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집 난 카세트테이프 ①
• 댓글 남기기문화가 전파되는 방식은 워낙 다양해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미국에서 만난 몽골 사람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걸 처음 보고 놀란 후에야 그렇게 많은 몽골인이 한국을 찾아오고, 한국에 머물면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고려말 문신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들어와 한반도에서 키우면서 면직물이 퍼졌다고 배웠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백제 때 이미 면직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몇 년 전에 나왔다. 하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면화가 들어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간혹 정부가 나서서 특정 문화를 막아도 여러 통로로 유입되는 건, 정부의 금지나 검열이라는 것이 마치 어설프게 만들어진 진공상태와 같아서 언제, 어느 구멍에서 공기가 새어 들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금지하던 1980년대에도 고등학생들 사이에는 일본 패션과 음악이 퍼지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그게 어떻게 들어왔는지 일일이 파악하지도 못했고, 파악한다고 한들 막을 능력도 없었다.
비슷한 사례가 중국에도 있었다.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이 그랬고 지금의 북한도 그러는 것처럼, 중국 정부도 서구의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심지어 1990년대 초까지도 중국에서 서구의 팝송을 듣는 게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생긴 틈으로 서구의 대중음악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고, 중국 정부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이 글은 그 틈에 관한 이야기다. 위키피디아에서 dakou(打口, 다코우)를 찾아보면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고,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뉴욕 팟캐스트 라디오랩(Radiolab)이 2021년에 이를 잘 정리한 에피소드를 만들었고, 영국 리버풀 대학교에서 중국학을 가르치는 펭 레이 교수가 프랑스의 중국 연구소(CEFC)와 대담한 영상에서 자료 화면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래는 그렇게 알려진 내용을 설명과 함께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는 1963년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하오팡이라는 남자의 성장기로 시작한다. 지금은 60대에 들어선 하오팡은 당시 중국인으로서는 아주 전형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가난한 시골에서는 흙벽에 붙일 벽지가 없어 신문지를 붙였고,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벽에 붙어 있는 신문에서 오래된 기사를 읽었다.
하오팡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그의 어머니가 중국의 인민해방군에서 운영하는 가무단(歌舞團)에서 활동했다고 하니, 아마 그 재능을 타고났던 것 같다. 군에서 가무단을 운영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 예술은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있었고, 사실상 프로파간다의 수단이었다.
서구에서는 흔히 '중국 오페라(Chinese opera)'라고 부르는 중국식 연극이 있다. 경극(京劇, Peking opera)이라 부르는 전통극은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공연이 금지되었고, 중국 정부는 공산당 이념을 선전하는 모범극 8편만 허용하고 있었다. 그 8편의 모범극에 나오는 곡들이 일반인이 합법적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고 한다. 하오팡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1984년, 대학교를 졸업한 하오팡은 후베이성의 대도시 우한으로 이사해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극장을 발견했다. 극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작은 가게 같은 공간에 커튼을 치고 불법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공간에서 관객들은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오팡은 그곳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영화는 헐리우드에서 1979년에 만든 작품,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이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예산으로 만든 헬리콥터 공습 씬도 엄청났지만, 하오팡이 충격을 받은 건 스크린에 등장한 비주얼보다 영화에 들어간 음악이었다. 그는 특히 도어즈(Doors)의 노래 디엔드(The End)가 나오는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리드 싱어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중국 정부도 서구 문화를 조금씩 허용하기 시작했지만, 철저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어떤 노래를 허용할지를 결정하는 위원회가 존재했고, 이들이 통과시킨 곡들은 존 덴버(John Denver), 카펜터스(Carpenters)처럼 전복적인 내용과는 무관한 무난한 것들이었다.
사실 당시 한국도 정도만 달랐을 뿐 분위기는 비슷했다. 유행하는 곡의 카세트테이프를 사면 끝에는 반드시 건전가요라는 노래가 하나 들어 있었다. 마치 '더러운 노래들을 들었으니, 이걸 들으며 귀를 씻으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건 존 덴버의 컨트리뮤직이 아니라, 서구의 젊은이들이 듣는 것과 같은 음악이었을 거다. 이런 욕구를 비밀리에 충족시켜 준 사람들이 교환학생으로 중국에서 공부하던 사람들과 중국 학교의 영어 교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중국 학생들은 이들을 통해 서구 팝송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런 루트로 (아마도 불법 복제를 통해) 퍼진 서구 음악은 대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걸 잘 보여준 사건이 1989년 천안문 사건이다.
학생과 시민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1989년 천안문 시위는 6월 4일, 중국정부의 폭력진압으로 끝나서 '6.4 항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시위는 4월 15일에 시작되어 무려 7주 동안 이어진 대규모 장기 농성이었다. 이 기간 동안 천안문 광장을 점거한 사람들은 축제와 비슷한 분위기에서 정부의 통제 없이 자유를 만끽했고, 다양한 서구의 팝송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가 격화되었고, 군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해산하기로 하고 탱크까지 포함된 병력을 보내어 시위대에 발포해 3,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게 그 사건을 천안문 광장 학살(Tienanmen Square Massacre)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꾸준히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서구 문화를 접한 젊은이들이 과격한 민주화 요구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동안 확산을 묵인해주던 서구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가게 된다. 더 이상 서구의 대중음악을 듣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단파 라디오를 통해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VOA) 채널을 통해 갈증을 달랬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정부가 방해 전파를 송출하면서 그 통로마저 막혀버렸다. 중국인들은 다시 엄격한 문화 검열의 시대를 맞이했고, 어느덧 서구 음악의 팬이 된 하오팡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어느 날, 우한 시내를 걷던 하오팡은 록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들었다. 어디에서 나오는 음악인지 궁금했던 하오팡은 소리를 따라 걷다가 볼품없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그의 눈앞에는 깜짝 놀랄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작은 공간은 카세트테이프로 가득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음악 카세트테이프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게 전부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서구 뮤지션들의 음악이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뮤지션의 테이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하오팡에 따르면 서구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뮤지션들의 테이프도 많았다. 그야말로 수백, 수천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잡다하게 구분 없이 쌓아 놓고 판매하고 있었고, 가격도 아주 저렴했다. 하오팡은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었던 그는 20여 개를 주워 담았다.
그런데 카세트테이프를 살펴보던 하오팡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파는 카세트테이프들은 하나같이 케이스 한쪽이 깨져 있었다. 열어 보니 케이스만 깨진 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의 일부도 잘려있었다. 전기톱으로 일일이 망가뜨린 것으로 보였다. '이게 뭐지?'
그가 발견한 것은 정식으로 수입된 카세트테이프가 아니라, 다코우(打口) 테이프였던 것이다.
'흠집 낸 카세트테이프 ②'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