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이니 간략한 요약으로 시작해 보자. 흔히 이스라엘의 문제는 중동을 떠나 살던 유대인들이 지금의 땅으로 돌아와 현대 국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 로넨 버그먼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의 영토—시나이반도와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골란고원—를 빼앗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전쟁이 현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변국들의 침략 위협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이스라엘의 영토를 직접적으로 침공할 수 있는 나라는 주변에 없다. 현재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1967년에 손에 넣은 점령지에 있다. 문제의 해법은 이미 나왔다. 이스라엘은 10년 넘게 갖고 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마찬가지로 가자 지구와 요르단 서안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평화안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지하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이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스라엘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제동을 걸었다. 그들에게 1967년의 점령지는 신이 허락한 것이고, 메시아가 세상에 오는 날을 앞당기는 전제 조건이다. 이런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타협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세상의 법을 따르느냐, 하나님의 법을 따르느냐"라는 선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세상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법이었지만, 현대 세계에서 "세상의 법"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 제도다. 근본주의 종교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년 1월,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국회로 몰려온 트럼프 지지자들 (이미지 출처: openDemocracy)

네타냐후 총리의 권력욕에 올라타고 정권을 나눠 갖게 된 극우 민족주의자 이타마르 벤그비르(공안부 장관)와 베잘렐 스모트리히(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바꿨을까? 버그먼 기자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을 예로 든다. 그들이 장관이 된 직후인 2023년 2월에 일어난 일이다.

요르단 서안 지구에 살던 유대계 정착민 형제가 차를 타고 후와라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던 중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후와라는 팔레스타인 주민과 유대계 정착민이 매일 통과하는 길에 있는 마을이었고, 이 형제를 죽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소속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하마스의 이스라엘인에 대한 대대적인 납치, 테러는 8개월 후에 일어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보복과 응징을 요구하는 요구가 크게 일어났고, 정착민 중 지도급에 있는 한 사람은 후와라를 쓸어버려야(wipe out)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수사과 처벌이 아닌, 무법적 집단 폭력을 부추긴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스모트리히 국방부 장관의 반응은 더 무책임했다. "저도 후와라를 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들이 할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죠." 한술 더 떠서 군대를 동원해서 마을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이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인종주의 폭력을 사주하는 스모트리히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라는 요구가 미국인들 사이에 나오자 스모트리히는 오해라고 둘러댔지만 (그의 처음 발언은 녹음으로 남아있다) 요르단 서안에 정착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그가 부는 '도그휘슬'을 바로 이해했다. 즉,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도 국가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신호였던 거다.

그날 밤, 400명의 유대계 정착민은 후와라를 침입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과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그들이 키우는 가축까지 죽였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주민 한 명이 정착민의 총에 맞아 죽었다.

유대계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불에 탄 후와라 (이미지 출처: The Times of Israel, Al Jazeera, The Jerusalem Post, The Nation)

이스라엘군의 한 지휘관은 이 모습을 보고 '포그롬(pogrom)'이라고 했다. 포그롬은 대박해(大迫害)라고 번역되는 러시아어(погром)에서 온 표현으로, 특정 민족 집단을 상대로 한 학살과 약탈을 의미한다. 특히 이 표현은 역사적으로 19, 20세기 러시아 제국, 특히 지금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에서 유대인 마을을 겨냥해 일어난 지역 주민들의 폭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유럽에서 일어난 이런 반유대인 폭력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 지휘관은 유대인들이 100년 전에 당했던 범죄 행위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포그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일어난 포그롬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미지 출처: X, Wikipedia)

후와라가 정착민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버그먼 기자가 현장에 갔을 때는 아직 불길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이 사건을 설명하는 기자가 분노하는 이유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과정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졌음에도 정부가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수치심을 모릅니다. 숨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마을 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시신을 촬영한 사진을 봤다. 가슴에 분명한 총상이 있었지만,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총에 맞은 건지, 가지고 있던 병 때문에 사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뻔뻔스런 발표를 했다. 분노한 기자는 총상이 드러난 사진을 보여주며 "네, 총알이라는 병 때문에 죽었나 보죠"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후와라 습격에 가담한 400명의 정착민 중 단 한 사람도 체포되지 않았다. 경찰관의 가슴에 붙은 고프로 카메라에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총으로 쏘는 정착민의 모습이 담겨있었지만 경찰은 그 증거를 갖고도 용의자를 체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군이나 경찰이 현장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 힘들다. 첫 글에서 기자가 들은 이 말을 기억할 거다:

"그런 일을 막지 못하는 건 신베트만의 잘못이 아닌 걸 모르세요? 정부와 군, 검찰, 법원, 경찰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체가 과격한 극우민족주의 정착민이 법을 따르게 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이건 신베트 차원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총리와 내각 단계에서 내려온 거예요. 그 사람들은 신베트와 다른 수사 기관들에 '테러리스트가 유대인을 죽이면 끔찍한 일이다. 아랍인이 죽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다지 나쁜 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후 버그먼 기자는 두 개의 비밀문서를 입수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민들의 불법, 범죄 행위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면, 10월 7일 테러 이후로는 이를 공식 문서로 도와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서들이다. 첫 번째 문서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점령지인 요르단 서안 지구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베잘렐 스모트리히가 보낸 공문으로, 유대인들의 불법 정착촌 건설이나 불법 도로 설치를 단속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작년 10월 7일 테러 사건 이후로 전 세계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요르단 서안 정착촌 건설을 사실상 부추긴 것이다.

각각 네타냐후와 대화하는 베잘렐 스모트리히(왼쪽)와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미지 출처: Jewish News Syndicate, The Times of Israel)

두 번째는 공안부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내린 명령에 따라 요르단 서안 지구에 있는 경찰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신고를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서였다.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화재나 습격을 신고해도 경찰은 출동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스모트리히는 재정부 장관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요르단 서안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경제를 파괴할 힘이 있다. 그는 그 힘을 사용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서 걷은 세금을 팔레스타인 자치단체에 주지 못하게 막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하고 번 소득세, 이스라엘에서 물건을 수입하며 낸 관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돈줄을 막아 그들을 괴롭히기로 한 거다.

그뿐 아니라, 매일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던 1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막아 수입원을 없앴다.  

이들의 행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여름에 벤그비르 장관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聖殿山, Temple Mount)을 방문해서 회중 기도(public prayer)를 했다. 성전산은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진 곳이지만, 동시에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버그먼 기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슬림과 유대인들 사이의 합의였기 때문에 민족주의자인 벤그비르가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방문해서 보란 듯 기도를 하는 행위는 아랍인들을 고의로 자극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행동이 있은 지 며칠 되지 않아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텔아비브의 유대인 회당 앞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서 현장에서 사망하고 행인들이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수행원들과 알아크사 모스크 앞을 지나는 벤그비르 (이미지 출처: Reuters)

9월에 들어서는 이스라엘군이 요르단 서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도시 제닌을 습격, 10일 동안의 군사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전투원 14명을 사살하고, 30명을 체포했다고 밝히면서 이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 곳곳이 파괴된 것은 물론이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사람들은 세 번째 인티파다가 시작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버그먼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반응이다. 그에 따르면 20년 전만 해도 새로운 인티파다의 조짐이 보이면 이스라엘의 정부와 군 관계자들은 일제히 나서서 폭탄 테러를 하나라도 막고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현재 이스라엘의 내각은 다르다. 군부에서는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장관들은 태연한 것을 넘어 오히려 반기는 태도라는 게 버그먼 기자의 설명이다. 그들은 또 한 번의 인티파타를 기대하고, 전쟁과 폭력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신베트는 네타냐후 총리와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금 벌어지는 행위는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범죄가 아니라 테러, 그것도 소수집단을 노린 테러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의 행위는 "유대주의에 큰 오명을 남겼으며" 전 세계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위험에 있다고 경고했다. 편지를 쓴 신베트의 로넨 바 국장은 이타마르 벤그비르 장관과 연정 구성원들이 이런 테러 행위를 때로는 암묵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네타냐후 총리와 현 이스라엘 정부는 정보기관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까? 버그먼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네타냐후가 극우 세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끊임없이 범법 행위를 저질러 왔다. 법을 무시하고 정착촌을 만들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고도 군과 정부는 눈감아줬다. 그런 일들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이들의 폭력은 점점 커졌다는 게 버그먼 기자의 생각이다. 작은 범죄와 무법 행위를 눈감아 준 결과, 무법이 법이 되었다(the lawless became the law). 그게 지금의 이스라엘이다. 🦦

요르단 서안에서 총을 들고 걷는 유대계 정착민들을 이스라엘 병사가 엄호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Middle East Mon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