게나마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에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 것은 러다이트 운동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의 결과였지만, 21세기의 AI혁명은 산업혁명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수십 년씩 기다려 대책을 만들 여유가 없다. 게다가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현재 AI 혁명의 한복판에 있는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겠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AI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노동자들의 소득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AI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턴(Jeffrey Hinton)은 이 문제의 답은 '사회주의' 하나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캐시디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도 결국 사회주의가 인기를 끌면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편적 기본 소득(UBI)을 지급하기로 해도 그 돈은 결국 AI를 만들어 돈을 버는 기업에게서 와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이고, 트럼프에 철저하게 협력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테크노리버태리언(techno-libertarian) 갑부들이 사회주의를 표방한 UBI를 추진하거나 협력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데이비드 오터는 AI 혁명이 (미국에서 진보적인 입법에 공감대가 형성된) 1970년대에 일어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제대로 대응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역설적이지만, 기술 발전이 덜 이뤄졌을 때 오히려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뤘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AI는 좋지 않은 시점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증기기관과 자동 방직기도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시점(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이 없던 시절)에 등장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한 이유가 그거다. 🦦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