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길머의 수수께끼 ③
• 댓글 1개 보기빈스 길머 사건을 처음 취재했던 기자 매트 레이킨(Matt Lakin)에 따르면, 빈스는 당시 '내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My brain is not working right)'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레이킨은 살인 직후 전화와 대면 인터뷰로 빈스를 만났다. 그는 빈스에게서 "미친 사람"이라는 인상은 받지 않았지만, 약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망치질하는 것처럼 앞뒤로 흔들곤 했는데, 그 행동을 기자인 자기에게 보여주려고 연출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게다가 레이킨 기자가 빈스의 이야기에서 맞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면 그는 갑자기 감정적이 되어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가 원래 감정기복이 심한 게 아니라면, 기자의 질문을 답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기자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빈스의 구속과 재판 과정에서도 그가 정말로 정신질환을 앓는 것인지, 그런 시늉을 교묘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마이크 마틴 형사도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빈스를 면밀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그런데 빈스는 경찰관이 다가오면 머리를 흔들다가, 경찰관이 사라지면 그 행동을 멈췄다. 경찰은 이런 변화를 구치소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서 다른 재소자들과 있을 때는 멀쩡해 보였지만, 마이크가 실험 삼아 보낸 경찰관이 걸어오는 걸 보는 순간 머리를 흔들었다. 마틴 형사는 빈스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경찰은 심리학자가 아니다. 그럼, 전문가의 눈에는 어땠을까? 빈스를 관찰한 심리학자 제프리 페익스(Jeffrey Feix)는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빈스는 말하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였으며, 서 있을 때도 구부정한 자세였습니다. 간간이 방안을 돌아다녔고, 말할 때는 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아주 극적이었고, 우리가 아는 불안증이나 정신병적 장애(psychotic disorders)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증상을 측정하는 사람과 치료팀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증상을 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범행을 저질렀을 당시, 그는 법적으로 정신이 온전했다(sane)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다른 심리학자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빈스는 "회피적이고, 연극적이며, (상대를) 조종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치소에서 그를 만나는 의사들도 빈스의 행동이 다른 의도를 가진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의 판단도 빈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재판은 더욱 불리하게 돌아갔다. 재판정에서 그의 설명을 듣고, 그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한 배심원에 따르면, 빈스는 증언할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자기 변호사와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침착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빈스를 기소한 검사는 빈스가 범행을 계획할 때 이미 재판에서 자기를 어떻게 변호할지 준비했다고 믿는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의 신원을 감추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고, 계획대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검찰에서 확보한 또 다른 증거도 있었다. 이 증거물은 빈스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그 안에는 빈스가 "내가 좋은 의사라는 사실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대목과 그가 (노스캐롤라이나주 대신) 형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테네시주에서 재판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죽인 곳이 노스캐롤라이나주라고 했다가, 버지니아주라고 말을 바꿨다가, 다시 테네시주에서 살해했다고 말을 바꿨다.

심지어 빈스는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자기 변호사를 해고하고 자기가 직접 변호하겠다고 했다. 종신형을 받게 될 위험이 있는 살인사건 재판에서 법률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스스로 변호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배심원들에게 제정신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려고 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빈스의 변호는 형편없었다. 그의 주장은 황당했고, 한 문장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검사의 이의 제기가 튀어나오곤 했다. 기자에 따르면 "법정 드라마만 봤어도 하지 않았을" 실수로 가득했다. 한번은 옛 여자 친구를 증인석에 앉히고는 "당신 기억에 제가 누군가를 해치거나 죽인 적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여자 친구는 "당신 아버지를 죽였죠"라고 답했다.
그 재판을 본 어느 변호사는 "버터를 바르는 칼로 자살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빈스는 무려 두 시간 가까이 횡설수설 변론을 늘어놓았다. 그는 구치소에 들어온 후로 SSRI(세로토닌 결핍 치료제)를 받을 수 없었다며, 그 결과 자기가 지금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검사가 "변호사 없이 나홀로 재판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빈스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지금은 정신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모든 변론을 들은 배심원들은 약 한 시간에 걸친 심리를 마치고 빈스 길머에게 1급 살인 유죄 평결을 내렸다. 그가 아버지를 죽인 것은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이었다는 결론이었다. 재판을 주재한 판사도 재판 후에 열린 한 청문회에서 빈스가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피고인은 연기를 한 후에 배심원들의 반응을 보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 정상적인 행동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게 아주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판사는 빈스에 '감형의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고, 빈스는 버지니아주 윌렌스 리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경찰과 의료진, 법원이 모두 빈스가 정신질환을 연기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모두 듣고도 그 결론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또 다른 닥터 길머, 벤저민이었다. 그는 재판 결과에 회의적이었다.
벤저민은 빈스가 했던 것처럼 SSRI 약물을 갑자기 끊었을 때 생기는 금단 증상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해 봤고, 그 과정에서 그 약을 끊은 후 폭력적으로 행동하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뇌를 심하게 다친 후에 성격이 급변한 사례를 찾았고, 교통사고 후 빈스의 뇌를 촬영한 기록을 구해서 두 명의 방사선과 전문의를 찾아 의견을 들었다.
교도소에 있는 빈스에게 편지도 썼다. 몇 주 후에 받은 답장에는 빈스가 쓴 SSRI 금단 증상에 관한 정보만 몇 페이지였다. 문서 뒤에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이 쓴 것 같은, 알아보기 힘든 손 글씨가 가득했다. 그걸 본 벤저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교도소에 들어간 지 6년이 지났는데, 행동이 변하지 않았어요." 경찰과 의사, 판사, 그리고 배심원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가 정말 재판을 위해 정신질환을 연기한 것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그 연기를 멈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시늉에 불과했다면 그걸 지금 계속해 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벤저민이 빈스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빈스가 정신질환을 연기했다는 결론에 동의하기 힘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걸 알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벤저민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결국 벤저민은 기자와 함께 교도소에 있는 빈스를 만나 보기로 했다. 살인범 빈스와의 첫 대면이었다.

교도소에서 면회 절차를 밟던 벤저민은 너무 긴장해서 의자에 잠시 앉아야 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시신을 훼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면회실에는 다른 재소자들이 함께 들어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잠시 후 빈스가 들어왔다. 50세의 나이였지만, 노인처럼 보였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자와 벤저민은 빈스와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을 물어봤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자판기를 계속 오가며 빈스에게 페페로니가 든 피자 버거 두 개, 체다 치즈 버거 두 개, 콜라 두 캔과 각종 빵과 과자를 사다 주었다.
빈스는 교도소에 수감된 후로 재소자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한다며 소송을 걸고, 긴급 청문회를 요청하는 등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제출한 서류만도 어마어마했다. 한 마디로 골칫거리였다. 그는 계속해서 SSRI 금단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SSRI 약품인 셀렉사(Celexa) 60~80밀리그램을 정제 형태로 복용하는 것만 허락된다면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기자가 다른 재소자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빈스는 자기의 증상을 자가 진단하고 필요한 약을 요청하는데 교도소 의사가 듣지 않으면 화를 내며 공격적으로 되었고, 교도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자기 뇌에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물론 교도소에서 그렇게 행동해서 좋을 리 없다. 그렇게 해봤자 손해는 빈스 자신에게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도, 배심원도, 판사도 보고 있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6년 동안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닥터 길머의 수수께끼 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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