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갔다가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게 된 작품을 만났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있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지금은 유럽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부슈라 칼릴리(Bouchra Khalili)의 '매핑 저니 프로젝트'(The Mapping Journey Project)라는 대형 설치 작품이었다. 제목은 '이동 경로 그리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들의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하는 비디오 작품이 거대한 방을 채운 작품이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 전시실에 들어간 내가 받은 충격은, 영상에 놀라운 장면이 담겨서가 아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지도 위에 선을 그리는 게 전부다. 나 같은 관객이 놀라게 되는 건 내가 이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 알지 못하는 것('미지의 영역')을 이야기할 때 영어에서는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땅'(uncharted territory)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서구 문명이 대양과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을 때 처음 하는 일이 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인류는 지도가 있어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부슈라 칼릴리의 작품은 우리가 막연하게 '유럽 난민 사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문제를, 지도를 통해 보여준다.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뛰어난 작품은 대개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쉽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유럽을 찾아온 난민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를 거쳐 유럽(많은 경우 이탈리아)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알아내고, 그걸 지도 위에 일일이 표시한다. 칼릴리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난민들은 중동의 시리아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미국에 들어오는 난민들이 최종적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는다고 모두 멕시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큰 착각이었다. 아프리카 중서부는 물론, 멀리 인도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뒤에도, 내게는 여전히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우쳐 준 책이 이폴리트가 쓰고 그린 그래픽노블/다큐멘터리 '지중해의 끝, 파랑'(Le Murmure de la Mer)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빈 지점은 바로 지중해 건너기였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오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루트는 지중해를 건너는 루트다. 그들은 작은 배나 뗏목 등에 의지해서 바다를 건넌다. 하지만 지중해는 만만한 바다가 아니고, 그런 허접스러운 배로—대개는 정원(定員)을 훨씬 넘게 올라탄다—무사히 건너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뒤집히지 않더라도 엔진이 고장나거나 적절한 항해 장비가 없어 바다에 표류하다 죽기도 하고, 배가 뒤집혀 많은 사람이 익사하는 일도 흔하다.

2015년에 터키에서 출발한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익사했는데, 세 살짜리 시리아 아이의 시신이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때 찍힌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93년에 촬영되어 퓰리처상을 받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에 버금가는 충격이었고, 유럽으로 오는 난민을 불법 이민자라고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2015년은 유럽 난민 위기가 절정에 달한 해였고, 같은 해 SOS 메디테라네(SOS Méditerranée)라는 국제 단체가 만들어졌다. 크고 작은 배 6척을 지중해에 띄워서 아프리카와 중동의 해안에서 출발했다가 바다에서 표류 중인 난민선을 찾아 구조하는 게 그 단체가 하는 일이다. 이들은 리비아 영해 가까이 접근해서 그곳에서 출발한 난민선을 최대한 빨리 발견해 구조한다. 즉, 이들이 죽지 않고 유럽에 도착할 수 있는, 내가 몰랐던 여정의 마지막 고리는 이 구조단체였다.  

이 책 '지중해의 끝, 파랑'은 그 단체에 소속된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에 그래픽노블 작가인 이폴리트(Hippolyte)가 동승해서 구조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이다. 내가 몰랐던 부분, 즉 난민들이 어떻게 죽지 않고 유럽으로 건너올 수 있었는지,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준 게 이 책이다.

'지중해의 끝, 파랑'과 저자 이폴리트

국제 문제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유럽에 난민이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을 펴서 1/3 정도 읽으면서도 그림은 참 아름답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뜻도 고귀한데, 참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담배를 피우며 관료주의를 욕하는 유럽인들의 코믹한 스테레오타입이 고스란히 보인다.) 현재 미국은 물론 유럽에도 퍼지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의 열풍이 상당 부분 난민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래, 생명을 구하는 건 좋은데, 그 결과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집권하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중해의 끝, 파랑'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근거와 논리로 독자를 설득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특히 앞부분은—아주 사색적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만화, 그래픽노블이라면 첫 페이지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다음 페이지를 보고 싶게 만드는 식으로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겠지만, 프랑스 작가 이폴리트의 이야기 전개는 완전히 다르다. 아주 느릿느릿, 지루하게 시작한다.

게다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기간은 팬데믹이 시작되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격리되던 때다. 유럽 각국은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가뜩이나 난민 문제를 (그들이 보기에) 어렵게 만드는 SOS 메디테라네의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각종 규제와 관료주의에 가로막혀 언제 출항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갈등에 빠지는 작가와 선원들의 이야기가 전혀 긴박감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책의 중반을 넘기면서 작가가 왜 이런 '과장 없이 전달하기'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깨닫게 된다. 이건 헐리우드식 영웅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폴리트가 배에서 만난 사람들은—처음에는 왜 만화가가 배에 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한다—하나같이 개인적인 사연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만회하고 싶은 것, 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작가가 기다려야 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느린 이야기 전개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말이 과장 섞인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된다.

선원들도 모두 같은 이유로 배에 탄 게 아니다. 한 선원은 작가에게 ‘아쿠아리어스’라는 다른 구조선의 선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러시아 사람이었는데, "그저 운항에만 충실했을 뿐" 구조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았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배가 비좁도록 많은 사람을 구조하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그 선장이 아기를 품에 안게 되었다. "그 뒤로는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이전으로는 못 돌아가지..."

작가도 처음 구조 작업에 참여하고 같은 걸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직접 눈을 마주치고, 몸을 부착하는" 과정에서 "살갗 아래로 뼈가 느껴졌어요. 사람이 온몸으로 무너져내리는 걸" 보고 진짜로 알게 되었단다. '지중해의 끝, 파랑'이 주는 메시지는 그렇게 단순하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 보면, 당신이 구하는 난민이 살과 뼈로 만들어진, 숨을 쉬고, 가족이 있고, 꿈이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인 걸 알게 되면 유럽 정부의 난민 논의가 얼마나 추상적인 얘기에 불과한지 알게 된다는 거다.

'지중해의 끝, 파랑'은 극적인 서사를 피하는 대신, 구조활동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가령, 커다란 망원경을 들고 몇 시간 씩 돌아가며 밤낮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운 일이지 알게 된다. 망원경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구조와 관련된 내용 외에는 말을 걸면 안 되는데, 반짝이는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찾아내는 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에는 작가가 망원경으로 발견한 난민선이 있다. 작가에 따르면 그 배에 탄 난민 중 한 사람이 입고 있는 구명조끼의 오렌지색이 아니었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오렌지색이 보이는지 직접 확인해 보라.

'지중해의 끝, 파랑'은 슬프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책이다. 작가는 자기가 겪은 일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간간이 들어간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차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림 묘사가 사실적이다. 특히 이 책의 표지부터 거의 모든 페이지에 들어간 파란색은 너무나 아름답고 다양해서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어 원제는 'Le Murmure de la Mer,' 바다의 속삭임이다.) 책꽂이에 꽂아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거실 테이블 위에 두게 되는 그런 책. 🦦


이 책을 출간한 바람북스에서 오터레터 독자 여러분께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제가 오는 수요일(11/5) 오전에 추첨해서 이메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실물을 보시면 더욱 탐내실 만한 책이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