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J.D.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건 "오만(hubris)" 때문이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밴스가 가져올 수 있는 표는 이미 트럼프가 확보한 표뿐이다. 대통령 후보는 자기와 지지 기반이 완전히 겹치지 않는 다른 후보를 통해 외연을 넓혀야 하는데, 트럼프는 자기 지지자(의 일부)로만 구성된 지지 기반을 가진 밴스를 선택했다.

만약 트럼프가 아래 표의 상단에 보이는 것처럼 전통적인 전략을 사용해 러닝메이트를 고른다면 경선 때 대결했던 니키 헤일리(Nikki Haley)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선택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백인 후보만으로 구성된 티켓을 탈피하고, 중도 보수 여성 후보로 외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통적 러닝메이트 선택 전략(위)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선택(아래)

트럼프의 J.D. 밴스 선택은 현재 자기가 확보한 유권자들만으로 충분히 민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반한 것이다. 트럼프는 올해 초부터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이 자기에게 크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6월 말에 있었던 대선 토론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는 안심하고 외연 확대 전략을 포기한 채 충성도를 기준으로 밴스를 선택했다. 바이든이 대선 후보로 나오는 한 대선의 승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의회 상하원까지 가져오는 싹쓸이(wipe-out)가 될 거라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기의 레거시, 즉 MAGA 레거시를 이어갈 젊은 후보가 필요했고, 흑인 여성 부통령과 대비되어 자기를 지지하는 백인 유권자들을 열광시킬 밴스같은 사람이 적격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J.D. 밴스를 골라 전당대회까지 치렀는데, 바이든이 대선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트럼프의 계획이 틀어졌다. (밴스의 말을 옮기면 "불의의 기습(sucker punch)을 당한" 것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내에서 가해진 사퇴 압박을 견디다 못해 물러났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철저하게 단결을 유지했고, 그 의도를 존중한 바이든은 차기 후보를 경선에 붙이는 대신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에게 넘겼다. 이 복잡하고 불안한 과정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뤄지자 민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해리스를 지지하는 붐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바이든과 해리스 (이미지 출처: 90.5 WESA)

이 열기가 단순히 새로운 후보가 누리는 허니문인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하겠지만,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 이후 트럼프에 뒤처지고 있던 지지율은 반등을 시작했고, 이 글을 쓰는 현재 해리스는 주요 격전지에서 트럼프와의 격차를 사실상 모두 없애고 동률을 만들었다. 게임이 원점으로 되돌아온 거다.

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얘기는 이번 대선이 막판까지 선거인단의 수를 검토, 재검토해야 하는 박빙의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말은 트럼프에게는 격전지, 경합주에서 망설이는 중도 유권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올 후보가 필요하지, 여성들을 향해 "결혼하지 않고 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들" 운운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러닝메이트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 후보는 트럼프 한 명으로 충분하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Chuck Schumer)가 한 말이 현재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밴스를 고른 것은 트럼프가 민주당에 준 최고의 선물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이미지 출처: WJTV)

그렇다고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전에는 J.D. 밴스가 적절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그는 아무런 공직에 종사해 본 적이 없어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오터레터에서 설명한 것처럼 카멀라 해리스가 의회 경험이 많은 바이든의 부통령이 되어서 전통적으로 부통령의 역할로 여겨지는 의회와의 협업이 매끄럽지 않았다면, 밴스의 문제는 몇 배로 더 심각하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 의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애초에 공화당에서는 J.D. 밴스가 선택된 것을 반기지 않았는데, 상황이 변하고 나니 밴스의 부족한 함량은 더 눈에 띄게 된다. 트럼프가 밴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토론 능력이다. 첫 글에서 소개한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들어 보면 알겠지만, 밴스는 말을 아주 조리 있게 잘한다. 바이든, 트럼프 같은 나이든 후보와 달리 머리 회전도 빨라서 상대방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트럼프는 그런 (예일 법대를 졸업한) 밴스의 능력이 검사 출신인 카멀라 해리스와의 토론 대결에 적합할 거라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큰 무대에서 토론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가 기대하는 수준의 화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트럼프가 상대를 조롱할 때 사용하는 "low energy"에 가깝다.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오하이오에서 밴스가 승리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 토론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상대방이 공격할 때 밴스가 취하는 태도다. 그는 트럼프가 공격을 받을 때 하는 것처럼 비웃거나, 말을 끊고 끼어드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조용히 듣는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게 신선해 보일 정도다.

밴스의 토론 모습은 트럼프 등장 이전의 점잖은 정치 토론에 가깝다. (이미지 출처: Cleveland.com)

게다가 J.D. 밴스는 자기에게 불리한 뉴스가 나왔을 때도 정치인처럼 대응하지 않고 마치 제3자가 평론을 하듯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바이든이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밴스는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좋지 않은 소식은 카멀라 해리스가 조 바이든과 같은 정치적 짐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카멀라는 바이든 보다 훨씬 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이든처럼 힘들어하지도 않아요." 밴스의 이런 분석은 트럼프의 보좌관을 지낸 제이슨 밀러(Jason Miller)가 한 말과 크게 대비된다. "(카멀라 해리스로 후보를 교체한) 민주당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탈출해서 불에 떨어진 셈이죠. 바이든이라는 문제는 피했을지 몰라도 카멀라 해리스라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 겁니다." 밴스의 분석이 훨씬 더 신중하지만, 트럼프가 원하는 정치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지지자들을 상대로 거친 연설할 때의 J.D. 밴스와 토론할 때의 J.D. 밴스가 다르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가 가난하고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란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밴스는 '힐빌리의 노래'에서, 자랄 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자기 할머니였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밴스는 트럼프와 달리 상대방에 갖춰야 할 예의를 잊지 않는다.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진보 세력"을 공격할 때와 자기 옆에 있는 다른 후보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화법이 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 밴스가 카멀라 해리스가 고를 나이 많고 중도 유권자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나이 든 백인 남자 후보를 (트럼프가 원하는 것처럼) 독한 말로 쏘아붙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유권자들의 눈에 얼마나 진심으로 보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J.D. 밴스가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기여할 여지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가 했던 과거의 발언들이 다시 드러나면서 트럼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지켜야 할 제1 계명이 'Do no harm,' 즉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후보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건데, 최근 들어 밴스를 둘러싼 잡음이 점점 커지자 트럼프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 소문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최단명 백악관 대변인(임명된 지 10일 만에 해임되었다)이었던 앤서니 스카라무치(Anthony Scaramucci)는 트럼프가 점점 더 불리해지면 러닝메이트를 교체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트럼프의 '어프렌티스'가 결국 직원을 해고하는 쇼였잖아요."

만약 트럼프가 갈아치운 수많은 정치인처럼 J.D. 밴스를 쳐낸다면 밴스는 여전히 트럼프주의자로 남을까, 아니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까? 만약 다시 변신한다면 유권자들은 그를 받아들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