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정부가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감시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는 뉴욕타임즈의 보도가 나왔다. 나라 곳곳에 간첩이 침투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나서서 이들을 색출해 내야 한다는, 과거 한국에서도 흔하게 듣던 얘기다. 굳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근현대사는 국민에 대한 감시 기술의 발전사라고 큰 과장이 아니다. 특히 독재정권의 경우, 국민이 감시를 내재화해서 자신이 항상 감시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면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

푸코는 감시가 사람들 마음에 내재화하는 것을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근대 감옥의 형태로 설명한다. 죄수는 감시에 노출되어 있지만, 간수(감시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감시 당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mimisawhney, Purdue University)

시진핑이 노리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현재 심각한 경제난이 다가오고 있고, 젊은 층의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사회의 관심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리는 동시에, 간첩으로 오인당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을 외부의 지령을 받은 반국가 세력의 책동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전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그 효과는 민주화 운동을 통과한 한국보다 그렇지 못한 중국에서 훨씬 더 효과가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행위도 간첩 행위로 의심하고 제재하는 극단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