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②
• 댓글 6개 보기이빈은 이 아름다운 초록의 도시에서 살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복도로 나서니 오디션이 끝나길 기다리던 아버지가 있었다. "오디션은 어땠니?" 아버지가 물었다.
이빈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망친 거 같아요. 연주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심사위원들이 저보고 나가라고 했어요." "네 연주가 아주 좋아서 그만 해도 된다고 했을 수도 있잖아." "아니, 그게 아녜요. 심사위원 하나가 고개를 흔들면서 어림도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창문틀을 쾅쾅 내리쳤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 아버지를 보는 이빈은 겁에 질렸다. 자기가 아버지를 실망하게 해드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다시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심사장으로 가려 했다. 이빈은 아버지에게 제발 가지 말라고 사정했다. 심사위원들이 자기 연주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빈은 "아빠, 제가 연주를 못 했어요. 제 탓이에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라고 했다.
"연주 중에 혹시 실수를 했니?"
"모르겠어요."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사람들은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대부분 그냥 결과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빈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랐다. 그는 심사장으로 사용하는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 밖에서는 대학생들이 악보를 추스리고 있었다. 이빈을 마지막으로 오디션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이빈은 자기 바이올린을 들고 아버지 뒤를 따랐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한 번만 연주를 다시 하면 안 될까요? 아이 연주가 그렇게 나빴다면 어느 부분이 나빴는지 심사위원들께 좀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는 "그렇게는 안 됩니다. 오디션은 다 끝났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알아볼 방법이 없습니까?" "제가 들어가서 물어볼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학생이고, 오디션 보조로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36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여기에 왔어요. 저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세요?" 그 대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희가 주취안에서 왔어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아, 제 삼촌이 그 근처에 사세요. 주취안 알아요." 아버지는 "그럼 저희가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아시겠죠."
그 학생은 아버지의 딱한 사정에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아버지는 다시 부탁했다. "심사위원님들께 제 아이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주라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최소한 협주곡 마지막 부분이라도 연주해 보게 해주세요." 학생은 "그렇게 부탁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이 악보들을 전달해야 하니까 연주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물어볼 게요."
그 학생이 들어가 있는 동안 이빈과 아버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빈은 아무런 가망도 없는 일에 아버지가 왜 그렇게 창피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학생이 나왔다.
"심사위원님들이 아이의 연주 자세는 좋았다고 합니다. 인토네이션(intonation, 음의 도달)도 좋았다고 하고요. 문제는 엉뚱한 음표(note)를 연주한 대목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건 용납하기 힘들대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와 같이 연주하면서 음이 틀렸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고쳐줍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학생은 "어쩌면 학부모님께서 음표를 정확하게 모르셨을 수 있죠. 틀릴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니, 잠깐만요. 제가 아이의 악보를 보여드릴게요. 모든 음표가 정확하다니까요." 그러고는 이빈의 가방을 뒤져서 악보를 꺼냈다. 아버지가 일일이 손으로 그린 그 악보들. 아버지는 그 학생에게 제발 이 악보를 좀 보면서 얘기하라고 사정하다시피 매달렸다. 제발, 제발, 부탁이라고. 이렇게 집에 돌아갈 수는 없다고.
"이게 저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저와 제 아이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버지는 그 학생에게 당신은 운이 좋지 않냐고 했다. 당신은 좋은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우리 고향에서 이 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 아냐고 하면서, "한 명도 없어요.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에게 악보를 건네줬다.
악보를 보던 그 학생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보였다. 전부 손으로 쓴 악보였기 때문이다. "이걸 누가 쓰신 거예요? 학부모님께서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으셨어요?" 아버지가 그렇다고 하자, "그럼 어떤 악보를 보고 옮기신 거예요?" 아버지는 친구가 필사한 악보를 보고 옮긴 거라고 했다. "그런 그 친구분은 어떤 악보를 보고 필사하신 거죠?" 아버지는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학생은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하더니 다시 심사장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빈은 아버지가 자기를 쳐다보지 않고 심사장 쪽을 바라보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윽고 심사장에서 누군가 나왔다. 나온 사람은 그 대학생이 아니라 바이올린 교사였다. (이중턱을 가진 그 남자는 아니었다.) 그 교사는 이빈을 부르더니, 이 악보대로 연주한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건 손으로 직접 쓰셨어요?" 아버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 교사가 말했다.
"이 악보에 틀린 음표가 많은 거 아시죠?"
"아뇨. 저는 제대로 옮겼습니다. 옮기면서 여러 번 확인했어요. 틀린 음표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여러 곳에서 틀린 음표를 연주했어요. 이 악보를 보니까 이 악보 자체가 틀렸어요. 자, 이걸 보세요. 원래 이 곡에 F샤프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플랫도 빠졌고.... 이런 종류의 오류가 많아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하지만 그게 저희가 구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끝까지 연주하게 해주시고 정말로 못한 건지 확인해 보시면..."
그 교사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원래 이 학교의 오디션에서는 기회를 다시 주지 않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이 지원자에게만 허용한다면 그건 다른 학생들에게 공정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절망한 표정을 본 교사는 동료 심사위원들과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빈의 아버지는 다시 아이에게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했다. 교사는 "그런 부탁을 하시면 안 된다"며, 그럼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빈의 아버지가 "그럼 15명 중에서 몇 명이 떨어지는 겁니까?"라고 묻자, 9명이 떨어지고 6명을 선발하게 되는데, 대기자 리스트에 3명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의 전부입니다. 자, 이제 돌아가세요."
이빈과 아버지는 다시 36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합격 여부를 알기까지 2주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빈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보를 받았다. "이이빈의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단 한 문장이었다. 아버지는 그 전보를 손에 들고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에게도, 이빈에게도 읽어줬다. 전보를 읽는 아버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이빈의 아버지는 결국 학교 입학 담당자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편지에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야기한 후에 어떻게 우리 아이를 선택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은퇴를 앞둔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시간을 내어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담당자는 이빈과 아버지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학교 사람들은 아이가 손으로 옮겨 쓴 악보로 연습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단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고, 동정심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이빈이 합격한 건 오디션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 중 세 명이 중국어와 수학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대기자 명단에 있다가 들어간 것이다. 꼴찌로 합격했지만, 엄연히 합격한 거니 축하한다고 했다.
이빈은 모든 것이 아버지가 해낸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기회를 찾아 싸우고, 싸워서 만들어 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때 매달리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모두 제 아버지 덕분입니다."
시안음악학교를 졸업한 이빈은 대학은 상하이에 있는 더 좋은 음악학교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졸업 후 잠시 학생을 가르치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줄리어드(Juilliard)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이빈이 미국으로 떠나올 때 아버지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우셨다. 다시는 딸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상하이에서 좋은 자리를 얻었는데 왜 굳이 뉴욕에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2016년에 이빈은 부모님을 모두 미국으로 모셔 왔고, 아버지는 그렇게 미국에서 사시다가 2020년에 세상을 떠났다.
인터뷰어는 이빈에게 이렇게 물었다. "따님(이빈에게는 십 대의 딸이 있다)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아이 삶에 뛰어들어 미래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줘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나요?" 이 질문에 이빈은 짧게 대답했다. "아뇨."
이빈의 딸은 현재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있지만, 플룻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바꾸게 하겠다고 했다. 아니, 무술을 전공하겠다고 해도 말리지 않겠단다. 이빈은 딸아이가 인생의 모든 게 걸린 오디션을 치러야 하고,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매달려야 하는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제 딸아이는 뉴욕에서 자라고 있어요. 그 아이는 찐빵을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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