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의 공영라디오 방송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지만, 미국에 오자마자 듣기 시작했던 건 아니다. 처음 2, 3년 동안에는 그런 라디오 방송국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토요일 오후, 차를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켰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서 방송국 주파수를 확인해서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오터레터에서 종종 소개하는) This American Life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서서히 공영라디오의 팬이 되었다. This American Life 시간이 되기를 기다려 듣고, Wait, Wait, Don't Tell Me라는 퀴즈를 알게 되고, Car Talk에서 자동차에 대해 배웠고, Prairie Home Companion을 들으며 배꼽을 잡았고, Fresh Air를 통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프로그램도 있고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고, 진행자가 세상을 떠나 종료된 프로그램도 있다) 새롭게 생겨나서 듣게 된 프로그램도 많다. 하지만 나를 공영라디오의 세계로 끌어들인 건 펜실베이니아의 한 대학 도시에서 어느 토요일 오후에 들었던 This American Life라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내가 그날 오후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그즈음에는 언론사의 웹사이트와 데이터베이스도 잘 갖춰졌고, 구글 검색의 성능도 좋아져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조너선 골드스틴(Jonathan Goldstein)이라는 작가의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라는 글이었다. 원래 'Ladies and Gentlemen, The Bible! (신사, 숙녀 여러분, 성경을 소개합니다!)'라는 책의 첫 챕터를 방송에서 소개한 것이었다.

조너선 골드스틴 (이미지 출처: CBC)

'조너선 골드스틴'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한 독자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유대계 미국인이다. 유대교 신앙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그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 못지 않게 성경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예수가 등장하는 신약(New Testament)이 아니라 구약(Old Testament)이다. 미국의 문학, 언론, 연예계에 유대계가 많은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유대계가 가진 스토리텔링 전통을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그게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골드스틴의 이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골드스틴은 이 글에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대교,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의 기반이 되는 구약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재해석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추억이라 가끔씩 찾아 듣기 때문에 오터레터에도 꼭 한번 소개하고 싶었다. 골드스틴의 책이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직접 번역했다. 길지 않은 글이고, 글도 평이한 영문이라 어렵지는 않지만–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콘텐츠를 친구에게 소개할 때 그렇듯–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과연 독자들, 특히 기독교 배경이 없는 독자들에게 얼마나 재미있게 읽힐지 모르겠다.

그래서 간략한 배경지식을 소개하면 이렇다 (알고 있는 독자는 건너뛰어도 된다):

기독교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 앞부분에는 신(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는 흑암에서 빛을 만든 첫날부터 총 6일 동안 세상을 만들었고, 마지막 6일째 비로소 인간을 만드는데, 그게 아담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동물과 식물에 이름을 붙인 건 이 아담이다. 그런데 모두들 짝이 있는데 아담만 혼자인 걸 본 신이 아담이 잠든 사이에 갈비뼈를 하나 빼내어 여자를 만든다. 그렇게 이브(하와)가 탄생한다. 이들은 신이 창조한 낙원인'에덴동산'에 살게 된다.
이때 사탄이 등장한다. 사탄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사탄은 원래 창조 이전부터 신을 보좌하던 천사였다가 타락해서 지상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이다. 창세기에서는 사탄이 뱀으로 등장한다. 이 뱀은 이브를 유혹해서 금단의 열매를 먹게 만들고, 이브는 그걸 다시 아담에게 건네주어 함께 먹게 된다.
이 금단의 열매가 '선악과'다. 한글 성경에는 이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번역되고, 영문 성경에서는 tree of knowledge(지식의 나무)로 번역되지만, 여기에서는 흔히 번역하는 대로 '지혜의 나무'라고 번역했다. 이 부분에서는 성경의 설명이 모호하지만, 두 사람은 원래 선과 악이 뭔지 몰랐지만, 이 열매를 먹은 후에 비로소 선악의 개념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일종의 "지혜"가 생긴 셈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 열매를 먹은 후 자신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그걸 '타락'으로 해석한다. 먹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둘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이브는 뱀의 유혹에 빠진 '죄'로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게 되고, 아담은 땅을 갈고, 노동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운명이 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두 사람의 '타락'의 결과로 아이를 낳기 시작했으니, 두 사람은 인류의 부모가 되는 셈이다. 다만 그들이 낳은 큰아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해 살해하면서 인류의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골드스틴은 이 이야기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다. 자, 그럼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에서 글쓴이가 직접 읽는 걸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조너선 골드스틴의 책

아담과 이브

태초에 신이 만들어 낸 아담은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하루 종일 자기 얼굴을 풀에 대고 문질렀다. 손가락을 귀에 집어넣고 피가 날 때까지 쑤셨고, 주먹을 입에 집어넣어 보려고 낑낑댔다. 머리카락을 한 웅큼 뽑기도 했다. 그러다 자기 눈알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 뽑아내려 하자 보다 못한 신이 나서서 제지해야 했다.

그런 아담을 내려다보는 신은 이 모든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을 게 분명하다. 마치 회사 구내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낯선 인간이 테이블 맞은 편에 앉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낯선 인간이 자기가 만든 창조물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인간이 내가 창조한 마카로니 샐러드를 먹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신은 지난 천만 년 동안 그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었지만, 앞에 앉은 녀석과 나눌 얘기가 없다.

아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불쌍하기도 했다. 아담을 만들기 전에는 신은 외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담을 만들고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담도 그랬다.

그러다가 이브가 나타났다. 이제 에덴의 정원은 말하자면 최초의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원래 이장이 있는 법이고, 바보(village idiot)도 하나씩 있다. 이 마을에서 이장은 이브였고, 아담이 그 바보였다. 세상은 태초부터 그랬다. 아담이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면 이브는 그가 뭔가 중요하거나 현명한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해 봤지만, 아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작은 것들은 참 좋아. 손안에 넣을 수도 있고, 입에도 넣을 수 있거든!" 따위였다.

이브는 자신이 세상에 없다가 어느 순간 존재하게 된 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골똘하게 생각하곤 했다. 아담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꿈에서 이브는 나무 꼭대기에서 춤을 췄다. 자신의 아름다운 생각이 귀에서 흘러나와 밤하늘을 반딧불처럼 밝게 날아다녔다. 꿈에서는 이야기할 상대가 많았다. 이브는 꿈에서 그들과 포옹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코 고는 소리를 듣는다. 눈을 뜨면 옆에서 아담이 멍청하게 생긴 얼굴을 이브의 얼굴에 대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개 사료를 먹은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이브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이 든 아담은 팔을 이브의 가슴에 올려놓고 있었고, 아담의 다리는 이브의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신은 아담이 외로워하는 걸 가슴 아파했고, 그걸 해결해 주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담은 동물들과 친했고, 하루 종일 그들에게 말을 걸며 지냈다. 하지만 이브에게는 신 외에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 이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에게 불평했다. 이브는 아담이 얼마나 멍청한지 아느냐고 호소했지만, 신은 침묵했다. 신은 더없이 훌륭한 분이었고, 이브는 신을 사랑했다. 하지만 신은 이브가 불평을 늘어놓기에 좋은 상대는 아니었다.

아담은 이브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어느 눈부신 아침, 아담은 이브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뭘 만들었는지 봐!" 아담은 뭔가가 들어있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이브가 안을 들여다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아담의 손에는 기린 똥이 있었다. "내가 만든 거야! 신에게 드리려고." 그가 손을 활짝 펴자, 똥으로 만든 작고 목이 굽은 기린이 있었다.

어떤 날은 열심히 뛰어다녀서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눈까지 내려왔다. 그럴 때는 아담이 귀엽기도 했다. 아담이 뱀을 처음 본 것도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날이었다. 밑을 보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실수로 뱀을 밟았다. "아야! 아, 이거 정말 아프네" 뱀이 어금니를 물고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아담과 뱀의 눈이 마주쳤다. 아담이 멍청한 녀석이라는 걸 뱀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담이 지구상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그의 지배가 끝날 게 뻔히 보였다. 뱀은 이제 자신이 마을의 새로운 보안관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앞으로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닌, 뱀의 역사가 될 것이었다.

그 모든 미래를 아담의 멍청한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너랑 비슷한 애를 근처에서 봤어." 뱀이 아담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처럼 두 다리 사이에 뱀모양의 물건이 달려있지 않고, 그 부분이 뭔가 좀 복잡하더라." 그 말을 들은 아담이 신나서 대답했다. "아, 그거 이브야. 내가 붙여준 이름이지. 신이 내 갈비뼈를 하나 꺼내서 만든 애야." 그러면서 아담은 자기 옆가슴의 흉터를 뱀에게 보여주었다.  

뱀은 그런 말을 하는 아담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봤다. 뱀은 아담이라는 존재, 이 한심한 머저리가 신이 가장 좋아하는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는 내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네." 뱀이 아담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땅과 좀 더 평행하고, 유연할 줄 알았어. 색도 녹색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내가 신에게 네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다니게 만들면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그렇게 설명했는데... 헛수고였네."  

아담은 앉아서 눈을 크게 뜨고 뱀의 말을 들었다. 아담이 이브에게 말을 걸면 이브는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앉아서 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뱀이 아담에게 가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아담은 아주 기뻐하며 그러겠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만나서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뱀은 자기가 이 세상보다 더 나이가 많으며,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흑암 속에서 신과 친구처럼 지냈다고 했다.


'태초에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