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변하는 걸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20대 때만 해도 결혼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짝을 찾으면 되는 거였다. 지금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만약 30년, 아니 2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내가 가진 조건으로 결혼할 확률은—냉정하게 평가해서—10%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내 또래 남자들의 대부분은 "짝을 만나" 결혼했다. 그렇다면 지난 20, 3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회가 혼인율, 출생률을 분석하고 걱정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누군가를 만나 사귀는 것 자체가 훨씬 힘들어졌다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 20, 30대 중에는 결혼은 물론이고, 사귀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사람이 많다.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출생률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런 의미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유독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인 게 사실이다. 최근 한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포스트가 있다. 그 포스트는 다른 사용자가 요즘 상황을 개탄하는 포스팅에 대답하는 형태로 쓴 것이다. 먼저 지금의 남자, 여자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포스트를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요즘 사람들은 무슨 문제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는 걸까. 남자들은 여자들을 믿지 않고, 여자들은 더 이상 남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문제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출처: X)

Domo(@dapperdomo)라는 흑인 남성 사용자는 위의 질문을 캡처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의 답변은 1만 4,000개의 '좋아요'를 받았고, 7,000번 넘게 공유되었다. 여기에서 직접 읽을 수 있고, 이를 쉽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제 남자들은 여자를 사귀고 싶으면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아하기 힘든 남자들이 많다. 이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인류 역사에서 남자가 아내를 얻기 위해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했던 게 몇 세대나 되었을까? 아마 지금 남자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첫 세대일 거다. 그러니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게 만드는 법을 모르는 거다.

지금부터 2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남편이 없는 (혹은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는 은행 계좌를 열지도 못했다. 3, 4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는 집을 살 수도, 직업을 얻을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즉,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니 여자는 남자가 필요했다. 여자가 살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했고, 그러니 좋든 싫든 남자 하나와 살아야 했던 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자들은 남자 근처에 가지 않고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 수 있다. 아니, 남자가 없으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여자들이 많다.

당신의 할아버지는 끔찍한 남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었다고 해봤자, 정서적으로 닫혀 있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을 거다. 심지어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양쪽에서 모두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그게 불가능한 세상이고, 솔직히 말해 불가능해야 하는 게 맞다.

많은 남자들이 자기가 자란 가정에서 본 것과 같은 관계를 바라지만, 자기가 보고 자란 환경에서 여자들이 과연 행복했는가는 묻지 않는다. 정답은, 많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보면, 여자들은 당신 같은 남자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들은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했던 것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뭔가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보여 줄 게 없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


결혼이 얼마나 여성에게 끔찍할 만큼 불리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여러 세대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는 나라들도 많다. 아래는 1997년에 인도에서 나온 영화의 줄거리다. "라자는 말라를 성폭행하고, 법원은 두 사람이 결혼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다. 라자의 가족은 말라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살해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말라는 선한 행동으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다."

온라인에서는 이걸 로맨스 영화로 분류하고 있다. 이게 정말로 극단적인 사례일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례였을 거다.

위의 포스트를 소개한 레딧에 달린 댓글에서 사람들은 자기 어머니, 할머니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네 할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계속 따라다녔지. 자꾸 만나자고 하는데, 싫다고 해도 도무지 듣지 않는 거야. 그래서 결국 승낙했지"라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고, "내 아버지는 엄마가 만나주겠다고 할 때까지 스토킹을 했다고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도 낯선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노력을 강조하는 속담이지만, 항상 연애에 사용되어 왔다.

다행히 이런 세상은 끝났거나, 빠르게 끝나고 있다. 하지만 위의 포스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 남자들은 여자가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한 세상에서 결혼한 부모를 보며 자기의 역할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학습했다.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순간, 내 어머니, 할머니가 했던 고생을 고스란히 반복할 게 보이는 거다.


짧은 글을 마치면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레딧 포스트에 달린 댓글이다.

"내 어머니는 17살이던 1969년에 나를 임신하셨다. 어머니는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도, 신용 카드를 만들 수도 없었다. 1974년에 미국의 제도가 바뀔 때까지 여자는 남자의 도움이 없이 집을 살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끔찍한 남자들을 만났다. 어머니를 학대하는 남자들이었지만, 남자에 의지하지 않고는 집에 전기, 수도를 놓는 것처럼 기본적인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까지 나는 부부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내 양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에게 관계 속에서 사랑과 평등이 뭔지 가르쳐 주었다. 그분은 내게 "진짜 사나이(real man)"가 아닌, 정서적으로 민감하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어떤 사람이지 보여줬다.

나는 엄마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혼자서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렇게 강인한 여성 밑에서 자란 나는 앤드류 테이트(Andrew Tate),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여성들이 만나주지 않아 솔로로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에서 "비자발적"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비자발적이라는 건 내 어머니가 어린 내가 잠을 잘 집, 먹을 음식, 입을 옷이 필요해서 끔찍한 남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1974년 이후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남자들, 여성 혐오가 흔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남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그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는다. 나의 롤 모델은 나를 낳지 않은 나의 양아버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이 40에 자기가 인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된 건 비자발적인 게 아니다. 파이트클럽 따위는 집어치우고, 당신 옷 빨래나 하라. 필요하면 반려견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