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s | 옵틱스
• 댓글 남기기미국 시간으로 수요일 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첫 의회 연설을 했다. 취임 첫 해가 아니었으면 흔히 '대통령 연두교서'라고 번역되는 SOTU (State of the Union) 연설이었겠지만, 아직 특별한 업적이 없으니 의회에 보고할 내용도 없기 때문에 절차나 형식은 똑같아도 SOTU 연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굳이 의회에 가서 상하원 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의회에 대한 존중(대개는 정책을 설득하는 모습이니까)인 동시에, 대통령이 자신의 힘과 지위를 가장 시각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대통령들 중에는 의회연설을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연설에 반대한 대통령도 있다.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시작했지만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대통령이 의회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 '제왕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원래 영국에서는 왕이 입법부 의원들에게 하는 연설(개원연설開院演說이라고 부르지만 원어 표현을 보면 훨씬 적나라하다: Speech from the Throne)의 형식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이 때때로 의회에 국정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제퍼슨은 이를 편지로 보내어 앞에서 읽히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서 연설하는 전례를 살려내어 지금에 이른다. 미국의 상원과 하원은 서로 모이는 장소가 다른데 대통령이 찾아올 때는 합동회의(Joint Session)으로 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장소가 더 넓은 하원 플로어에 모인다. 그리고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뒤에는 상하원의 대표가 함께 앉아있게 되는데, 그게 바로 부통령과 하원의장(House Speaker)다.
미국의 부통령이라는 직책은 정부구조에서 가장 어색하고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자리인데, 대통령의 후보 시절 러닝메이트이니 "같은 편"인 동시에 상원에서는 의장을 맡고 있다. 이 역할 다소 요식적이어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않지만, 지난 1월 6일에 대통령 선거결과를 최종적으로 상원이 승인하는 자리에 트럼프의 오른팔 역할을 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바람에 큰 주목을 끌었다. (트럼프가 펜스를 비난하고 지지자들이 의회로 몰려가면서 그 유명한 국회의사당 습격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 이어서 부통령이 된 카말라 해리스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원이 사실상 50대 50으로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장인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몹시 중요해졌을 뿐 아니라, 바이든이 역사상 최고령의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바이든이 재선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젊기 때문에 바이든이 두 번의 임기를 모두 마친다고 해도 대선주자 1순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의장의 지위로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의 뒤에 앉아서 대통령의 의회연설을 지켜보는 모습은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다른 서구 선진국들과 달리 유독 여성을 국가의 리더로 뽑는 데 주저하는 보수적인 문화에서 여성(펠로시)이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된 것이 2007년인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펠로시 옆에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앉았기 때문이다. (2020년 사진과 달리 올해 사진 속 낸시 펠로시의 옷도 더 이상 흰색이 아니라는 것도 의미있는 장면이다).
게다가 그 여성은 몇 년 후 저 앞자리에 설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지독히 느리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바이든의 연설은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의 SOTU 연설이 그렇다. 게다가 연설문은 미리 의회와 언론에 전달되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결국 옵틱스(optics), 즉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이벤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바이든 연설의 포커스는 바이든이 아니라 뒤에 앉은 두 명의 여성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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