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의 탄생 ④
• 댓글 3개 보기앞의 글에서 소개한 윌리엄 B. 라일리가 "기독교 근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그의 입장,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오는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 반진화론, 반유대주의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정치적 입장은 1920년 당시 세계를 보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시각을 대표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사용한 방법론까지 지금의 미국 정치를 닮았다.
가령, 라일리의 반유대주의를 보자. 1903년에 등장한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게 있다. 이 문서는 유대인이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담고 있지만—189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열린 제1차 시온주의자 회의에서 발표된, 14인의 유대인 장로들의 의결문이라는 형식이다—사실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조문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진위를 알 수 없었고, 21세기의 허위 정보가 유통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퍼졌다. (더 흥미로운 건 라일리를 비롯한 당시 반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유대인이 "미디어와 경제를 통제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미국의 많은 보수 개신교 신자들이 그렇게 믿는다.)
'시온 장로 의정서'를 미국에 퍼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Henry Ford)였다. 포드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당시 재벌이었지만, 유대인 공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자신의 책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포드의 반유대주의를 언급하기도 했고, 1938년에는 독일에서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을 포드에게 주기도 했다. 포드는 사비를 들여 '시온 장로 의정서' 50만 부를 찍어 미국에 뿌렸다.

하지만 윌리엄 라일리가 가장 열심히 싸운 것은 모더니즘이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이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를 바꾸는 것을 보면서, 그 진행 방향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라일리가 보기에 그렇게 미국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사상이 다윈의 진화론이었기 때문에 그는 진화론의 확산을 막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유대인과 소련의 공산주의자, 그리고 다윈주의자들이 비밀리에 연합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었다.)
라일리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모아 1923년에 반진화론연대(Anti-Evolution League)를 결성하고, 공립학교에서 생물학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여러 주에서 추진했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어 몇 개 주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대표적인 법이 남부 테네시주에서 1925년에 통과된 버틀러법(Butler Act)이었다.
이 법이 통과되자 제일 먼저 문제삼은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가장 사나운 로펌'에서 소개한 미국 시민 자유 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었다. ACLU가 결성된 것이 1920년이었으니, 진화론에 반대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로서는 낯선—그러나 이후로 100년 넘게 싸우게 될—상대를 만난 것이다.
원숭이 재판
ACLU가 문제가 있는 법을 폐지하는 방법은 적절한 피고를 찾아 재판을 구성하는 것이다. 테네시주에서는 버틀러법을 통과시켰지만, 아직 그 법을 어겼다고 고발당한 사람이 없었다. ACLU의 변호사들은 생물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칠 교사를 찾다가 테네시주 데이튼(Dayton)이라는 도시에서 존 스콥스(John Scopes)라는 젊은 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스콥스는 공립학교의 풋볼 코치였지만, 학교에서 필요할 때는 임시교사로 생물학을 가르치곤 했고, 진화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ACLU와 상의한 후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고, 학생들의 증언에 따라 스콥스는 버틀러법을 어겼다고 기소되었다.
사실 이 재판은 처음부터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ACLU가 스콥스의 변호를 맡기로 했지만, 이 재판을 처음 계획한 것은 데이튼의 사업가 조지 래플리에(George Rappleyea)였다. 그는 데이튼에서 진화론을 두고 재판이 벌어지면 아무도 모르는 이 작은 도시가 유명해질 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온 취재진으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래플리에는 이 재판을 흥행시키기 위해 영국의 SF 작가 H.G. 웰즈(Wells)에게 변호팀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권했지만, (변호사가 아닌) 웰즈가 거절했다.
사람들은 스콥스 재판(Scopes Trial)이 세기의 재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인류가 정말로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믿느냐"는 기독교인들의 조롱이 담긴 "원숭이 재판(Monkey Tria)"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재판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20세기 초는 라디오의 보급으로 미디어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고, 테네시의 작은 마을에 찾아든 기자들은 라디오를 통해 재판 내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ACLU가 스콥스를 변호하기 위해 데려온 변호사는 당시 미국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서 유명해진 스타 변호사 클래런스 수어드 대로우(Clarence Seward Darrow)였다. 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ACLU에서 대로우까지 영입해서 준비하자 반진화론 진영에서는 검사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윌리엄 B. 라일리는 직접 나서서 원고 측을 돕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을 영입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을 뿐 아니라,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세 번(1896, 1900, 1908년)이나 출마했고,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 시절에는 국무장관을 지냈던 인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라일리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연설 솜씨로 유명했던 브라이언을 데려온 이유는 분명했다. 온 국민이 귀를 기울이게 될 재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를 대표해서 진화론을 믿는 세속주의자들의 논리를 깨라는 것.
양측이 이렇게 유명한 변호사들로 진용을 갖춰 진화론을 공격,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 재판의 쟁점은 스콥스가 수업에서 가르친 내용이 테네시주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버틀러법에 저촉되느냐를 가리는 것이었지, 진화론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결정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콥스와 ACLU가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았고, 이들은 패소할 경우 상급 법원으로 이 사건을 가져갈 의도였다.

피고측 대로우 변호사는 재판 중에 진화론이 과학적인 이론임을 증명하기 위해 저명한 과학자들을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했지만, 재판을 담당한 존 롤스턴(John T. Raulston) 판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재판이 진화론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지만, 판사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 자리로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재판이 벌어지는 곳이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이 강한 테네시주였기 때문에 주민 중에서 골라야 하는 배심원들도 피고 측에 불리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대로우 변호사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린다. 과학자들을 증인으로 불러서 진화론을 설명하게 하지 못한다면 성경 전문가를 증인석에 앉혀서 신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름 아닌 원고 측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변호인을 지목한 것이다. 상대측 변호사를 증인석에 앉히겠다는 건 황당한 발상이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브라이언이 그런 제안을 승낙할 거이냐, 였다.
브라이언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독실한 신자일 뿐 아니라, 대중 연설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로우 변호사의 주장을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증인석에 앉은 브라이언은 "성경에 나오는 얘기가 문자 그대로(literally) 사실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대로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건 큰 실수였다. 성경은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여러 문서를 모은 것이기 때문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도 많고, 성경에서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미스터리인 부분도 많다. 가령,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가 낳은 자식안 가인이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 여성은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그 부모는 누구일까? 물론 신학자들은 다양한 가설을 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합의되지 않은 가설일 뿐, 증인석에 앉아 사납게 추궁하는 상대편 변호사에게 답하기에는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심지어 근본주의자 윌리엄 B. 라일리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았다. 라일리는 창세기에서 온 우주가 6일 만에 창조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말하는 "하루"는 사실은 오늘날의 24시간이 아니라 수천에서 수십억 년에 해당하는 긴 시대를 의미한다는 날-시대 창조론(Day-age creationism)을 주장했다. 하지만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일종의 신앙 고백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브라이언 역시 대로우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가 자가당착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스콥스와 ACLU의 변호사들은 패했다. 배심원은 스콥스가 현행법을 어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스콥스 재판은 법정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여론전에서의 승리가 중요한 재판이었다. 8일간 이어진 이 재판을 신문과 라디오로 전해 들은 사람들은 스콥스와 대로우의 주장이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뇨병을 앓고 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무더운 날씨에 8일 동안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건강이 악화되어 재판이 끝난 후 며칠 만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그가 "재판으로 크게 상심해서 죽었다"고 했을 만큼 이기고도 진 재판이었다.
더 중요한 건,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근본주의 기독교의 실체를 미국인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20세기에 들어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을 완전히 부정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말을, 그것도 세 번씩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들은 미국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비록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비과학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국에 퍼뜨리게 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대결해서 싸우자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을 잃은 근본주의자들은 이후로 50년 동안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하위문화로 남아 결속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반세기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었다.
'보수 개신교의 탄생 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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