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미국에 온 지 꽤 오래 지난 후였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던 20대 때만 해도 프랭클린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이라는 사람들이 전부 비슷비슷한 옛날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들 중 유독 튀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프랭클린이었다.

일단 나이만으로 유별나다. 미국이 독립할 당시 프랭클린의 나이는 70세였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20~30대였고,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44세였다. 어떤이의 표현처럼 미국 독립은 "70대에 들어선 노인 하나가 혈기 왕성한 젊은 친구들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셉 듀플레시스가 그린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 (이미지 출처: Wikipedia)

독립을 주도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두 배였다는 사실이 프랭클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가 독립 후 1878년에 열린 제헌의회에 참석했을 때는 81세였지만, 함께 참석한 사람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25세 청년과 동등한 수준의 정신 활동"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70세이던 시절에는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프랭클린을 이해하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의 정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단순히 유전적으로 총명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즉, 평생 유연한 사고를 유지한 결과로 70, 80대 노인이 되어서도 20대의 총명함을 갖게 된 거다. 이런 사람이 건국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 있었다는 사실은 아주,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똑똑해도 30, 40년을 살면서는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고, 프랭클린은 그걸 활용해서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건 절대 과언이 아니다.

이 책, '프랭클린 익스프레스'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미국 독립에 관한 역사책이 아니고, 그렇다고 프랭클린의 전기도 아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로 잘 알려진 저자 에릭 와이너(Eric Weiner)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여행하며 그가 각각의 장소에 머물며 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그의 생각을 추측해 보고, 때로는 그와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물론 프랭클린의 대답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그렇게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줄리 & 줄리아(Julie & Julia, 2009)'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미국에 프랑스 요리를 소개한 전설적인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 524개에 도전한 블로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이 책의 원제도 'Ben & Me'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을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라고 정한 것—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인기작이 있었으니 그렇게 정하는 게 독자들에게 익숙하겠지만—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익스프레스가 아니라 완행열차처럼 진행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관해 공부하려고 읽는 책이 아니라,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을 때 읽는 책이다. 원서의 제목과 내용에서 저자가 프랭클린을 친구처럼 "벤(Ben)"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거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벤자민 프랭클린에 관한 역사적 지식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시작하기 위한 사전 지식은 위에 적은 내용 정도로 충분하다. 하지만 저자 에릭 와이너는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해 이미 제법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로운 일화와 자신의 생각을 잘 섞어 놓았다. 미국인들이 하는 농담 중에 "남자들이 역사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는데, 저자가 정확하게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현재 61세인 와이너는 60세를 앞두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읽다 보면 그가 프랭클린이 80대에 들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책은 자기와 너무나도 다른 태도로 세상을 살았던 프랭클린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프랭클린은 피뢰침을 발명한 걸로 유명하고, 좀 더 아는 사람은 그가 다초점 렌즈와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도 알지만—우리에게 익숙한 '프랭클린 플래너'도 그의 아이디어가 맞다—그가 생각해 낸 것들은 훨씬 더 많다. 책에도 등장하지만 그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마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경험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사람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디어를 18세기 미국에서 실현했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프랭클린의 발명품을 소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떤 태도로 살았기에 남들과 다른 사고를 하게 되었는가에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면,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미지 출처: AP4Liberty)

'프랭클린 익스프레스'에는 저자가 프랭클린의 생각을 부처의 사상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다. 처음 읽으면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가령 프랭클린의 이 말을 들어 보라. "감각적 만족의 과잉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지나친 쾌락만큼 고통을 불러오는 것은 없다. 탐욕과 행복은 서로를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저자에 따르면 부처와 프랭클린은 둘 다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선택했고—프랭클린의 이런 성격은 미국의 독립에도 도움이 되었다—만물의 무상함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불교의 팔정도, 프랭클린의 13개 미덕)을 갖고 있었다. 그가 불교 사상을 접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사고의 높은 경지는 높은 산의 정상과 다르지 않아서, 다들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저자가 프랭클린을 성인으로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와이너는 프랭클린이 평생 흑인 노예를 데리고 살았다는 것, 흑인 여자 노예와 여섯 살짜리 아이를 "구매자가 원하면 따로 팔 수 있다"는 광고를 자기 신문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 독립에 반대한 아들과 사실상 절연했다는 사실들을 통해 그의 인간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을 지적한다. 와이너가 책 전체에 걸쳐 말하려는 것은 프랭클린이 모든 부분에서 뛰어났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지면—항상은 아니어도—언제든지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고, 바꾼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익숙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를 설득하던) 이 시기에 프랭클린의 나이가 무척 많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더 어렸더라면 프랑스에서 이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프랭클린은 너무 풋풋하고 오만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기만의 방식과 습관을 구축했고, 덕분에 자기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알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프랭클린이라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다. 따라서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프랭클린과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장담한다. 🦦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독자 여러분께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평소처럼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목요일(26일) 오전에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응모하신 분들은 이메일을 꼭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