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을 열심히 듣지 않는 내가 빌리 아일리시의 이름과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딸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던 중이었다. 자기 폰을 블루투스로 자동차에 연결한 아이가 틀었던 빌리 아일리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웅얼거리는 가수'였다. 지금도 특별히 즐겨 듣는 가수는 아니지만 (딸아이가 소개해 준 가수 중에서는 핑크 스웨츠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를 좀 더 좋아한다) Z세대가 좋아하는 Z세대의 가수라는 이유만으로도 호감을 갖고 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아직 노래를 들어 본 적 없는 분들께는 아래의 곡을 권한다.

처음에는 그냥 새로 나온 가수인가 보다, 하는 정도였지만 어느새 빌리 아일리시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커졌고, 2001년에 태어난 23살의 가수라는 게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 007 영화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의 주제가, 영화 '바비(Barbie)'의 주제가 "What Was I Made For?"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가장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상을 두 번 받은 기록을 세웠다) 프로듀서이자 오빠인 피니어스(Finneas)와 함께 제작한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는 그래미상 역사에서 베스트 레코드, 앨범, 곡, 신인상을 한 해에 모두 수상한 두 번째 앨범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빌리 아일리시는 올해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 중에서 가장 어린 뮤지션이고, 피니어스와 함께 만든 최신 앨범 "Hit Me Hard And Soft"는 오는 2월 그래미상에서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와 있고, 앨범에 든 모든 곡이 스포티파이에서 1억 5,000만 번 이상 재생되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주제곡을 부르는 빌리 아일리시

역사적으로 신동이 드물지 않은 음악계에서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Pirate Baird O'Connell)와 피니어스(Finneas O'Connell)는 그다지 특별한 존재는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두 사람이 남매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잭슨 파이브(Jackson Five), 카펜터즈(Carpenters), 핸슨(Hanson)처럼 형제나 남매가 함께 가수 활동을 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모가 나서서 아이들을 데뷔시킨 것도 아니고, 나이가 애매하게 많은—4살 위의—오빠가 십 대 시절에 여동생과 함께 노래를 만들어 발표하고 활동하는 건 좀 특이해 보였다.

두 사람은 어떤 성장 환경을 갖고 있을까? 십 대면 4살 아래 여동생과 같이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함께 어떻게 동생과 작곡과 프로듀싱을 할 생각을 했을까? 평소 이런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풀어주는 좋은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래도 잠깐씩 나오기 때문에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글에서는 오터레터 독자들과 꼭 나누고 싶은 대목을 몇 개 골라서 소개한다.

변하는 목소리

인터뷰어는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 L’AMOUR DE MA VIE(내 인생의 사랑)을 들으면서 과거보다 성량이 더 풍부해졌다(fuller voice)는 걸 알게 되었다면서, 왜, 어떻게 바꾸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빌리 아일리시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제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13살 때는, 그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몸도, 목소리도 다 자라지 않은 상태였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시절에는 제가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목소리는 영원히 내 목소리일 거야'하고 생각했죠. 그때 제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음역도 넓지 않았어요. 저는 절대로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여러 해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제 목소리가 바뀌고 성숙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앨범, 'Hit Me Hard And Soft'를 준비하면서 노래 지도를 받았어요. 저는 어린 시절 합창단에서 활동할 때 이후로 노래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어요. (가수가 노래 지도를 받는다는 게) 조금 창피하고 그래서 망설였던 거죠. 하지만 지도를 받으면서 인생이 바뀐 느낌이에요. 지난 2년 동안 제 목소리가 10배는 좋아졌거든요. 계속 좋아질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예전 목소리는 선택한 게 아니라, 성대에 힘이 부족하고 호흡법도 몰랐을 뿐이란다.

데뷔 때의 목소리는 이랬다.

팬들의 반응

빌리 아일리시의 콘서트는 팬들이 입고 있던 브라를 가수가 공연 중인 무대로 던지는 일이 잦은 걸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여성 팬들이 브라나 팬티를 가수에게 던지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대개는 남성 뮤지션이 공연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여성 가수인 빌리 아일리시에게 그럴까? 본인은 팬들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불편하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까?

"재미있는 건, 제가 그런 팬을 가진 가수들을 부러워했다는 거예요. 남자 가수들이 공연하는 비디오를 보다가 팬들이 브라나 팬티를 무대 위로 던지는 걸 보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힘 있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부러웠어요.

제가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 팬들이 온갖 물건을 무대로 던졌죠. 선물을 던지기도 하고, 각종 깃발을 던지기도 했죠. 제가 16살이고, 팬들도 16살일 때 시작된 거예요. 저는 솔직히 너무 좋았어요.

팬들이 던지는 브라를 주워드는 빌리 아일리시 (이미지 출처: 유튜브 캡처)

저는 젠더 불쾌감(gender dysphoria)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빌리 아일리시는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지만, 트랜스젠더는 아니다—옮긴이) 많은 여성들이 그런 것처럼 남자들이 부러운 적이 많았어요. 제 경우에는, 남성 뮤지션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웃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다니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편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이 그랬어요. 백업 댄서나 화려한 무대를 꾸미지 않고 그저 뮤지션 하나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고, 청중의 사랑을 받는 그런 공연은 남자들만 할 수 있고, (여자인) 나는 절대 저럴 수 없다는 생각에 슬펐죠."

물론 빌리 아일리시가 이야기하는 건 자기 개인이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여성 뮤지션에 대한 사회적 기대, 혹은 관중의 요구가 다르다는 얘기다.

"제 음악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게 그거였죠. 저는 그런 사회적 통념이 틀렸음을 보여주기로 단단히, 아주, 아주 단단히 작정했습니다. 정말 그건 반드시 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자 팝가수들이 머리를 완벽하게 세팅하고, 몸에 붙는 레오타드를 입고 나와서 백업 댄서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하기 싫었습니다. 다른 가수들이 그렇게 공연하는 건 좋아도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저한테 맞지도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무대에서 공연하는 여성 뮤지션 중에 제가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죠. 그런데 남성 뮤지션들을 보면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가진 고정관념과 대중 음악계의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남성 뮤지션 이기 팝(왼쪽)과 마돈나, 그리고 빌리 아일리시 (이미지 출처: Rockarchive, CNN, Teen Vogue)

빌리 아일리시의 설명을 들은 진행자는 그가 뮤직비디오나 공연 무대에서 통이 크고 헐렁한 옷을 즐겨 입는다는 사실을 꺼냈다. 힙합을 들으면서 자란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힙합 뮤지션들이 하는 패션을 따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는 거다. 특히 빌리 아일리시가 어린 시절의 힙합 뮤지션들이 그렇게 헐렁한 옷을 많이 입었고, 반면 그런 뮤지션과 함께 뮤직비디오나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몸에 딱 붙는 옷, 혹은 몸을 많이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 그래서 힙합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아닌, 뮤지션의 스타일을 따르게 된 거냐고 물었다.

"네, 정확하게 맞아요. 저는 그런 비디오를 보며 자랐죠. 저는 섹시한 뮤지션 옆에 있는 여성들이 부럽지 않았고, 섹시한 남성들이 부러웠어요. 나도 저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 뮤지션들처럼 입고 싶었고, 그 뮤지션들처럼 행동(혹은 연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여성들, 많은 여성 뮤지션들을 우러러보며 자랐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분들이 없었으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남자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하고 싶었어도, 강한 의지와 뛰어난 실력으로 여성의 자리를 만들어 놓은 여성 뮤지션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이 옛날 재즈 뮤지션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낸시 윌슨(Nancy Wilson) 같은 뮤지션들이 라이브 공연하는 모습을 보게 해요. 그런 여성 뮤지션들의 공연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코르셋을 하고,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머리를 완벽하게 가꾸고 등장합니다. 그분들이 (저처럼) 그렇게 입지 않겠다고 고집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죠. 그때는 다들 그렇게 입어야 했으니까요. 제가 저보다 먼저 활동하신 여성 뮤지션들에게 감사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요.

왼쪽부터 엘라 피츠제럴드, 줄리 런던, 사라 본, 낸시 윌슨 (이미지 출처: NPR, Songbook, NEA, Keeley Electronics)

'빌리와 피니어스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