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게 될 범죄 ①
• 댓글 남기기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후로 외부인이 전투가 일어나는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따라서 언론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취재하지 못한다. 유일한 예외가 의사들이다. 이들은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그 지역에 들어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마크 펄머터(Mark Perlmutter)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나이 70에 가까운 정형외과 의사다. 그는 전공은 손 수술이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해서 무료로 환자를 돌보곤 한다. 그렇게 파견된 경험이 40차례에 달했고, 위험한 곳에서 환자를 치료한 경험도 있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파견된 적은 없었다. 그가 처음 전쟁터에 가서 피해자를 목격한 것은 2024년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싸움이 벌어지는 가자 지구에서였다.
그가 가자 지구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전쟁으로 다친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자에 사는 팔레스타인 인구의 50%가 아이들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펄머터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래 내용은 그가 언론과 했던 인터뷰와 인도주의 단체의 탐사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한 기사 "Chaos Graph"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펄머터는 그곳에서 밴을 타고 가자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는 밴에서 또 다른 미국 의사를 만났다. 페로즈 시드와(Feroze Sidhwa)라는 이름의 그 의사는 펄머터와 마찬가지로 인도주의 구호 활동을 해왔지만, 펄머터와 달리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요르단 서안지구가 그가 활동했던 분쟁 지역이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가자 지구에서도 교전이 활발한 남부 칸유니스에 있는 '가자 유럽 병원(European Hospital in Gaza)'이었다. 병상 200개의 크지 않은 병원이었지만, 수용 가능 인원을 훨씬 넘는 1,00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고, 병원 안팎에는 환자의 가족들이 넘쳐났다.
그들이 도착하자 간호사 한 사람이 의사들을 데리고 병원을 돌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간호사였는데, 한 병실에 다친 아이들 두 명을 보자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Shot, shot"이라고 짧게 말했다. 총에 맞았다는 얘기였다. 그 아이들 외에도 머리에 총을 맞은 아이가 두 명 더 있다고 전했다.
펄머터와 시드와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군인도 아니고 아이들이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펄머터와 시드와는 간호사가 영어가 짧아 파편이나 다른 물체로 인한 부상을 부정확하게 설명한 거라 생각했다. 시드와는 캘리포니아에서 험한 동네로 소문난 스톡튼(Stockton)에서 일하기 때문에, 머리에 총을 맞은 아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이미 네 명의 아이들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입원해 있는 건 아주 특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병원에는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너무 많아 모두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드와는 자기 아이폰에 기록을 하곤 했다. 유난히 바빴던 어느 날의 기록을 보면, "어린아이 두 명이 도착했으나 이미 사망: 한 아이는 12개월, 다른 아이는 2세. 7세 여아: 폭발로 인한 우측 폐기흉. 3세 남아: 머리 부상. 20세 여성: 머리뼈 골절과 혈흉. 함께 도착한 여동생: 같은 부상. 25세 남성: 머리뼈 골절과 이에 동반된 경막하 혈종." 90분 동안 그가 치료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응급처치를 하는 중에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머리에 총을 맞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느 8살짜리 여자아이는 이미 동공이 확장, 고정되어 있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기 때문에 아이를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 아이는 도착한 다음 날 사망했고, 그 아이의 시신이 떠난 침대에는 이번에는 14세 (나중에 확인하니 12세였다) 남자아이가 머리와 가슴, 두 곳에 총상을 입고 실려와 눕혀졌다. 그 아이가 떠난 침대에는 역시 머리에 총을 맞은 13세 남자아이가 도착했다. 같은 날 두 살짜리 여자아이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채 실려 왔다.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시드와처럼 폰에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펄머터의 경험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어린아이 두 명이 실려 온 날을 기억한다. 두 아이 모두 머리와 가슴에 모두 총상을 입었고, 전부 관통상이었다. 한 아이의 가족에 따르면 그 아이는 물을 나르고 있었다. 펄머터는 2주간 봉사하는 동안 그렇게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은 아이들을 13명 치료했다. 하루에 한 명꼴이었다.
우연일 수 없는 총상
이 아이들은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된 아이들과는 달랐다. 12살, 8살, 심지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는 건 길을 가다 그저 운이 나빠서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적을 총으로 쏠 때는 가슴이나 머리를 겨냥한다. 적을 죽이지 못할 경우 반격할 것이기 때문에 총을 쏠 때는 반드시 죽여야 ("shoot to kill")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폐와 심장이 있는 가슴이나 머리를 쏴야 한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이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았다는 건 우연이 날아든 총알에 맞은 게 아니라, 누군가 겨냥했다는 뜻이다.
펄머터는 처음에는 "어떤 나쁜 인간 하나가" 아이들을 쏘고 다니는 줄 알았다. 부대마다 이상한 인간이 반드시 하나씩 있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딴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하니, 누군가 규율을 어기고 아이들을 골라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가 가자에 머무른 2주 동안 그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말았다. 시드와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온 후, 두 사람이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시드와가 미시건주 디어본(Dearborn)시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토론 패널로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기사에서는 어떤 컨퍼런스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디어본은 2023년에 아랍계 인구가 절반을 넘는 최초의 미국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그 패널에는 가자에서 의료 봉사 활동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그는 시드와보다 두 달 먼저 그곳에서 활동했다고 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중 시드와가 그곳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어린아이들을 봤던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자기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며, "거의 매일 머리에 총을 맞은 아이들이 실려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시드와는 펄머터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들은 두 달 먼저 그 병원에서 일한 의사도 똑같은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런 일이 꾸준히 일어났다는 것이니, 다른 의사들을 접촉해 봐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가자에서 의료 봉사를 한 의사, 간호사들을 찾아 수소문을 했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사람들 중에 애덤 해머위(Adam Hamawy)라는 성형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만난 유일한 아이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였다. 그는 비록 한 명 밖에 본 적이 없지만, 그런 사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군의관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고, 그곳에서 민간인을 치료해 봤기 때문이다.
"이라크전 민간인 부상자 중에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전투가 일어난 지역에 있다가 다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였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도 (가자의 피해 아동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저는 이라크에 8개월 동안 있으면서 5, 6명의 아이를 치료한 게 전부였고, 그중에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는 없었어요. 아니, 총알에 맞은 아이를 본 기억도 없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의료진 중에서 가자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은 머리나 가슴에 총상을 입은 아이들을 50명이나 봤다고 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6살짜리였다.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드론 하나가 날아와 아이의 머리를 겨냥해 쐈다고 했다.
시드와에게 연락한 다른 의사 알리아 카탄(Ahlia Kattan)은 남편과 함께 가자에서 봉사하는 동안 15명의 아이들이 그런 총상을 입고 왔다고 했다. 그가 본 가장 어린 환자는 한 살 반짜리 여자 아이였다. 호출을 받고 응급실로 갈 때만 해도 아주 어린아이라고 해서 폭격으로 인한 부상인 줄 알았는데, 도착해서 보니 누군가 아이의 머리를 정확하게 겨냥해서 쏜 것으로 보였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이미 사망한 것을 알았지만, 옆에서 울부짖는 아이의 엄마를 보면서 모든 수단을 다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심폐소생술을 했단다.
아이를 갖기 위해 9년을 노력해서 비로소 얻은 외동딸이었다고 했다.
펄머터와 시드와가 연락한 미국 의료진 53명 중에서 가자에서 머리나 가슴에 총을 맞은 아이를 본 사람은 44명이었다. 서로 다른 시점에 봉사한 사람 중 83%가 목격했다면, 우연일 수 없다. 펄머터는 그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겨냥해서 죽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묻히게 될 범죄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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