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을 이야기할 때 영화 '그녀(Her)'를 언급하는 건 진부하다. 2013년에 나왔으니 이제 10년도 넘은 영화일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너무나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비유나 예시로 들면 글이나 대화 내용에 새로울 게 없다는 불안한 징표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영화를 익히 들어봤다는 것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나 제기하는 문제 자체가 진부한 거라고 하기는 힘들다. 나는 영화 주인공 시어도어처럼 AI와 인간 수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녀'가 다루는 주제는 아직 미래의 일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미래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최근 더버지(The Verge)에서 발행한 기사에 따르면 벌써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반려 AI'와 일상적으로 대화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가벼운 대화만 나누는 사용자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 '그녀'의 결말부에서 시어도어가 겪게 되는 충격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Entertainment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