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는 낸시 펠로시의 반발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의 노동자가 민주당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업과 부자들에 맞섰다고 생각하겠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정당이 되었다는 게 샌더스의 주장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던 아래의 영상을 보자. 민주당 우세 지역인 동북부(뉴잉글랜드)의 뉴햄프셔주 내슈아에서 연방 하원의원직에 출마한 두 후보가 토론하는 장면이다. 왼쪽은 민주당의 매기 굿랜더(Maggie Tamposi Goodlander)고, 오른쪽은 릴리 탕 윌리엄스(Lily Tang Williams) 후보로, 연방정부에 의석이 없는 자유당(Libertarian Party) 소속이다. 이 영상 중에서 4:00 지점부터 일부가 편집되어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퍼졌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민주당 매기 굿랜더의 주장은 미국 유권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트럼프의 부자 감세에 있다는, 민주당의 기본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물론 자유당은 공화당이 아니지만, 부자 감세와 정부 개입 최소화 등의 노선은 트럼프의 공화당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굿랜더 후보는 경쟁자 윌리엄스 후보와 트럼프를 묶어서 비판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매기 굿랜더(왼쪽) 후보와 릴리 탕 윌리엄스 후보의 토론회

하지만 이 영상에서 릴리 탕 윌리엄스는 굿랜더 후보의 위선을 지적한다. 굿랜더는 자기가 내슈아에서 월세 아파트에 산다면서 "연방 의원 중에 월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한다"고—즉, 일반 유권자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고—주장하지만, 윌리엄스 후보는 어이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굿랜더는 뉴햄프셔주 다른 지역에 200만 달러(약 28억 원) 짜리 집이 있는데, 내슈아에 출마하기 위해 월세 아파트를 구해 놓고는 세입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부자다. 재산이 2,000~3,000만 달러(약 270~410억 원)나 되는 사람이 월마트에서 쇼핑하는 일반 유권자들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당신은 이 지역구에 출마하려고 몇 달 전에 내슈아로 이사 왔고, 워싱턴 정치판에서 수백만 달러의 지원을 받아 여기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돈이 없어서 TV 홍보도 못 하는데, 당신은 그 돈으로 하고 있지 않나? 이 동네에 와서 아파트를 얻어 살면서 월세가 높다고 불평하는데, 그럼 200만 달러짜리 당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제발 일반 유권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

지금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내슈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굿랜더 입장에서는 지나친 비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비판하는 윌리엄스는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왔고, 2010년대에 서부 콜로라도주 자유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다가 근래 들어 뉴햄프셔로 온 사람이다. 그리고 세금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당은 근본적으로 부자들이 좋아하는 당이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었고, 공격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 아무도 관심 없을 뉴햄프셔의 한 선거구의 토론 장면이 큰 화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매기 굿랜더와 제이크 설리번의 결혼식.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설리번, 굿랜더, 힐러리 클린턴. 클린턴 뒤로 앤서니 블링컨 외무장관이 보인다. (이미지 출처: X)

민주당 정치인

매기 굿랜더는 이름없는 후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으로 한국 언론에도 잘 알려진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의 아내다. 그렇다고 남편의 후광으로 정치에 나선 사람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각각 유명한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하면서 워싱턴에서 일했다. (설리번은 조 리버먼의 보좌관이었고, 굿랜더는 힐러리 클린턴의 보좌관이었다.) 사실 굿랜더는 출마하면서 남편이 백악관 보좌관임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버니 샌더스가 비판하는 전형적인 민주당 엘리트 정치인들이다. 둘 다 실력이 있어서 바이든과 클린턴의 보좌관을 했고, 굿랜더는 자기 고향 지역구에 출마한 것이지만, 두 사람은 모두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고, 워싱턴에 든든한 끈이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끈은 단순히 유력 정치인과 가깝다는 말이 아니다. 유력 정치인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로비스트를 알고, 그들을 통해 기업들로부터 (합법적인)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위의 토론 영상에서 자유당의 릴리 탕 윌리엄스 같은 사람이 "워싱턴에서 수백만 달러를 받아서 이곳에 와서 TV 광고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먹히는 이유가 그거다.

토론회 영상은 "사이다 영상"이 되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매기 굿랜더는 이번 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뉴햄프셔주는 버니 샌더스가 상원의원인 버몬트주 옆에 붙어 있는 주로, 버몬트만큼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우세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상대 후보에게 매서운 공격을 한 번 허용했다고 해서 민주당 후보가 패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비슷한 공격이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나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컨신주 같은 경합주 유권자들은 뉴햄프셔 유권자들처럼 민주당 후보에 너그럽지 않다. 그들 눈에 민주당 정치인은 1) 좋은 대학교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로 2)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3) 워싱턴에 인맥과 돈줄이 있어서 공화당 후보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선거운동에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말하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엘리트층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거나, 적어도 상대편에서 그런 프레임으로 활용하기에 편리해진다.

물론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런 민주당을 공격하는 공화당이 드러내 놓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정당이고, 대선 후보 본인이 갑부이며, 미국의 갑부들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을 후원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갑부와 친하다면, 트럼프와 주변 인물들은 본인이 갑부다. 그렇다면 그런 그들이 민주당이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하는 공격은 효과를 내기 어려워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의 민주당 공격은 먹혔고,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약자와 소수를 보호하는 데 열심인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유가 뭘까?

미국 유권자의 민주당 인식 변화.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는 인식만 줄어들었다. (출처: Financial Times)

샌더스의 설명은 이렇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들이 현재 상태에 불만을 느끼고 있고, 판이 바뀌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걸 인정한다. 그리고—이 대목은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데이빗 브룩스와 샌더스가 똑같이 하는 말이지만—트럼프는 유권자들이 느끼는 문제에 대한 틀린 답(wrong answer)이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답(an answer)이다. 반면,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현 상황에 문제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한쪽은 틀린 답이라고 주는데, 다른 쪽은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권자의 선택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트럼프는 비전이 있습니다. 틀린 비전이고, 부정직한 비전이죠. 많은 경우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비전입니다. 하지만 비전은 비전이고, (현재 문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민주당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대학 학위가 있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 진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샌더스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기부금을 내는 부자와 기업들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수억 달러의 기부금으로 고액의 선거 컨설팅을 받고,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TV 홍보물을 만드는 데 돈을 쓰면서, 정작 일반 유권자들이 무슨 불만을 가졌는지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샌더스의 주장이다.

펠로시를 비롯한 지도부는 민주당이 유권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거나, 그들을 위한 변화를 회피하고 있다는 샌더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보다 선거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도 패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즉, 유권자들이 후보가 귀를 막고 있다고 느낀다면, 홍보비를 많이 쓴다고 해서 지지율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샌더스의 주장이 100% 맞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이비리그를 나온 정치인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르지 않고 (트럼프는 출신 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성원의 다양성으로 치면 민주당이 훨씬 더 다양한 집단에 열려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민주주의 제도 수호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그들의 선거 구호에서 노동자가 적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그럼, 샌더스는 소수자의 인권, 민주주의 가치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선시하겠다는 걸까?

젊은 시절 흑인 여성들과 쇠사슬로 몸을 묶고 시위하다 체포되는 버니 샌더스의 모습 (이미지 출처: Medium)

'버니 샌더스의 시간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