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톰슨의 경고 ②
• 댓글 남기기도로시 톰슨은 비엔나에 머물던 1920년대 초부터 반유대주의적인 인종주의를 볼 수 있었고, 독일에서 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나치당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이미 인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치를 직접 목격하게 된 것은 1927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톰슨이 필라델피아 퍼블릭 레저의 유럽 총괄 특파원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다른 미국 매체인 뉴욕 이브닝 포스트(New York Evening Post)가 톰슨에게 베를린 지국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톰슨은 토마스 만(Thomas Mann),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같은—훗날 독일을 떠나게 될—독일 작가들과 가까워졌고, 크리스타 빈슬로(Christa Winsloe)와는 잠시 연인 사이였다고도 한다. 톰슨은 취재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여행을 위해 비자를 위조하거나, 병원에 들어가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간호사로 변장하는 등의 행동은 지금은 용납되지 않지만, 톰슨은 어쨌거나 남들이 못하는 취재를 해내는 기자였다.

다른 기자들이 못한 아돌프 히틀러와의 인터뷰를 도로시 톰슨이 성사시킨 것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히틀러와 인터뷰를 했던 1931년은 톰슨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와 결혼 생활을 하던 때였다. 톰슨은 필요하다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아내'라는 후광도 사용했을 사람이라는 게 사람들의 평가다.
참고로, 톰슨은 세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싱클레어 루이스였다. 이들의 결혼은 1928부터 1942년까지 이어졌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1930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톰슨을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 없는 저널리스트 아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배우자의 유명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톰슨이 아니라, 남편인 루이스였다고 한다.
톰슨은 히틀러를 인터뷰하기 위해 무려 7년을 시도했다고 한다. 히틀러와의 만남은 그가 온갖 아는 사람들을 다 동원하고, 압력을 넣은 결과였다.
힘들게 만난 히틀러는 아주 실망스러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성공할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다(This man is not going anywhere)"는 게 도로시 톰슨의 진단이었다. 톰슨은 히틀러가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자세도 어정쩡하고, "아주 전형적인 보잘것없는 남자(the very prototype of the little man)"였고, 동성애자일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 대목은 1930년대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감안해서 읽어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톰슨의 눈에 히틀러는 대단한 일을 해낼 지도자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과적으로 톰슨의 분석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지만 도로시 톰슨에 관한 글을 쓴 데보라 프리델(Deborah Friedell)은 톰슨의 인터뷰 기사 자체보다, 누구보다 먼저 히틀러에 주목한 그의 기자로서의 감각, 혹은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리델은 톰슨이 히틀러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이유로 그가 히틀러를 만나기에 앞서 그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를 읽었던 것을 든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으로 유명한데, 프리델에 따르면 톰슨은 그 책에서 나오는 황당한 주장에 충격을 받았고, 인터뷰 중에 히틀러가 '먼저 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한 후에 헌법을 무효화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진지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톰슨은 미국으로 돌아가 인터뷰를 기사와 책으로 출간했다.
그렇게 해서 1932년에 나온 책이 도로시 톰슨의 대표작, 'I Saw Hitler (나는 히틀러를 보았다)'였다.

책이 출간된 후로 독일의 상황은 빠르게 나빠졌다. 1933년 1월에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한 직후, 잘 알려진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이 발생했고, 히틀러는 이를 계기로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켜 사실상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고 1934년에 힌데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히틀러는 총리직과 대통령직을 통합하는 총통(Führer)이 된다. 명실상부한 독재자가 된 것이다.
도로시 톰슨이 독일로 돌아온 것이 바로 그때, 1934년이다. 이 시점이면 나치는 총통을 좋지 않게 묘사한 톰슨의 인터뷰 기사와 책을 잘 알고 있었고, 톰슨이 독일에 오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독일의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은 톰슨이 독일을 모독했기 때문에 체류를 허가할 수 없다며 24시간 안에 독일을 나가라는 추방 명령을 내린다. 톰슨은 다음 날 아침 파리행 기차를 탔고, 베를린에 체류하는 외국 기자들은 톰슨을 배웅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독일에서 추방당한 사건은 도로시 톰슨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미 유명한 기자였고, 남편도 유명한 작가였지만, 히틀러에 대한 비판적인 책을 쓴 후에 독일에서 쫓겨나자 '히틀러에게 대항한 기자'라는 이미지가 붙은 것이다. 톰슨은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열었고, 과거 미국에서 여성 저자가 누려 본 적이 없는 대우를 받았다.
헤럴드 트리뷴(Herald Tribune)에서는 톰슨에게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 칼럼의 연재를 제안했다고 한다. 뉴스는 주로 남자들이 읽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부들은 세상일을 알고 싶으면 남편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신문사에는 '여성이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여성 기자에게서 뉴스를 듣는' 칼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 아이디어는 곧 포기했지만, 1930년대 여성의 지위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유럽에 퍼지고 있는 파시즘을 경고한 건 도로시 톰슨만이 아니었다. 톰슨의 남편인 싱클레어 루이스가 1935년에 발표한 소설 'It Can't Happen Here (여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로 번역)'는 대체역사물로, "미국에도 유럽처럼 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분노한 유권자들에게 "미국을 다시 자랑스럽고 번성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해서 권력을 잡는데, 2016년과 2024년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는 구호로 당선된 트럼프와 비교되어서 소설이 가정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싱클레어 루이스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아내 도로시 톰슨의 생각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소설의 주제가 톰슨이 가장 잘 아는 주제이니만큼 사람들은 톰슨의 주장이 남편의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가령,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속에서 파시스트로 등장하는 정치인 버질리어스 "버즈" 윈드립은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라는 대목을 봐도 그렇다. 톰슨은 유럽의 파시즘이 미국에 건너올 것을 크게 경계했는데, 애초에 그가 미국에서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민주당 소속의 프랭클린 루즈벨트(FDR)였다. 당시 루즈벨트는 대공황에 빠져있던 미국의 경제를 깨우기 위해 뉴딜(New Deal)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미국인들을 일터로 내보내려고 애쓰며 사회보장제도를 추진했는데, 그의 정책이 히틀러가 사용하던 플레이북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행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모습이 히틀러가 의회를 무력화하던 모습과 닮아 보였던 것.
결과적으로 도로시 톰슨의 루즈벨트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지만, 톰슨의 우려 자체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 내에서 히틀러를 지지하는 자생적 나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1934년 뉴욕시 한복판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개최된 미국 나치의 집회였다. 최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극우 세력이 나치 경례를 스스럼 없이 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나치를 내놓고 찬양하는 일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그건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나치와 싸운 이후의 일이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는 히틀러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시 톰슨이 걱정하고, 경고한 게 바로 그 사람들의 정치적 세력화였다. 톰슨은 히틀러가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어떻게 의회와 헌법을 무력화했는지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치가 뿌리를 내리려는 기색이 뚜렷해지자, 톰슨은 글을 통해서만 이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나치 집회가 열리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가서 관중석 맨 앞줄에 앉아서 연사가 말할 때마다 큰 소리로 웃거나 "Nonsense(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은 조롱을 퍼부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톰슨의 안전을 우려한 경찰이 개입해야 했다.
하지만 대형 언론사의 사주들이 이런 도로시 톰슨의 주장을 불안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로시 톰슨의 경고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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