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총기 난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18건의 난사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어느 하나만 다른 나라에 일어나도 전국이 충격에 빠지겠지만 미국인은 '적응'하고 있다. 악명 높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1999년)이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곧 적응했다. 약 10년 전 무려 20명의 6, 7살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고 전 미국이 충격에 빠졌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900번의 학교 총기사건이 있었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정부는 총기규제 법안을 꺼내 들었지만, 단결된 공화당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혔고, 그때마다 총기는 (규제의 가능성을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팔려나갔다. 지난 5월 14일에는 18세 남성이 공격용 소총을 들고 멀리 흑인 동네로 가서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던 흑인들을 향해 총을 쏘아 10명을 죽였다. 그리고 열흘 만에 다시 18세의 남성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19명의 어린아이들과 2명의 교사를 죽였다. 미국은 또다시 충격에 빠졌지만, 아무도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제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테드 크루즈(상원의원, 텍사스주)는 총기를 규제하면 안 되고, 학교로 진입하는 문을 하나로 만들고 거기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기괴한 소리를 해서 "총기 대신 문을 규제한다"는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분명한 원인은 놔두고 대응에 실패했다는 주장은 잘 생각해보면 어디에서 많이 듣던 논리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레베카(리베카) 솔닛이 영국의 '가디언'지에 이를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한 글이라 번역해서 소개한다. 원문은 여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두 점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다. 둘 사이가 워낙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는 총알이 들어간 곳이고, 다른 총알이 나온 곳이다. 총을 숭배하는 하위문화가 미국 사회에 입힌 총상이다. 텍사스주는 임신 중지를 더욱 엄격히 제재하면서도 총기에 대한 규제는 꾸준히 완화해왔다. 이런 총기는 무한의 자유와 권력, 지배, 그리고 군인의 정체성으로 구성된 남성성의 특이한 버전이 가진 상징이다. 그 정체성 안에서 총기 소지자는 지휘관이고 그 외에는 누구나 표적이다. 또한 이 정체성 안에서는 공포가 호전성을 부추기고, 총기 소유자의 권리는 막강해서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안전할 권리가 없다. 이는 현재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속한 전쟁 컬트의 일부다.

총기가 사용되는 곳은 어디나 전쟁터다. 따라서 이는 미국이 내전(영어로 내전은 civil war라고 부르는데, civil은 '민간의, 예의 바른'의 의미도 있다)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전쟁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미국인들은 점점 더 강력한 무기를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이 무기들은 민간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지만 미국 전역에서 거듭거듭 민간인들을 상대로 사용된다. 이번 주 초, 텍사스주 유발데에서 4학년 아이들 19명과 교사 두 명을 살해한 총도 그렇다. 범인은 18세 생일이 되었다는 이유로 반자동소총과 수백 발의 총알을 살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총기범은 높은 호텔방에서 콘서트장의 청중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미국의 수정헌법 2조(총기 옹호자들 사이에 총기 소지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으로 알려져 있다–옮긴이)가 추가되었던 때만 해도 총을 재장전하는 데는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해서 겨우 한 발을 쏠 수 있던 시절이다. 그에 비하면 201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때 범인은 호텔 창문에서 10분 동안 1천 발 가량을 뿌려서 60명을 죽일 수 있었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식료품을 사던 10명의 흑인 손님과 한 명의 경비원을 죽인 10대 소년은 잘 통제된 민병대(well-regulated militia, 수정헌법 2조에서는 잘 통제된 민병대가 총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한다–옮긴이)가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인 회당에서 11명을 죽인 반유대계 범인도, 플로리다주 올란도의 나이트클럽에서 49명을 죽이고 53명을 다치게 한 동성애 혐오자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23명을 죽이고 23명을 다치게 한 반이민주의자 범인도, 코네티컷주 뉴타운에서 26명–그중 20명이 6, 7세 아이들이었다–을 죽인 살해범도 잘 통제된 민병대가 아니었다.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아이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된 소총

총을 숭배하는 컬트와 일련의 학살이 방조되는 대가로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총기사건에 대비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훈련은 이들에게 자신이 언제든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일깨워준다. 총기 컬트와 학살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 학교는 수억 달러를 경비와 건물 보안, 연습과 훈련에 써야 하고, 연방 정부는 또한 수백만 달러를 캠퍼스 경찰 유지에 사용한다. 전국의 도시들은 총기 컬트와 학살을 방조하는 대가로 엄청난 비용을 경찰과 경찰 장비에 쓰면서 일종의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를 경찰을 병력화하는 핑계로 사용한다.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발데에서는 총기와 방탄복을 갖춘 경찰이 학교에 진입해서 범인을 제압하지 않고 오히려 학부모의 진입을 막으면서 사실상 범인을 보호해주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훈련을 받고, 연습을 하고, 이를 위해서 봉급을 받고 무기를 지급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총기 컬트를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금이나 다름없다. 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총을 휘두를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가 돈과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우익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이들이 기업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고, 기업들은 우익 세력의 집착을 통해 큰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총기다. 20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다. 미국 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총기가 사냥과 시골 생활의 문화, 도구라는 식의 홍보 방법을 버리고 파괴력이 강한 전쟁 무기로서의 총기와 그에 맞는 방탄복, 기타 장비를 파는 쪽으로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총기협회는 그렇게 함으로써 백인 남성들을 자신들이 원하면 어디에서나 코스프레를 하는 아마추어 특공대로 만들었고, 미국을 전쟁터로 바꿔놓았다. 공포와 증오가 기업의 이윤을 키워주었기 때문에 총기산업과 우익 뉴스 미디어, 다양한 TV 대담자, 선동가, 무장조직의 지도자, 그리고 네오 나치 세력은 이 두 가지(공포와 증오)를 키워왔다.

가진 것 없는 백인 남성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총에 매달린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한 때 총기회사 임원이었다가 지금은 이 산업을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선 라이언 뷰시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기협회가 갈수록 더 많이 쏟아내는 독설이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자 일부 총기회사들은 총기 산업이 이런 메시지를 가져다 사용하면 총을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끔찍하게 위험한 수사법과 갈수록 강력해지는 총기에 집중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총기 산업이 주는 정치자금을 삼키고 유리한 법을 통과시켜 총기 판매에 붐이 일어났고, 이익은 하늘로 치솟았고, 전에는 없던 곳에 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총을 사게 만든 그 분노에는 인종주의, 반이민자 정서, 여성혐오, 전쟁 이미지, 신남군(neo-Confederate) 환타지, 우스워보일 만큼 독한 남성성으로 더욱 날카로워졌고, 총은 이 모든 것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미국인의 다수가 임신 중지 권리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다수의 미국인이 총기 소지를 제한하기를 원하지만 소수의 지배(minority rule, 인구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그룹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옮긴이)가 위와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총기 문화를 보면 성폭행 문화(rape culture)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범인이 아닌 피해자에게 폭행을 저지할 책임이 있다고 하는 관습이 그렇다. 이는 사회가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줄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여성들이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을 극단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느 시간에는 어디에 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 여자는 혼자 있을 때,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 술집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술과 마약과 낮잠, 파티, 공공장소, 대중교통, 낯선 사람, 도시, 야외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우리의 옷과 외모가 성폭행 충동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혹여 우리의 행동이 성폭행을 부추기지는 않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결국 폭력의 문화를 허용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와 자신감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총기의 문화를 허용하기 위해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한 권리라는 개념은 우리 중 일부에게만 적용된다. 총기를 보이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법(open-carry laws, 일부 주에서 허용한다–옮긴이)이 있어도 흑인들은 슈퍼마켓에서 큰 소총을 메고 다니거나 이런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표시하지 못한다. 2016년, 경찰은 자신의 차에 총이 있다고 말한 필란도 카스틸을 바로 앞에서 총으로 쏴 살해했다. 2014년에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12살의 타미르 라이스가 장난감 총을 들고 있다가 경찰의 총에 맞았다. 새로운 임신 중지(금지)법이 줄줄이 통과되고,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도 부정되는 반면 총기 소유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아이에게 가야할 길을 가르치면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는다"는 총기 회사의 광고. 유발데 희생자의 부모들은 이 회사(Daniel Defense)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클라호마주에서는 임신한 사람은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포 덩어리보다 적은 권리를 갖는다. 임신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살인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그들이 겪게 될 공권력의 침해는 끔찍하다. 유산을 할 경우 범죄 수사에 들어갈 수 있고, 인정 없는 사법기관에 자신의 임신이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결과였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의 임신은 감독의 대상이고 그들은 잠재적 용의자다. 가부장적 폭력의 확장의 반대쪽에는 생식권(reproductive rights)의 축소가 존재한다.

총은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투표권 박탈과 여성, 이민자, 흑인, 성소수자–이들은 근래 들어 전부 총격 사건의 표적이 되었다–에 대한 처벌을 통해 소수의 권력을 추구하는 컬트로 변한 정당의 상징이 되었다. 이 정당은 전임 대통령과 다양한 TV 대담자, 선동가들을 포함한 컬트 지도자들이 사주한 폭력을 통해 선거의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바로 그 정당이다.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 전 뉴욕시장으로 트럼프의 자문 변호사–옮긴이) 군중이 의회에 침입하도록 부추기면서 "전투를 통한 시험(trial by combat)"이라고 외쳤다. 만약 총이 아이콘이라면 그것은 폭력이 권리이자 정체성으로 지켜지는 성례(聖禮)이기 때문이다.

반자동 소총은 죽음의 컬트가 휘두르는 죽음의 도구다. 그리고 이 참극은 총기를 휘두르고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권력을 가진 소수를 뒤엎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을 번역하는 동안 뉴스 알림이 떴다. 아주 드물게 공격용 소총 규제에 찬성한 (버펄로의 참극이 일어난) 뉴욕주의 공화당 의원이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 선거에 출마를 포기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