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길머가 기자와 함께 만난 빈스 길머는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온갖 상호모순이 한 사람 안에 들어 있었다. 대화하다 보면 완전히 정상인 것처럼 보였고, 상대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럴 때 하는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가령, 아내와 이혼하게 된 사연이 그렇다. 사람들은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아내를 떠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빈스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모든 부부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었고, 결국 해결하지 못해 헤어지게 된 것뿐이었다. 나중에 기자가 캐런에게 확인해 봐도 빈스의 설명은 사실이었다.

빈스는 그렇게 완전히 정상적으로 대화하다가 갑자기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쉬운 단어도 잊었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이상하게 찡그리기도 했는데, 그런 표정은 그가 하는 말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집게손가락으로 갑자기 턱이나 이마를 만지기도 했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버지니아주의 한 교도소 내부
이미지 출처: ACLU

무엇보다 빈스는 손을 계속 움직였다. 특히 왼손을 많이 움직였는데, 엄지손가락으로 움켜쥔 다른 손가락들을 끊임없이 문질렀다. 그 부분의 피부가 빨갛게 된 것을 보면 평소에도 그러는 듯했다. 빈스는 두 팔로 자기 가슴을 꼭 감싸고 있었고, 말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질문이 뭐였죠?"하고 묻곤 했다.

기자는 빈스의 이빨이 많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빈스의 설명에 따르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자기가 폭력적으로 되기 때문에 다른 재소자와 싸움을 벌이는 일이 잦고, 게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교도관들이 와서 때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빨이 빠졌다고 했다. 기자는 빈스의 주장이 사실인지 교도소 측에 확인했지만, 교도 행정당국은 내부 방침에 따라 재소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면접실에서 네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벤저민은 빈스의 정신 병력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세로토닌 결핍 때문에 폭력적으로 된다는 빈스의 말에 벤저민은 "세로토닌 결핍을 겪는 뇌와 우울증을 앓는 뇌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빈스는 말을 더듬으며 힘들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불안증(anxiety)을 겪는데, 그 충격은 "전기 해파리(electrical jellyfish)"가 쏘는 것 같다고 했다. (전기 해파리라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빈스는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이 표현을 쓴 듯했다.)

그렇게 설명한 후에 빈스가 물었다. "어, 질문이 뭐였죠?"

빈스는 기자와 벤저민에게 '간헐적 정신운동성 초조(intermittent psychomotor agitation)'라는 증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팔과 얼굴이 움직이는 증상인데, 간헐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이 일부러 정신이상인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꾸며낸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했다. 기자가 확인해 보니 렉사프로(Lexapro, 빈스가 처방을 원하는 SSRI 약품)의 설명서에 작은 글씨로 그 증상이 적혀있었다.

기자는 빈스가 경찰이 눈에 보일 때만 그런 행동을 한다고 주장한 형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감시카메라에 찍힌 빈스의 행동을 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빈스는 그래서 '간헐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 증상은 경찰뿐 아니라 교도소 내 의료진과 이야기할 때도 나타난다고 했다. 경찰이나 의사를 보면 긴장하게 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증상이 악화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것과 관련하여, 빈스는 아버지를 죽이려고 계획한 게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가 죽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은 과거에도 아버지를 보살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살해되던 시점에 알래스카로 떠나려던 편도 비행기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빈스는 그 비행기표에 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 비행기표 이야기는 직원인 테리가 경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지만, 정작 재판 중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제까지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확인하기로 한 기자는 빈스가 아버지가 입원했던 병원에 지불하지 않은 입원비에 대해 물었다. 빈스는 돈을 내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자기는 그 비용을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는다고 해도 어차피 내야 하는 돈이었다.

하지만 빈스는 왜 입원비를 내지 않고 계속 빚이 쌓이게 두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살해한 후에 그가 했던 행동에 관해서 빈스는 자기를 변호하지 못했다. 기자가 "아버지를 살해한 후 일주일 동안 당신의 행동은 아주 침착한(controlled, 통제된) 모습이었다"고 하자, 빈스는 살해 후 잠깐 다시 렉사프로를 복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빈스 길머가 복용하던 렉사프로
이미지 출처: Recovered.org

그 말을 들은 기자가 물었다. "렉사프로를 복용하자마자 정신이 안정되고 평소처럼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왜 경찰에 자수하지 않았죠? 정신병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범행을 숨기려 한 이유는 뭡니까?" 빈스는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답했다.

나중에 기자가 교도소 측과 이야기를 나눠 본 바에 따르면 빈스가 벤저민과 기자 앞에서 보인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 빈스는 평소에도 그런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증상은 몇 년 동안 점점 심해졌고,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면담이 끝나가자, 빈스는 마지막 남은 10~15분 동안 두 사람에게, 특히 벤저민에게 눈물을 흘리며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자신은 의사로 살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줬는데, 이제 자신도 그런 도움을 한 번 받을 수는 없겠느냐고 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빈스와의 긴 면담을 마치고 나온 벤저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관찰한 것으로 보면 빈스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요. 저는 엄격하게 관찰했고, (그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로 접근하려고 애썼습니다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기자는 그럼 아버지를 죽인 게 계획된 범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확인했다. 벤저민은 계획된 범행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기자가 줄곧 빈스의 정신 질환 주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음을 아는 벤저민은 기자의 의견을 물었다. 빈스를 직접 만난 후 기자도 생각이 바뀌었음을 시인했다. 벤저민은 SSRI 결핍으로 비롯된 비슷한 증상의 사례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만약 빈스가 정말로 정신병을 앓고 있었으면, 비록 그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일급 살인죄는 잘못된 판결이다. 하지만 벤저민은 이 분야의 전문의도, 변호사도 아닌, 시골 클리닉에서 일하는 평범한 의사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빈스의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제가 뭔가를 해야 하는 걸까요?" 이 말을 들은 기자가 이렇게 답했다. "방금 전에 빈스가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했잖아요. 선생님은 도와줄 수 있다고요." 벤저민은 자기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3주 후, 벤저민은 빈스가 수감된 교도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친구인 스티브 부이(Steve Buie)를 데리고 갔다. 스티브는 벤저민과 달리, 빈스 같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psychiatrist)였다. 벤저민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스티브는 그곳에서 한 시간 동안 빈스를 면담했다.

빈스가 면담실을 나간 후 벤저민은 스티브의 생각을 물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스티브는 벤저민의 가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SSRI 금단증상을 겪는 환자들을 많이 봐 왔던 스티브가 보기에 빈스는 그걸 겪는 사람이 아니었다. 벤저민의 또 다른 가설인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뇌 손상' 가능성에도 스티브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환자는 빈스처럼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벤저민이 완전히 착각한 걸까? 그렇지는 않았다. 정신과 의사인 스티브가 보기에도 빈스는 분명히 정신 질환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SSRI 금단증상이나 뇌 손상이 원인이 아니라고 해서 증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빈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교도소를 나서던 스티브는 함께 걷고 있던 벤저민에게 문득 이렇게 물었다.

"이거, 혹시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 아닐까?"


마지막 편, '닥터 길머의 수수께끼 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