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오는 9/11까지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선언을 한 후에 나토 역시 이 지역에서 빠지겠다고 발표했다. 그럼 앞으로 이 지역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그렇게 되고 말고를 떠나서 전쟁을 20년 동안 진행한다는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전쟁을 영원히 지속해야만 테러를 막을 수 있다면 이제는 그 접근법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한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라고 부르는 미국인들은 아프간 전쟁에 '영원한 전쟁(forever war)'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전쟁이 10년을 넘으면 자체 동력을 가진 하나의 사업(enterprise)이 되고, 적을 무찌르는 걸 넘어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9/11 테러 직후에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미군에서 이야기하는 '미션 크립mission creep'의 전형적이 예가 되었다. 애초의 목표가 변화, 확장되면서 계속 일을 키우기만 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을 가리킨다.

미션 크립이라는 단어가 처음 생긴 건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 때였다. 미국은 UN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가 결국 대규모 전투까지 치르는 (이 전투를 그린 영화가 '블랙 호크 다운'이다) 상황이 벌어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사태를 키운다는 비판이 나왔고, 미션 크립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프간 전쟁도 다르지 않다. 2001년에 사상 최대의 테러 공격을 받은 미국이 알카에다와 탈리반을 소탕하겠다며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전쟁이 시작되자 '적'이 누구냐 부터 정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일종의 고용관계 비슷하게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면 단순히 그들을 죽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 전체를 바꾸고 새로 만들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한 지 2, 3년 만에 미군의 미션은 '국가 재건(nation building)'으로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군 조직은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그게 가능하다고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압박해서 무려 20년 동안 전쟁 아닌 전쟁을 지속해온 것이다. 이 문제를 미국 사회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이를 끝내려는 정치인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별 연설에서 강조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힘이 그토록 막강하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가능했던 거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끝낸 사람이 전쟁반대/회의론자인 오바마도, '무조건 철수주의자' 트럼프도 아닌, 상원에서 평생을 보낸 중도노선의 고령 정치인 조 바이든이라는 사실이다. 버니 샌더스 처럼 똑같은 주장을 평생 해온 정치인도 아닌 타협에 능한 바이든은 왜, 어떻게 군산복합체의 압력을 떨쳐내고 20년 전쟁을 끝내는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지난 해에 나온 오바마의 회고록 'A Promised Land'에 그 힌트가 나온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공약을 이행하려고 할 때 장성들이 합심해서 오바마의 목표를 저지했다. 그 때 바이든이 오바마에게 군은 신임 대통령 길들이기를 하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는 장면이 있다. 어차피 대통령이 군사적인 결정을 내릴 때도 결정을 위한 정보는 군으로 부터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군이 단결해서 대통령의 결정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갈 수가 있다는 거다.

특히 당시 오바마의 철군 시도에 군 장성들은 언론 플레이까지 해가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오바마는 그 상황을 목격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It's fucking outrageous (의역하자면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별 짓을 다하네' 정도가 된다)"라며 분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이든은 젊은 시절 공화당과 타협하고, 레이건의 보수정책에도 동조했던 사람이지만 군에 대해서만은 일정 수준의 (합당한) 의구심을 내려놓지 않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군도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바이든이 경험없는 오바마 대통령과 군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불평도 워싱턴에 퍼뜨렸다고 한다. 오바마가 장성 출신 참모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잠시 대통령을 떼어내어 구석으로 데려가서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를 하는 바이든을 군이 좋아했을리 만무하다.

오바마는 바이든의 충고를 새겨 들었고 동의했을 뿐 아니라, 군은 계속해서 예산을 더 따내고 전쟁을 계속하는 쪽으로만 일을 진행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철군에 실패했고, 사실상의 고립주의자인 트럼프 역시 무조건 철군을 외쳤지만 흐지부지 되었지만, 바이든은 취임 1백일이 되기 전에 철군 날짜를 못 박은 거다. 오바마의 회고록을 보면 군이 철군 시점을 발표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철군 완료일은 9월 11일이라는 상징적인 날로 못을 박아서 군이 다른 꼼수를 쓸 수 있는 여지까지 막아버렸다.

물론 철군 시기도 이미 무르익는 것을 넘어 더 이상 명분이 사라졌고, 국가적인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불신을 가진 바이든이 아니었다면 어느 대통령도 취임 첫 해에, 이렇게 단칼에 끝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취임 첫 해에 끝내지 않으면 군은 4년 임기 내에 끝내지도 못하도록 계속 일을 만들었을 것은 뻔하다. 바이든은 오바마와 트럼프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