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Z세대의 사회화
• 댓글 5개 보기격렬한 시위는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정한 이슈를 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경찰은 이들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시위 자리에 텐트를 치고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시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과 함께 시위대를 끌어내라는 정치적인 압력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위대 중에는 순수하지 않은 동기를 가진 사람들, 특히 "전문 시위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전문 시위꾼이 어떤 사람이냐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지만, 경험이 있어서 장기적인 시위를 조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부터, 집 없는 부랑인까지 다양할 수 있다.
결국 "관계 당국"은 경찰을 투입해서 시위대를 현장에서 몰아내고 텐트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많은 경우, 시위대도 진압하는 경찰도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하기 때문에 충돌 과정에서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지기 쉽고, 이를 지휘하는 경찰의 상급자가 무능하거나 실수할 경우 끔찍한 결과가 일어난다.
어제는 미국 역사에서 악명높은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학교 총격 사건 발발 54주년 기념일이었다. 1970년 5월 4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시위하던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오하이오주가 캠퍼스에 진입시킨 주 방위군 병력이 학생들에게 총을 쏴서 4명이 죽고, 9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1970년 당시 미국의 대학생들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인접국인 캄보디아까지 확대하는 것에 반대해 시위를 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1955년에 시작된 이 전쟁에 1965년에 처음으로 미군을 파병한 후 전쟁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승산이 없는 전쟁에서 젊은이들만 죽어 나간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데 미군의 베트남 철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캄보디아를 폭격하면서 전쟁을 확대하자—징집될 나이에 있던—대학생들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었다. 닉슨은 훗날(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닉슨이 갈수록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을 켄트 주립대 사건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부의 결정에 반발한 대학생 시위대를 총으로 쏘는 행동은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고, 이때부터 닉슨은 정치적인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닉슨은 대학교 캠퍼스에서 확산되는 시위가 외부 세력("outside agitators") 때문이라고 믿었다.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는 현재 12~27세. 현재 대학생들은 모두 이 세대에 속한다. 각 세대는 이전, 이후의 세대와 다른 사회적 경험을 하는 코호트(cohort)이고,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Z세대 중 43%가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57%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도는 올라간다.)
그 결과가 미국 전역의 대학교 캠퍼스로 확대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다. 아래 지도는 경찰이 시위 학생들을 체포한 캠퍼스를 보여줄 뿐, 시위는 사실상 거의 모든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다.
Z세대 중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고 해도 아직 절반을 넘지는 않는다. 징집될 경우 참전해야 했던 베트남 전쟁과 달리,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다른 나라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중동에서 미국에 가장 중요한 우방이다. 유대계 미국인과 함께 미국의 기성세대는 이번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Z세대가 반기를 든다고 해서 과거 베트남 전쟁 때의 대학생들처럼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Z세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더 요란해진다. 최근 일어난 시위 중에서도 가장 요란했던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가 그렇다. 뉴욕은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 유대계의 비율이 높고, 컬럼비아 대학교, 뉴욕 대학교(NYU)와 같은 대학교의 캠퍼스에서도 유대계 학생의 비율이 높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있어도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다른 대학들과 달리, 컬럼비아에서는 직접적이 폭력으로 이어졌고, 이게 대학 당국을 긴장시켰다.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대학들이 있다. 같은 지역에 있어도 스탠포드보다는 버클리에서, NYU보다는 컬럼비아에서 시위의 역사가 길다. 따라서 이런 대학들은 세대가 바뀌고 이슈가 바뀌어도 학생들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다소 너그러운 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은 뉴욕시와 상의 끝에 경찰을 캠퍼스에 진입시켜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면서 큰 비난을 받았다.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건물을 기습, 점거해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컬럼비아 대학교 만큼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뉴욕대학교,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예일 대학교 등 미국 전역에서 출동한 경찰들이 시위 학생들을 체포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미국인들이 "도대체 Z세대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궁금해하고 있다. 최근 발행한 Daily Catch도 바로 그런 궁금증을 풀려는 기성세대의 시도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속한 Z세대가 뉴스를 소비하는 곳은 기성 언론이 아닌 소셜미디어이고, 그중에서도 틱톡이 1위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바로 그 틱톡에서 충격적인 영상들이 확산되었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고 지금은 틱톡에서 모두 삭제되었지만, 그 문제를 다룬 영상에서 일부 확인이 가능합니다.) 문제의 영상들은 오사마 빈라덴이 2001년, 9/11 테러 이후에 "미국에 보내는 편지(Letter to America)"라는 제목으로 영국 언론에 게재한 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글(영국 언론사인 가디언의 웹사이트에 남아있다가 문제가 생긴 후 사라졌습니다)에서 오사바 빈라덴은 자기가 9/11을 비롯한 일련의 테러를 자행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한 영상이 Z세대가 즐겨보는 틱톡에 퍼졌고, 가뜩이나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Z세대가 팔레스타인에 동조하고 미국 정책을 비판하는 열기에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이 상황을 본 미국 정치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국이 알고리듬을 조작해 이런 일을 꾸몄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없지만 2016년 페이스북–캠브리지 어낼리티카 사건에 놀란 정치인들은 앞으로 비슷한 방식으로 이용당할 수 있는 틱톡을 미국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어요. 최근 미국 의회에서 '틱톡 강제 매각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일이 있었던 거죠.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뭘까? 궁극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멈추고 전쟁을 끝내도록 하라는 것이지만,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이유는 학교 당국이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계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를 포기(divestment)하라는 것이다. 막대한 기부금을 운용하는 미국 대학에 학생들이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변화인 셈.
기성세대는 학생들의 생각에는 동의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시위가 정말로 효과적인 수단인지 묻는다. 이와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글이 뉴욕타임즈의 존 맥호터(John McWhorter)가 쓴 칼럼이다.
"현재 컬럼비아 대학교의 시위대는 과거 일부 민권운동가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미국에서 중요한 민권법을 통과시켰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과 그 후에 나타난 시위를 위한 시위, 보여지기 위한 폭력적 시위를 구분해서 후자의 경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맥호터는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이후부터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사이에 민권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나?"라고 물으면서, "물론 시위에는 보여지기 위한 극적인 장치(threatrics)도 필요하고" 킹 목사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시위가 목표보다 보여주는 데 주력하기 시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맥호터는 Z세대의 시위를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빠져 사는 세대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은 꽤 흔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시위의 조직화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도 미국의 Z세대가 인종적, 문화적으로 그 어느 세대보다 다원화된 세대임을 알고 있고, 그렇게 다양한 또래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살해되는 것과 뒤를 이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의 확산을 목격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세계 최강의 미국이 지원하는 무기를 사용해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죽이는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흥미로운 시각이 있다. Z세대 중에서도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둔 (대략) 2002년생의 독특한 삶의 경험을 이야기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다. 이 세대는 팬데믹으로 기숙사에 격리된 채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시위가 벌어지는 캠퍼스에서 졸업식을 맞게 된, 대학 생활의 재미를 모르고 졸업하는 불쌍한 세대라는 게 이 기사의 시각이다. 같은 세대의 모든 학생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코호트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읽어볼 만한 글이다.
기사는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미국의 대학생들이 과거보다 더 외롭고, 사회활동에 덜 참여하는(disengaged)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입학한 첫 해 내내 기숙사에 갇혀서 줌을 통해서 수업을 들었고, 마스크를 낀 채 식당에서 밥을 받아와서 방에서 혼자 먹어야 했고, 이런 경험은 이들의 집단적인 심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 대학교들은 이들이 처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늘렸고,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이들을 방 밖으로 데려 나와 각종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줌으로 하는 수업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강의실이 열리고 오프라인 수업이 가능해진 후에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화상으로 참여하려 했고, 심지어 자기가 속한 기숙사에서 열리는 회의에도 화상으로 참가하는 일이 흔하다. 학생 식당은 전통적으로 학생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음식을 받아서 자기 방으로 가져가 혼자 먹는 아이들이 많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은 2019년 졸업생들에 비해 잠을 더 자고, (파티와 같은) 사회 활동은 덜 하고, 혼자 식사하는 데 더 익숙하다고 한다. 불안증이나 학습장애들을 호소하는 비율도 높다. 지난 한 해 동안 일곱 명 중 한 명이 자살을 생각해 봤고, 세 명 중 한 명이 자해를 시도했다고 한다. 오프라인 수업에 덜 나타나는데, 강의실에 와도 선배들에 비해 토론에도 덜 참여한다. 이들은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다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하고, 학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교수나 동료 학생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혼자서 고민하면서 문제를 키우는 일이 많아졌다.
심지어 교내 운동팀에 참여한 학생들도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교내 농구팀을 지도하는 한 코치에 따르면 경기 중에 큰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바람에 경기 중에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자기가 슛을 하겠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고, 어느 선수를 막으라고 외쳐야 하는데 이를 회피하는 것. 학생들에게 제발 좀 경기 중에 소통을 하라고 아무리 사정해도 듣지 않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일제히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고 한다.
그렇게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부와 교류하던 이들이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생각을 같이하는 커뮤니티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온라인에서 포스팅에 좋아요를 잘못 눌렀다가 비난을 받을까 봐 신경을 쓴다. 쏟아지는 주장과 이미지들 속에 깔린 미묘한 메시지를 잘못 이해했다가는 오래 쌓은 친구 관계를 한 번에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이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밀레니얼 이상의 윗세대들은 이들의 시위를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는 Z세대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성세대도 극우 정당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를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중국의 고사성어처럼, 언젠가는 Z세대가 이전 세대를 밀어내고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주류가 될 것이다. 그들의 삶의 경험은 미국 정책에 반영될 것이고, 20년 후의 미국은 지금처럼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나라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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