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카슈미르 지역에서 대규모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이 지역은 인도가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이곳을 둘러싸고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이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어 화약고처럼 여겨진다. 과격 이슬람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번 공격으로 관광객을 포함해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범행 당시, 테러리스트들은 피해자에게 쿠란을 외우게 하거나 바지를 내려 할례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무슬림 여부를 가려낸 뒤, 비무슬림 남성들만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의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고 믿는 인도는 5월 7일, 군사 작전을 개시해 양국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예정되어 있던 유럽 국가 순방을 미루고 이번 사태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에 처음 총리가 된 모디는 지난해 열린 총선에서 인도인민당(BJP)을 승리로 이끌며 3연임에 성공했다. 모디는 국내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가 집권한 이후로 중국, 파키스탄과의 갈등은 물론, 인도 내 무슬림 인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는 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모디와 BJP가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 힌두 민족주의 이념인 ‘힌두트바’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국가 정체성을 힌두교라는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힌두트바 지지자들이 모디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궁극적으로 '주류=전체'라고 선언해 다양성과 소수 집단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려는 태도다. 그런 주장을 하는 모디 총리가 인도계 힌두교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21세기 세계에서 종교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의 한 부분이다.

2024년 카슈미르 지역을 방문한 모디 총리
이미지 출처: Greater Kashmir

하지만 인도에서는 이게 단순히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도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2014년에 처음 총리직에 오른 모디는 구자라티어(아래 표에서 6위)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인도의 지식인과 상류층에서 흔히 사용하는 영어보다 힌디어를 더 잘 구사할 뿐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힌디어를 선호한다.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로 인도의 총리들이 줄곧 영어를 사용해 온 것과 사뭇 다른 결정이다.

힌두이즘(हिन्दू धर्म, Hinduism)은 종교이고 힌디(हिन्दी, Hindi)는 언어인데, 모든 힌두교도가 힌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힌두교를 믿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80%이지만, 힌두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43%에 불과하다. 힌두어는 인도의 많은 언어 중에서 "모국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일 뿐이다.
인도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사용자 숫자
출처: 2011년 인도 센서스, Wikipedia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만비어 싱(Manvir Singh) 교수는 작년에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오래된 주장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설명했는데, 그의 언어학적 설명도 재미있었지만, 글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등장하는 인도의 언어와 정치 상황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를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만비어 싱 교수(오른쪽)은 다양한 언어가 가진 소리를 연구한다.
이미지 출처: UC Davis

만비어 싱은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준다. 2010년, 이 마을에서는 새로운 여신 하나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미 인도인들은 많은 신을 믿는데 굳이 왜 새로운 신이 필요했을까? 그 신은 '영어의 여신'(Angrezi Devi, Goddess English)이었고, 이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찬드라 반 프라사드(Chandra Bhan Prasad)다. 영어의 여신이라는 것도 황당하지만, 더 뜬금없는 건 프라사드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이다. 이 무신론자는 왜 영어의 여신을 만들려고 했을까?

프라사드는 4계급으로 분류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안에도 포함되지 않는 최하층인 '달리트'에 속한다.

우리는 달리트를 흔히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번역하지만, ‘불가촉천민’이라는 한자어는 산스크리트어 ‘찬달라’(चण्डाल)를 직역한 표현이며, ‘달리트’(दलित)는 ‘억압받는 자’를 뜻한다.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이 만들어낸 표현이다. 같은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불가촉천민을 대신할 표현을 찾지 못한다면, 그냥 '달리트'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도 정부는 카스트 제도 안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 우대 조치로 바이샤(3계급) 이하에 해당하는 국민(절반이 넘는다)에게 공무원직의 일정 부분을 주는 쿼터제를 시행하고, 하원 의석의 15.5%를 달리트 출신에게 할당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프라사드가 영어의 여신을 만들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달리트들 사이에 영어를 보급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것이다.

"영어의 여신은 달리트들의 힘을 키워 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차별의 압제에서 풀려나게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달리트가 도로나 하수구 청소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영어를 사용하는 달리트가 남의 농장에서 하찮은 육체노동이나 하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회적 이동(=계층이동)을 만들어 낸 게 바로 영어 학습입니다."  

달리트 커뮤니티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
이미지 출처: NBC News

프라사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계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은 언어는 중국어이고, 스페인어와 영어가 그 뒤를 따르고 있지만 (스페인어 사용자와 영어 사용자를 합쳐야 중국어 사용자와 비슷한 숫자가 된다) 나중에 학습을 통해 배운 제1외국어를 기준으로 하면 영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언어다. 즉, 부모가 사용하던 것과 다른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언어가 영어다. 영어는 유엔, 나토 등 국제기구에서 사실상 표준어(lingua franca)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실용적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언어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비어 싱 교수는 이 대목에서 'The Rise of English'(영어의 부상)이라는 책을 인용한다. 이 책의 저자 로즈메리 살로몬(Rosemary Salomone)은 영어가 초기에 확산되는 과정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정복과 개종(改宗), 교역"이라는 세 단계를 통해서 이뤄졌지만, 지금은 공모(collusion, 결탁)라는 네 번째 단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엄마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아이를 키우거나, 네덜란드의 대학교들이 영어로 가르치는 게 그렇고, 전 세계 운동가들이 영어로 트윗을 하는 것도 그렇다. 이들에게 영어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용한 언어다.

로즈메리 살로몬의 책, The Rise of English
이미지 출처: Rothwell & Dunworth

하지만 프라사드가 달리트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이유는 그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만이 아니다. 달리트는 단일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 내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보여주는 위의 표에서 6% 이하로 사용되는 언어들은 (아래 지도처럼)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는 지역 언어들인데, 달리트는 영어나 힌두어가 아닌 자기가 태어난 곳의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왜 프라사드는 그들에게 (모디 총리가 확산시키고 있는) 힌두어가 아닌 영어를 가르치려 할까? 영어는 수 세기 동안 인도를 약탈했던 식민지배자의 언어 아닌가?

"힌두어에는 카스트 제도의 편견이 많이 담겨있어요. 숙어나, 어구, 속담, 농담, 노래에 달리트를 조롱하는 게 많습니다. 그런 언어를 모국어라고 배우면서 달리트가 어떻게 자존감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인도의 지역별 언어 지도
이미지 출처: Wikipedia

유명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진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사고 구조가 영어화(anglicized) 되고, 영어의 언어적 패턴에 세뇌당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했다. 부르디외의 걱정대로라면 프라사드와 같은 달리트는 역시 사고가 영어화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힌두어를 배워서 그 안에 들어있는 달리트 비하적 태도를 내재화하는 것보다는 영어화된 사고를 하게 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라사드가 제작을 의뢰해 만든 여신상은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신의 형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과 비슷한 포즈를 하고 있는 자그마한 이 동상은 오른손에는 펜을, 왼손에는—평등을 법제화한—인도의 헌법을 들고 있고, 데스크톱 컴퓨터 위에 올라서 있다. 법과 교육을 통해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자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작가 찬드라 반 프라사드와 그가 제작한 영어의 여신상
이미지 출처: RAIOT, Times of India

프라사드는 이 동상을 제작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이를 숭배할 수 있는 신전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된 이 신전의 벽에 과학 공식과 영국의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이 새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지역 정부가 이를 막았기 때문이다.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선임 장관(여성)이 여신처럼 대접받는 자기의 동상 외에 다른 여신상이 들어서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라사드의 시도를 막은 건 장관만이 아니었다.


'영어의 여신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