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 '제국을 숨기는 방법'에 등장하는 내용은 요즘 미국 현대사를 주제로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주목 받고 있는 역사학자 대니얼 임머바르(Daniel Immerwahr, 노스웨스턴 대학교)가 쓴 책, 'How to Hide an Empire (제국을 숨기는 방법)'에 나오는 내용이다. (임머바르는 오터레터에서 '레이건/트럼프 ②'라는 글로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는 '이머와'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는데, 조금 특이하게도 미국인이면서 독일식 발음법을 그대로 유지한 '임머바르'라고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렇게 수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2019년에 나온 이 책이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판 제목은 '미국, 제국의 연대기'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하던 필리핀으로 돌아가 보자.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한 다음 날인 1941년 12월 8일, 의회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며 의회의 대일 선전포고를 끌어내는 연설을 했다. 지금은 '치욕의 날 연설(The "Day of Infamy" speech)'이라는 이름이 붙은 루즈벨트의 연설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과 함께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자라면서 들어 보게 되는 육성 녹음이다. (여기에서 전문과 번역, 그리고 녹음의 앞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루즈벨트는 "아메리카 합중국은 일본 제국의 해군과 항공대로부터 기습적이고 고의적인 공격을 받았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다. 그런데 대니얼 임머바르는 이 연설에 등장하는 "아메리카 합중국"이 과연 어디를 이야기하는 건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진주만은 하와이의 일부이고,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이기 때문에 루즈벨트의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하와이는 1959년에야 비로소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기 때문에 진주만 습격 당시만 해도 그저 "미국령(U.S. territory)"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이 같은 날 기습 공격한 목표는 진주만 외에도 괌, 그리고 무엇보다 필리핀이 있다. 전부 미국령이었던 섬들이다.

그런데 루즈벨트의 연설문을 보면 하와이에서 진주만이 있는 섬을 콕 찍어서 "일본 비행 편대들이 미국 오아후섬에 폭격을 개시"했다고 말한다. 연설문 뒤로 가면 괌과 필리핀도 등장하지만, 일본이 그날 함께 공격한 영국령의 홍콩까지 구분 없이 함께 등장한 것이고, "미합중국을 공격했다"라는 말을 하는 초반에는 하와이 오아후섬만을 이야기한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공격을 받기 전 진주만의 모습. 진주만은 하와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자, 수도 호놀룰루가 위치한 오아후에 있다. (이미지 출처: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아래 원고를 보자. 작성된 연설문에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연필로 직접 수정한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기록이다. 첫 장의 중간쯤을 보면 일본이 공격한 곳을 "Hawaii and the Philippines (하와이와 필리핀)"이라고 적은 부분을 지우고 "Oahu(오아후)"라고 애써 고친 것을 볼 수 있다. 분명히 필리핀도 공격을 받았는데 루즈벨트는 이를 빼버렸을 뿐 아니라, 하와이라는 이름 대신 오아후라는 섬만을 언급하기로 한 거다. 루즈벨트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에 나온 여론 조사에서 적국이 공격할 경우—당시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있었지만, 결국 미국도 참전하게 될 조짐이 커지고 있었다—미국이 자국군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필리핀과 괌은 아주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1940년 포춘(Fortune)도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어느 나라"를 미국이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하와이를 보기에 포함시켰다. 아예 다른 나라처럼 취급한 것이다. 그런데 독자 중 55%만이 하와이를 방어해야 한다고 답했다.

루즈벨트의 고민이 거기에 있었다. 미국인들은 괌과 필리핀을 자국 영토처럼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하와이에 대한 방어 의지도 약했다. (본토인의 55% 밖에 하와이 방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하와이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루즈벨트는 연설 한 번으로 그런 국민의 생각을 돌려놓아야 했던 거다. 따라서 동의율이 낮은 괌은 초고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필리핀도 결국 빼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의회 연설 때는 수정된 원고 속 "Oahu" 대신에 "the American Island of Oahu (미국 오아후섬)"라고 말한다. 그냥 오아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거다.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는 작업에 이 정도로 공을 들여야 했다는 건, 미국인들은 하와이조차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음을 의미한다.

루즈벨트가 연필로 직접 수정한 연설 원고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태평양 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필리핀에도 미군을 파병했지만, 그렇게 해서 도착한 미군 역시 필리핀이 다른 나라라고 생각했단다. 임머바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 미군 병사가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해서 길거리에 한 필리핀 아이를 보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영어로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 아이는 뜻밖의 유창한 영어로 미국식 이름인 "오스카(Oscar)"라는 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란 병사가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제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이유 말인가요?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가 된 후에 미국에서 영어 교사들을 보내서 저희를 가르쳤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미군 병사는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인 줄 몰랐다"고 했단다.

그렇다면 하와이는 왜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괌이나 필리핀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까? 임머바르는 "필리핀을 비롯해 미국이 빼앗아 영토로 만든 다른 지역에 비해 백인 인구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푸에르토리코나 괌을 비롯한 다른 지역과 달리 하와이가 주(state)로 승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인종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다.

임머바르는 19세기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인종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지금의 캘리포니아 지역을 갖게 된 미국-멕시코 전쟁(1846-48) 때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훨씬 더 많은 멕시코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경선에서 멈추기로 한 것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멕시코인의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비백인을 시민권을 가진 국민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땅은 최대한으로 차지하고, 비백인 국민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고심 끝에 지금의 미국-멕시코 국경이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진행된 미국의 해외 영토 확보 과정 전반에 잘 드러난다.

미국-멕시코 전쟁 이전과 이후의 국경 변화 (이미지 출처: Britannica)

대표적인 예가 태평양의 미국령 사모아(American Samoa)다. 이 섬은 분명히 미국 땅이지만,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시민권이 없는 국적자(non-citizen nationals)'라는 희한한 지위를 갖게 된다. 미국인이지만, 미국 국민이 누리는 모든 권리를 누리지는 못한다. 역시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 주민의 경우 1917년에 통과된 법에 따라 미국의 시민권이 주어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라고 잘못 알고 있다—여기에도 묘한 차별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시민권은 법(law)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 헌법(Constitution)으로 보장된 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시민권을 빼앗길 수 있다.  

미국법의 인종주의적인 태도는 굳이 본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미국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살던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것은 남북전쟁이 진행 중이던 1863년이지만, 그렇게 해방된 흑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진 것은 1868년의 일이다. 즉, 미국에 살고 있어도, 노예가 아니어도 시민권을 주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법적으로나마 선거권을 비롯한 각종 차별을 없앤 건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20세기 중반이다.

미국이 이렇게 철저하게 시민권을 제한하는 것은 미국이 자랑하는 공화국의 이상, 민주주의의 이상이 궁극적으로 백인들이 권리라는 인식인 깔려있기 때문이다.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후에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들의 투표를 막았고, 지금도 미국 남부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도가 일어나는 이유가 그거다.

1940년대 미국에서 나온 세계 지도를 보면 미국의 입장에서 그린란드의 중요성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인다. (이미지 출처: How to Hide an Empire)

미국은 19세기 말에 식민지 열병을 앓았다. 유럽의 열강처럼 식민지가 있어야 진정한 강대국이라는 생각에 뒤늦게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식민지의 확보 자체보다 그 뒤에 일어날 국내 정치적 변화였다. 미국은 원하면 1) 제국이 될 수 있었고 2) 백인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었고 3) 대의제 민주주의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었다. 제국이 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새로 얻게 되는 영토의 비백인 인구 때문에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여전히 백인 중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지만, 19세기에 손에 넣은 (비백인 우세) 지역 중 상당수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제국은 아니지만, 영연방 비슷한 영토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미국은 이런 제국의 흔적을 숨기려고 한다. 미국이 가진 인종주의적 태도를 이야기하지 않고 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생어(David Sanger) 기자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이 유럽의 분쟁에 끼어드는 것을 회피하던 1930년대의 고립주의보다는 (임머바르가 설명하는) 1890년대의 확장주의, 즉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필리핀을 손에 넣었던 시절의 미국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태도로 국제 문제에 임할 경우, 중국의 대만 점령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를 미국이 가져야 할 이유로 "경제,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에 필요하다"고 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똑같은 이유인 것이다. 🦦


임머바르의 책 '미국, 제국의 연대기'를 출간한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께 5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시면 오는 월요일(1월 20일) 오전에 추첨,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