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오래된 이야기다.

벌써 8년 전인 2016년에 한 팟캐스트에서 사진 한 장의 정체를 취재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사진은 2006년—지금은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다. 사진에 등장한 세 명은 유명인도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한, 평범한 모습의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남녀다.

아직 밈(meme)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지기 전에 밈이 되었던,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라인의 한구석에서는 꽤 유행했던 사진이다. 지극히 평범한 미국 20대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사진이 유명해진 건 누군가 이 사진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면서 사진 속 장면을 묘사하는 그럴 듯한 록표현을 찾아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So not gonna happen"

So not gonna happen. 직역하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정도가 되는 이 표현은 한쪽은 간절하게 바라고 있지만, 다른 쪽은 절대 들어줄 생각이 없을 때 사용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한쪽(대개는 남자)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지만, 다른 쪽(대개는 여자)의 표정과 바디랭귀지를 보면 전혀 관심이 없고, 케미가 생길 가능성이 제로인 상황이다.

물론 그건 사람들이 붙인 해석이다. 젊은 남녀 세 명이 침대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 두 명 중 하나와 (혹은 두 사람과)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것 같은데, 남자의 외모와 여자 두 명의 외모를 비교해 보니 어림도 없어 보인다. 적어도 사진으로 보기에는. 많은 사람이 이 평범한 사진에 반응을 보인 건, 누구나 저런 장면을 목격했거나 저런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이다. 인기를 끄는 밈이 가진 공통점이 그거다. 보는 사람에게서 "나, 저거 무슨 상황인지 알아!"하는 반응을 끌어낸다.

(이미지 출처: Imgur)

그런데 밈에서 보는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 사진 속 두 여성은 옆에 있는 남성을 정말로 무시하고 있는 걸까? 저 남성은 두 명에게 관심이 있었을까? 사진 한 장으로 그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기억하는 상황에 빗대어 전형적인 구도를 상상하고, 거기에 이 사진을 적용해서 해석한다. 스테레오타입과 편견이 그렇게 생긴다.

하지만, 스테레오타입이 스테레오타입인 이유는 그만큼 흔하기 때문이다. 평일 낮 지하철에 앉아서 앞에 선 사람의 다리를 봤는데 블랙야크 등산복 바지를 입고 있다면 굳이 위를 올려다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나이와 얼굴을 짐작할 수 있다. 간혹 틀릴 수도 있지만, 거의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진 속 인물의 정체는 뭘까?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된 지금은 인터넷 탐정 놀이가 어렵지 않지만, 2006년은 그렇지 않았다. 클릭 몇 번으로 사진 속 인물을 찾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다. 지금은 방송이 종료된 Reply All(전체 답장)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터넷 문화를 탐색하는 꽤 흥미로운 팟캐스트여서 나도 자주 듣곤 했다. 이 팟캐스트에서 사진 속 남성의 정체를 취재해 제작한 에피소드가 'Boy in Photo(사진 속 남자)'다. 여기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고, 아래 내용은 약 40분 분량의 에피소드 속 대화를 쉽게 풀어 본 것이다.


사진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자. 이 방은 작은 침실이다. 작은 1인용(Twin size) 침대의 커버를 보면 이 방이 여자의 방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Family Guy)나 게임 콘솔 등을 종합해 보면 전형적인 남자의 방이다. 게다가 가운데 여성 앞에 있는 핸드백을 보면 남의 집에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저 방은 저 남성의 방일까? 대학생일 가능성이 크지만, 틈새를 테이프로 붙인 창문형 에어컨을 보면 대학교 기숙사 같지는 않고 학교 주변의 (월세를 내는) 학생 아파트일 것 같다. 연도는 불명확하다. 남성이 입고 있는 바지를 보면 1990년대일 수도 있는데, 이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탐정 놀이를 시작한 사람들은 사진 속 DVD의 제목으로 2000년대 초에 나온 영화들임을 밝혀냈다. 즉, 2000년대 초중반에 찍힌 사진이다.

남성이 입고 있는 셔츠는 미국의 후터스(Hooters) 레스토랑 로고가 있는데,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라는 지점 이름이 적혀있다. 좀 특이한 지명이지만, 킹오브프러시아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교외 지역이다. 따라서 이 사진 속 아파트는 펜실베이니아주 동부 어디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사진 속 남성에게 '웨인(Way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이름이 흔한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얼굴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딱 웨인 같아 보여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게시판이 이 사진을 둘러싸고 뜨겁게 달아오른 지 몇 시간 만에 사진을 처음 올린 사용자(roxymuzak, 록시)가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는 포스팅을 했다. 이 사진의 출처는 어떤 사람의 개인 웹사이트인데, 그 사이트에 가 보면 같은 날, 같은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있다는 것.

록시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이 사진은 라이언 딜(Ryan Diehl)이라는 남자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것이다. 사진 속 세 명은 그 파티에 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봐도 웨인만 유독 눈에 띄었다. 남자들은 다들 운동선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파티를 연 라이언의 다른 사진을 보면 배에 식스팩이 있는 체격으로,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으로 찍힌 사진도 있었다.

웨인만 다른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외모도 다른데 하필 사진 속 장면은 여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온라인에서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그 남자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었을 것 같고, 어쩌다 가게 된 파티에서는 외톨이로 앉아 있고.... 네티즌 수사대는 그러다가 파티에 참석한 다른 인물들의 이름도 찾아냈다. 그중 탠지(Tansey), 턴불(Turnbull)이라는 사람들은 마이스페이스(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에 인기를 끌던 소셜미디어) 계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행적을 뒤지기 쉬웠고, 그들의 페이지를 보다가 문제의 사진 속 두 여성의 이름을 찾아냈다. 메건(Megan)과 로렐(Laurel).

하지만 온라인 탐정들이 찾아내는 내용은 전부 파티에 참석했던 다른 사람들의 신상 정보였고, 정작 가장 궁금한 웨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필라델피아의 근교 (이미지 출처: Apartments.com)

그러다가 한 사용자가 이런 댓글을 남겼다. "토미 로프터스, 그 이상한 애(That shadeball, Tommy Loftus)." 사람들이 웨인이라고 별명을 붙였던 사진 속 인물의 본명은 토미였다. 토미 로프터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여기까지 밝혀진 정보만으로 사람들은 토미를 좋아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던 이들의 동정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토미는 어수룩하지만 좋은 사람이고, 그런 토미를 놀렸을 것 같은 사진 속 친구들이 "씹XX들(cunts)"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토미 로프터스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온라인 게시판은 죽지 않았다. 팟캐스트 제작진은 거기에 간간이 올라오는 댓글과 페이스북, 구글 검색 등을 통해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커플이 깨지고, 누구는 임신하고, 몇몇은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빠지는 게 보였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의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토미 로프터스의 소식만 찾을 수 없었다.  

2015년 1월. 처음 보는 사용자가 게시판에 나타났다. 이름은 WaynesCrew610. 굳이 해석하면 웨인의 친구들 중 하나라는 의미로 보였다. 물론 웨인은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토미 로프터스에 붙인 별명이었다. 즉, 이 사용자는 그 방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사용자가 남긴 메시지가 심상치 않았다.

"안녕. 너희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내내 우리도 너희를 지켜봤어. 우리는 여기에 우리에 관한 댓글이 달리는 거 알고 있었어. 토미도 알고 있었고. RIP 웨인 (Hello. The whole time you were watching us, we were watching you. We knew about the thread, and so did Tommy. RIP Wayne)"

RIP라면 Rest in Peace, 즉 죽은 이를 추모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토미 로프터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제껏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거였어? 그 사용자는 메시지만 남긴 게 아니었다. 토미 로프터스의 사진을 게시판에 함께 올렸다. 토미 로프터스를 추모하는 포스터였다.

상단에는 생년월일과 사망일(2014년 3월 12일)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있고, 그 밑에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문구가 있었다.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해해야 한다. 닻을 내리지 말고 항해하라. 표류하지 말고 항해하라 (To reach a port, we must sail - sail, not tie at anchor - sail, not drift)."

WaynesCrew610가 남긴 토미 로프터스 추모 포스터 (이미지 출처: Kronkeling)

포스터 하단, 토미 로프터스의 이름 아래에는 Forever In Our Hearts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라는 문구와 함께 Delco's Finest라는 표현이 있었다. Delco(델코)는 펜실베이니아주 동부에 있는 델라웨어 카운티(Delaware County)를 지역 사람들이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첫 사진에서 토미가 입고 있던 셔츠에 쓰여있던 킹오브프러시아가 위치한 곳은 아니지만, 델코도 필라델피아의 근교로 킹오브프러시아와 가깝다. 그러니까 온라인 탐정들이 짐작했던 지역은 틀리지 않았다.

게시판에는 토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토미의 소식을 알린 사용자는 그 게시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추측이 맞아. 토미는 멋진 녀석이었고, 그 녀석의 친구들이 씹XX들이 맞아. 토미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애였고,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자기가 웃음거리가 되는 짓도 기꺼이 했지. 토미는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읽었고, 웃기는 댓글이나 사진이 올라오면 우리에게 전화해서 보라고 했어. 토미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는 사실로 행복했을 게 분명해. 재능 있고, 남들을 챙겨주는 토미가 우리 친구였던 건 우리에게 행운이야."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사용자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면 "온라인에서 보는 걸 모두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사진 속 그 친구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