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Hope)라는 사람이 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의 성(last name)은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한 때 그와 함께 일하곤 했다. 대학원생 시절, 부업으로 한국의 학회지를 비롯한 출판물을 영문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는데, 호프는 내가 쓴 영어 문장의 맞춤법을 고쳐주고 어색한 부분을 다듬어 주는 프루프리더(proofreader)였다. 하지만 작업물은 이메일로만 주고 받았고, 비용은 개인 수표로 보냈기 때문에 3, 4년을 같이 일했지만, 얼굴을 본 적도,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다. 프루프리더를 구할 때 온라인에서 본 사진으로 50대 정도의 백인 여성이라는 것만 알았다.

내가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후에도 호프는 가끔 내게 이메일이나 링크드인 메시지를 보내 혹시 내게 프루프리딩 맡길 일이 있는지, 자기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나 회사가 없는지 묻곤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것도 10년이 되어 간다.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해줬고, 비용도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에 내가 영역 작업을 직업으로 한다면 함께 일하겠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그 일을 한다고 해도 호프의 프루프리딩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챗GPT를 비롯한 다양한 AI 서비스가 프루프리딩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이 무료로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호프의 부업은 완전히 사라졌다. 기술의 발전으로 한 직군이 사라진 거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을 목격한 기억이 있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한국 유학생들—당시에는 많았다—을 상대로 하는 작은 식품점들에서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비디오에 녹화해서 대여하는 걸 부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가 되면서 인터넷에서 파일 다운로드가 인기를 끌었고, 그런 기술에 빠른 학생들은 더 이상 식료품점 구석에 진열된 비디오테이프를 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