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의 혁명 ②
• 댓글 남기기지난해 9월 마흐사 (지나) 아미니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시위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건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들은 아미니가 겪은 일과 똑같은 일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란의 여성들 사이에는 히잡을 비롯한 베일을 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이란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중고생들 사이에도 퍼지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학교 교사나 교육 감독관(장학사)들의 직접적인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된다.
테헤란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니나(가명)는 13살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여학생들은 히잡을 써야 하는 게 학교 규칙이다. 그런데 히잡 거부 운동이 학교로 확산되자 교육 감독관들이 각 학교를 방문해서 히잡 착용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감독관이 방문하는 날 니나의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여섯 명씩을 뽑아 운동장에 모이게 했다. 니나는 그 여섯 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있었다. 학교 학생들이 전날 밤 왓츠앱을 통해 운동장에서 단체행동을 하기로 모의했기 때문이다.
학교의 지시를 받고 운동장에 모인 학생 중 한 아이가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신호였다. 이를 본 학생들은 일제히 히잡을 벗어 땅바닥에 던졌다. 운동장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교사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각자 교실로 돌아가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히잡을 쓰지 않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을 본 교사도 놀랐지만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그 학교의 거의 모든 학생이 히잡을 쓰지 않고 등교했다.
작년 가을 이후로 일어난 시위는 1979년 팔라비 왕조를 뒤엎은 이란 혁명 이후 최대 규모다. 그리고 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이란의 여성들이다.
근래 들어 이란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고, 영화와 미술에서도 여성들이 주목받고 있고,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대학 졸업생의 숫자에서도 여학생이 남학생을 추월했다. 하지만 이란의 여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한 수준의 성차별을 겪고 있다. 결혼과 이혼, 상속 등에서 법적 차별을 받을 뿐 아니라, 이란의 법정은 여성의 증언보다 남성의 증언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에 성폭력 관련 범죄에서 불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40년 넘게 이란 사회를 지배해 온 드레스 코드, 히잡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는 '도덕 경찰'이 확인, 단속한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이란에서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사케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아미니는 지난해 9월, 수도 테헤란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한 지하철역에서 도덕 경찰을 만났다. 당시 아미니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히잡을 쓰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경찰은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체포해 구치소로 가는 버스에 태웠다. 그 버스 안에는 아미니 외에도 같은 이유로 체포된 다른 여성들이 타고 있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훗날 경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아미니로 확인된 여성이 경찰서의 "선도 교육" 담당관에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스카프를 가리키더니 갑자기 쓰러진다. 아미니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3일 동안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다가 사망했다. 당국에서는 아미니의 사인이 기저질환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발표했고, 정부 검시관은 대뇌 저산소증에 따른 장기부전(organ failure)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미니의 주변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아미니의 사촌인 에르판 모르테자이는 아미니가 체포되어 타게 된 경찰 버스에 함께 있던 증인들의 말을 인용해 버스 안에서 경찰이 아미니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아미니의 고향 사케즈에서 진행된 장례식에 모인 여성들은 "여성, 생명,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 흔들었다. 이 구호는 이란 내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에서 사용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시위는 아미니의 장례식 직후 이란에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2주 후 국제 인권감시기구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란 내 소수인종인 발루치인들이 거주하는 시스탄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경찰이 시민을 향해 발포, 수십 명을 살해했다. 경찰은 건물 위에서 시위대와 행인을 향해 총을 쏘았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서도 총을 쏘았다. 시위가 시작된 후로 하루 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이란에서 '피의 금요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마흐사 아미니의 사촌 모르테자이는 쿠르드족의 또 다른 분리주의 무장 세력의 소속으로 알려졌고, 이를 알게 된 이란 정부는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민주화와 법 개정을 위한 시위가 사실은 외국 세력의 사주를 받은 국가 분열 책동이라는 얘기다. 특히 쿠르드족의 거주 지역이 이라크와 가깝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다른 나라가 개입한 것으로 믿는 것 같다.
이란 정부의 두려움에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 글 맨 위에 등장하는 사진의 출처를 보면 "Iran International (이란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페르시아어(이란어)로 만들어지는 TV 네트워크로, 미국 워싱턴 D.C.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 매체는 이번 시위를 (아미니의 애칭을 사용해) "지나 혁명 봉기"라 부르며 빠르게 뉴스를 전달하는데, 방송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반정부 인사, 분리무장단체 회원, 옛 이란의 왕정주의자, 심지어 팔라비 왕조의 후손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매체를 설립한 회사를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업인이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 정부가 외국 세력의 개입을 주장하게 만드는 근거로 사용된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사우디 정부와 관련이 없는 독립 매체라고 주장한다.)
이란 정부가 이번 시위에 이스라엘과 다양한 서방 세계의 정보기관들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란 내 보수층, 특히 현 정권을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이번 시위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우리는 도덕 경찰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안다. 우리 집안에도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도덕 경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은 결국 시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경향으로 보이는데, 많은 경우 왓츠앱의 그룹(단톡방)에서 퍼지는 정부의 주장을 듣고 생각을 바꾸는 것 같단다. 자기들이 믿는 종교를 지탱하는 지금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란 여성들을 겨냥한 프로파간다 비디오도 온라인을 통해 퍼졌다. "For the Girl Next Door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여성들이 옆 나라 이란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여성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싸우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뮤직비디오 형태로 제작된 이 영상에 등장하는 노래는 이란에서 이번 시위에 사용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바라예'라는 곡이다. 하지만 가사를 바꿔서 "이란이 우리나라처럼 망가지지 않도록, 이란 여성들의 꿈이 우리의 이야기처럼 변하지 않도록,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라"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물론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히잡, 혹은 차도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14일, 한 여학교의 학생들이 집단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화학물질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후 이란 전역에서 여학교에 특이한 냄새가 퍼지면서 학생들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구토를 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단 히스테리를 의심했지만, 이를 조사한 이란 보건부 차관이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을 확인하고 "여학교를 폐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인다"라는 발표를 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서양식 교육"에 반대하는 보코 하람 같은 단체가 이란에도 상륙한 것이 아닌지 의심했고, 시위대는 "정부가 어린 학생들도 죽이려 한다"라고 분노했고, 자식의 안전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딸들을 등교시키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받게 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여학생들을 향한 범죄를 규탄하고 엄중한 처벌을 다짐했다. 그리고 수사 결과 1백 명이 넘는 범인을 체포했지만, 이들은 여학생들의 행동에 반감을 품고 개별적으로 행동에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여성들에게 보복하거나 히잡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란 정부의 역할이 모호하다.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사실상 시위의 확산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에 보수 강경론자들이 개별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란 국민의 대다수는 그런 단속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 정부는 이런 여론에 따라 히잡 규정을 완화하는 게 맞지만, 그렇게 할 경우 자신들을 지지하는 소수의 보수층이 떠날 것을 두려워한다. 시위가 확산되어 정말로 정권이 위협을 받게 될 경우 이를 막아줄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히잡 단속을 강화한다고 발표하고, 아미니 사건 이후로 활동을 중단했던 도덕 경찰의 순찰도 재개했지만, 젊은 여성들은 무시하고 히잡 없이 밖을 돌아다니는 상황이 계속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국민의 반대에 부딪힌 이란 정부는 깜짝 놀랄 일을 했다. 오래도록 원수처럼 지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외교관계를 회복한 것이다. 이란 정부는 사우디에 앞서 언급한 이란 인터내셔널의 적대적 보도를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큰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니나는 4월 말에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한다는 규정은 사라졌고, 여학생들은 맨머리로 학교에 오고, 하루 종일 히잡 없이 지낸다. 심지어 수업 중에 히잡을 벗는 교사들도 생겨났다. 니나는 내년에는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외국의 대학교에 진학해서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게 니나의 꿈이다.
니나의 학교에서는 학년말 야외활동으로 단체로 고카트(레이싱 카트)를 타러 갔다. 이란의 십 대 학생들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남학생들과 한곳에 머무는 일이 드물다. 니나와 친구들을 본 남자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촬영하겠다고 했지만 곧 사라졌다. 그날 행사의 주최 측에서 남학생들을 쫓아낸 것이다. 덕분에 그날 오후 내내 여학생들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고카트를 탈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마음껏 바람에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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