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 차이나
• 댓글 60개 보기"우버가 단 한 대의 차량도 소유하지 않은 채 세계 최대의 택시 공유업체가 되고 에어비앤비가 단 한 채의 부동산도 보유하지 않은 채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로 성장하기 수년 전에, 애플은 공장 하나 없이 세계 최대의 제조업체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이 말을 가장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건 애플이 제품마다 새겨 넣는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ed in China"(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됨)라는 문구다.
애플 제품에서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경치 좋고, 날씨가 쾌적한 실리콘밸리의 아름다운 사무실에서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마시며 제품을 디자인하는—고액의 연봉을 받는—애플의 디자이너들과 중국 선전시의 거대한 공장 안, 형광등 불 아래에서 밤낮없이 제품을 조립하는 중국 저임금 농민공(农民工)을 떠올린다. 상상하기에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그걸 모르지 않는 애플이 이 문구를 넣는 이유는 법적으로 제조된 지역을 제품에 분명하게 표시해야 하는 미국의 법(1930년에 제정된 미국 관세법의 일부)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Made in China"(중국제)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애플을 기억하는 초기 팬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애플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게 "Made in China"라는 딱지다. 왜냐하면 모든 제품을 애플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다는 것은 애플의 브랜드이자,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고집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최대 경쟁 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구분하는 핵심적 가치였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애플도 생산을 다른 기업, 아니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애플은 중국에 위탁 생산을 하면서 위와 같은 문구를 만들어 낸 거다.
그 새로운 환경이란 세계의 지정학적 변화였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으로 미국은 더 이상 제조업으로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애플이 아시아에 생산 공장을 맡기는 과정은 포드나 GM이 멕시코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것과 동일하게 이해한다면—어쩌면 그게 애플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는 문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겠지만—큰 착각이다.
그게 왜 착각인지 생생한 일화들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애플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책이 '애플 인 차이나'다. 애플과 중국 (그리고 대만) 사이에서 일어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기록한 책이지만, 애플 외에도 산업 전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하게 짐작하게 해주는 책이고, 애플이 중국을 벗어나는 것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얼마나 분리하기 힘들게 얽혀있는지 이해하게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 패트릭 맥기(Patrick McGee)는 충격적인 숫자로 이 책을 시작한다. 애플의 추산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애플이 중국에서 훈련시킨 노동자의 수만 최소 2,8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전체 노동인구보다 많다. 또한 애플이 2015년 한 해에만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550억 달러다. 무려 80조에 가까운 돈을 투자한 것이다. (게다가 이 액수에 애플이 지불한 부품 비용은 제외되었다. 그것까지 합치면 액수는 두 배로 늘어난다.) 저자는 이 투자 액수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 산업 정책인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비교해 보자. 당시 상무부 장관이었던 지나 러몬도는 이 법안을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투자'라 부르며,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를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된 이 법안은 총 4년에 걸쳐 520억 달러의 예산을 관련 산업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는 애플이 거의 10년 전 중국에 1년 동안 투자했던 금액보다도 30억 달러 적다. 다시 말해 애플이 지난 10년간 해마다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미국 정부가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투자'라 자부한 액수보다 최소 네 배 크다."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는 그렇다고 쳐도, 왜 노동자를 2,800만 명이나 훈련시켜야 했을까? 이 책에서 팀 쿡(Tim Cook) 만큼이나 주요 인물인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의 영리한 전략 때문이다. 애플은 중국에서 고용한 엔지니어들을 일일이 교육하고 훈련시켰는데, 폭스콘은 그렇게 새로운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을 더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활용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인사이동을 했다. 그들이 떠나고 새로운 기술자들을 들어오면 애플은 새 학기가 시작된 것처럼 새로운 인력을 가르쳐야 했다는 것이다.
이건 엄연한 기술 유출 아닐까? 애플은 그걸 알면서도 왜 항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력을 훈련시켰을까? 사실 이건 애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테슬라도 다르지 않다. 중국에 진출해 공장을 세운 기업들은 그들이 가르친 인력이 결국 경쟁하는 제품을 만들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WTO가 만들어지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의 기업이 합작투자(joint venture)라는 걸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경우 기술이 이전되는 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당연한 조건이었다. 이런 관행은 WTO 체제가 들어서면서 불법이 되었지만—적어도 중국과의 협력에서는—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장과 생산력 때문이었다. 폭스콘 공장의 노동자들이 애플에서 배운 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경쟁사에 납품하는 것을 허용했던 건 그 때문이다.
우리는 애플이 아주 주도면밀한 기업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지만, 모든 신화가 그렇듯 중국과 애플의 합작이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선 애플은 처음에는 중국이라는 시장도, 그 나라가 가진 생산력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중국으로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은 중국 전체를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하지만, 애플은 그 반대였다. 선진국에서도 고가였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걸 과연 중국의 소비자들이 얼마나 살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고, 나중에 알게 된 엄청난 수요에 깜짝 놀랐다.
중국 기술자들의 실력을 알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는 문구를 보면 대만에서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던 폭스콘(원래 이름은 '홍하이 플라스틱'이었다)이 애플이라는 엄청난 고객을 만나 중국 본토에 공장을 세우며 성공한 운좋은 기업이라는 인상을 받지만, '애플 인 차이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애플은 이미 LG를 비롯해서 한국과 일본, 대만의 여러 기업들과 함께 일해왔고, 폭스콘은 애플이 거래하는 수준에 한참 미달하는, 그저 작은 플라스틱 부품의 공급처에 불과했다. 그랬던 회사가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변모하는 이야기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흥미롭다.
결정적 계기는 스티브 잡스의 복귀 후 애플에 본격적인 매출 신장을 안겨 준 아이팟을 만들 때였다. 폭스콘의 궈타이밍은 애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아이팟의 (거의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어 애플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정도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처음에는 애플 내에서 폭스콘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쟁사와 완전히 차별되는 제품으로 승부를 보려는 애플로서는 폭스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한국 파트너 LG가 애플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을 때 궈타이밍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당시 애플의 신임 COO) 팀 쿡을 설득했다.

폭스콘이 내놓은 건 단순히 제조 능력 이상이었다. 폭스콘은 대량생산에 필요한 고가의 제조 공정 장비와 도구 등을 마련하는 데 드는 초기 비용을 자기네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제품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애플 입장에서는 모든 위험을 떠맡는 폭스콘—애플은 심지어 판매 후 1년 이내에 제품에 생기는 문제도 폭스콘이 책임지도록 했다—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위험이었다. 애플의 전직 엔지니어는 폭스콘이 서구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했다면서 그들의 값싼 생산은 애플과 같은 기업에게 마약과 같았다고 묘사한다. "일단 그들(폭스콘)이 문 안으로 당신을 들여보내면 끝이에요. 이제 그들은 당신을 통제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애플이 폭스콘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 같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인 토니 블레빈스(Tony Blevins)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대 그렇지 않다. 폭스콘을 비롯해 애플이 생산을 해외로 옮기는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해외 업체들에게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던 사람이 블레빈스다. 그는 상대 기업의 변호사들이 계약서를 읽을 시간도 주지 않고, "지금 당장 서명하지 않으면 다른 기업에 넘기겠다"고 요구해서 불공정에 가까운—심지어 애플 내에서도 이건 불공정 계약이라는 말이 나왔다—계약을 했고, 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협상장의 온도를 낮추는 전략까지 사용했다.
애플과 폭스콘은 웃으면서 상대방의 목을 겨누는 프로들이었다. 과연 유럽이나 일본, 한국의 기업들이 과연 저런 행동까지 하면서 장사를 하려고 했을까? 그만큼 고난도의 변칙과 도박 수준의 모험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애플의 제품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폭스콘의 궈타이밍은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만의 더럽고 누추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학대해 가며—폭스콘 공장에서 직원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기숙사에 그물을 설치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사업을 일으킨 사람과 고액의 연봉을 주며 세계 최고의 인재를 데려와 애플을 키운 사람을 비교하는 게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의 욕설을 들어가며 캘리포니아와 선전을 오가던 애플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렇지 않다.

잡스가 복귀한 후 많은 애플 직원의 결혼 생활이 파탄 나는 바람에 회사에 비공식적으로 '이혼 회피 프로그램'이 존재했다고 하고,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로 암에 걸렸다는 얘기가 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 본인도 자신이 암에 걸린 이유를 자기가 애플을 운영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기업은—적어도 지난 20여 년 동안은—목표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험하며 직원을 혹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고, 서로 상대방이 비슷한 영혼(kindred spirit)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애플에 관한 책으로는 월터 아이작슨(Walter Issacson)이 2015년에 발간한 '스티브 잡스' 전기 이후에 나온 가장 흥미로운 책이고,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이 어떻게 성장해서 지금의 기업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절대 놓치면 안 될 책이다.
이 책을 출간한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습니다. 원하시는 독자께서는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제가 수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