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미국인들의 관심은 온통 애틀랜타 올림픽에 쏠려 있었다. 미국은 그때 이미 여러 차례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남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막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서쪽으로 6시간 떨어진 또 다른 남부 주 미시시피의 와이노나(Winona)라는 작은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인구가 5,000명밖에 되지 않는 와이노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가구점에 누군가 들어와서 그곳에서 일하던 주인과 종업원을 포함해 4명을 모두 살해하고 달아난 것이다.

와이노나 경찰이 며칠 만에 체포한 용의자는 커티스 플라워스(Curtis Flowers)라는 이름의 젊은 흑인 남성이었다. 경찰은 플라워스가 사건이 일어난 가구점에서 며칠 일한 적이 있었고, 근무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는 데 주목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플라워스가 가구점에서 일을 시키면 주인을 빤히 쳐다보거나, 시킨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해서 문제라는 얘기를 기억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가 해고당한 후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플라워스는 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배심원은 그가 유죄라고 평결했고, 사형 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가구점(Tardy Furniture)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수사는 엉망이었다. 플라워스의 범행을 증명하는 증거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가 달아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만이 유일한 증거였다. 게다가 그 증언들은 하나같이 위조되었거나, 강압에 의해 나온 것이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증언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항의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검찰은 어떻게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담당 검사 더그 에반스(Doug Evans)와 수사관은 모두 백인이었고, 희생자 네 명 중 세 명이 백인이었다. 검사는 흑인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방법은 재판 때 배심원 선정이었다. 흑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에서 열린 재판임에도 배심원 12명 전원이 백인이었다. 와이노나는 미국을 뒤흔들고 민권운동을 촉발시킨 에밋 틸 살해 사건이 일어난 소도시 머니(Money)와 인접한 동네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극심한 지역에서 백인 세 명이 살해된 사건에서 백인 검사가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에게서 받아낸 유죄 판결이었다.

사건 현장의 희생자 사진. 살해된 사람들은 사진 속 주인을 포함해 백인 세 명과 흑인 한 명이었다.

검사가 백인으로만 배심원단을 구성할 수 있었던 건, 흑인 예비 배심원을 제외하기 위해 '기피권'(peremptory challenge)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피권이란, 검사나 변호인이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배심원 후보자를 배심원단에서 제외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1986년의 판결(Batson v. Kentucky)을 통해 기피권을 행사할 때 다른 이유 없이 배심원 후보자의 인종만을 기준으로 제외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국의 헌법(수정헌법 제14조 평등 보호 조항)에 위배되는 차별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에반스 검사는 이후 다섯 번의 추가 재판에서 기피권을 부당하게 사용해 흑인들을 배심원단에서 몰아냈다. 그중 세 번의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백인 11명, 흑인 1명으로 구성되어 유죄 평결을 내렸고, 흑인이 3명 이상 포함된 두 번의 재판은 배심원 합의 불능(hung jury)으로 끝났다. 검사가 흑인을 배심원단에서 몰아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2019년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보수판사가 과반인 대법원조차 7대2로 플라워스가 받은 재판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플라워스는 23년 만인 2019년에 풀려날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의가 승리한 것 같지만, 커티스 플라워스 겪은 일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가진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연방 대법원이 인종에 기반한 배심원 선정이 위헌이라고 규정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법정에서 차별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법원이 플라워스가 부당한 재판을 받았다고 한 근거도 바로 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법이 막아줄 거라고 기대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필요하다. 이렇게 설득이 쉽지 않은 주장을 끈질기고 뉘앙스있게 전달하는 책이 홍성수 교수의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저자는 2018년에 나온 '말이 칼이 될 때'로 큰 화제를 불러온 법학자다. (강단에서만 가르치지 않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와 강연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나무위키 같은 곳에서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그만큼 반향이 크다는 얘기일 거다.) 전작이 '혐오표현'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제목처럼 '차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일베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혐오 표현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활동하다가 '말이 칼이 될 때'를 쓰게 되었고, 2019년에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였던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번에는 차별을 주제로 많은 논의에 참여하다가 이를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가는 곳마다 비슷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질문에 매번 답하다 보니 답변을 정리해서 일반 대중에게 설명하는 책으로 내기로 한 듯하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2025년의 한국인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진 궁금증을 풀어주는 아주 훌륭한 설명서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차분한 설득이고, 찬성은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법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요긴한 도움말로 가득하다.

저자는 보수 기독교 목사들이 "차별금지법이 발언의 자유를 해친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꼼꼼히 반박한다.

홍성수의 전작도 그렇지만,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는 시원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말처럼 "화끈한 해결책이 있었다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주 기초부터, 즉 차별이란 무엇이고, 왜 나쁜지부터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차별이 왜 나쁜지를 설명해 줘야 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쓴 책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 읽기에도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은 이유는, 저자가 법학자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법의 논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신념이 법조문이 될 때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리고 일반인 눈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법조문의—가령 '합리적 이유 없이' 같은—구절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게 된다. 저자가 설명하는 법의 논리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게다가 저자는 소셜미디어에서 "여경 무용론" 같은 주장을 자주 접하면서도 이를 반박할 지식이나 논리를 모르던 사람들을 위해 차별법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사례]나 [쟁점]이라는 짧은 토막으로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책 전체에 걸쳐 감정을 섞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던 저자의 목소리에서 분노는 아니지만,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면 그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종교계를 이야기할 때다. 그는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보수, 극우 개신교"라고 거침없이 지적한다. 물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저자가 분노하는—사실은 읽고 있는 나의 감정이 글에 투사된 것에 가깝겠지만—이유는 차별금지법이 교회 목사들이 설교할 자유를 빼앗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버젓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건 설교 속에 들어간 차별적 표현이 아니라, 그런 교리를 회사, 교육기관, 복지시설 등을 통해 사회에서 실행에 옮기려 할 때 뿐이다. 이 책은 이를 거듭 강조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 이를 고의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법학자이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애쓰고 있으면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차별이 즉시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독자들이 이 법에 대해 환상을 갖는 것을 경계한다. "차별금지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일 뿐, 이 법이 현재의 차별을 없애줄 거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법이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약 10년 전에 나온 영상이 있다. 한 기자가 미국의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에게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에 미국 내 인종 간의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고 보느냐"고 묻자, 워싱턴은 이렇게 답한다.

"기자님은 백인이고, 저는 흑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있죠.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는 겁니다. 사랑을 법제화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우리가 상대를 좋아하게 만들 수 없어요. 우리 스스로 한 걸음씩 다가가서 대화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

이 책을 출간한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책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시면 제가 다음주 수요일 오전에 추첨을 통해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하세요!